한 소녀를 짓밟은 41명은 무죄, 과연 공의로운가?
[서평] 이재익 장편소설 <41>
▲ <41> 표지 ⓒ 네오픽션
이재익의 장편소설 <41>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14살 소녀를 41명의 고등학생이 1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성폭행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까닭이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 일어난 사건이 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언론에서 잠잠했던 이유 때문 아닐까.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의 부모와 지방 유지들은 그 사건이 조용히 묻히길 원했다. 어쩌면 언론도 그들과 교감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책을 놓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연 그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정당한 판결을 내렸을까? 한 번 재판이 끝난 사건은 다시는 파헤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이 경우에도 타당할까? 41명이나 되는 그 녀석들이 어떻게 형사처분 없이 풀려날 수 있었을까? 만약 자기 자식이 그런 변을 당했다면 그 변호사는 어떻게 대했을까? 그런 저런 생각들이 이 책을 덮지 못하게 한 이유였다.
"몇 년 전에 어느 대학에서 같은 과 여학생이 자는 동안 성추행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한 대학생들이 실형을 받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놈들도 전부 2년 이상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열네 살짜리 아이를 1년 동안 수십 번이나 윤간하고 폭행하고 협박한 놈들이, 마흔한 명이나 되는 놈들이 전부 무죄라니요?"(181쪽)
공조한 연쇄살인범을 쫓던 강력계 형사 중 한 명이 던진 말이다. 하지만 어떤가? 이 책에서도 드러내지만, 이 사건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여 사회적인 이슈가 되게 했다면, 모두가 41명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들을 파멸로 몰아 넣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함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와 변호사에 대해서도 신상을 공개하도록 요구하지 않았을까?
지금 그 여중생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그 가해자들은? 그 여중생은 그 당시 다른 데로 전학했지만, 가해자들 부모가 찾아와 탄원해달라는 소란 때문에, 그 학교마저 다닐 수 없었고, 급기야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그때 그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당시의 일을 어린 시절의 불장난쯤으로 생각하며 까마득히 잊고 지내지는 않을까?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찾은 것 외에 이 작품을 특징짓는 것은 곳곳에 드러나는 노골적인 폭력성입니다. 이 소설에는 여러 종류의 폭력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들 중에 폭력적인 장면이 가장 많이 등장하지요. 읽는 동안 불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폭력으로 변하는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학교 폭력에 대해서요."(321쪽, 작가의 말)
학교 폭력과 약육강식의 패턴은 점점 더 극악무도해질 것이다. 개개인의 심성도 그만큼 악해지고 있고, 사회집단도 이기적으로 급변하는 까닭이다. 비록 이 책의 사건전개가 가설이긴 하지만 충분한 개연성과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폭력과 자살과 정신질환과 연쇄살인이 난무하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는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까? 모든 것은 뿌리로부터 비롯된다. 기성세대의 부조리가 근절되면 청소년 폭행도 해결되기 마련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은 당연히 맑아지게 된다. 대통령부터 촌부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에게라도 공감할 만한 법 집행이 실현된다면, 파멸이 아닌 환생을 위한 공의로운 법 집행이 구현된다면, 그 일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책도 그걸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41> 이재익 씀, 네오픽션 펴냄, 2012년 4월, 324쪽, 1만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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