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트위터 때문에 합격 하루 만에 잘렸어요"

K출판사, 합격 통보 다음날 취소... 정씨 "트위터 검열로 인한 부당 해고"

등록|2012.04.23 16:03 수정|2012.04.23 18:03
[기사 수정: 23일 오후 6시 4분]

▲ 20일 정아무개씨가 '트위터 때문에 부당해고 당했다'며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


한 출판사가 입사 예정자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을 이유로 채용을 취소해 논란이다. 해당 직원이 이 사실을 온라인상에 공개한 후 비판이 일자 출판사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특히 해당 출판사가 그동안 진보 성향의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을 펴내왔다는 점에서 '트위터 검열에 따른 채용 취소' 논란은 커지고 있다.    

합격 통보 다음날 '취소'... 이유는 "트위터 글 때문에"

지난 19일 오후 5시께 정아무개(25)씨는 전날 채용 통보를 받았던 K출판사로부터 '합격을 취소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측은 메일에서 "트위터에서 쓴 글들을 읽어보니 (면접 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며 "현 직원들과 잘 어울려 일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정씨가 일하기에는 "이 조직과 공간이 답답하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메일을 받은 직후 정씨는 출판사로 연락했고 "트위터 글을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으니 회사에 나오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 출판사는 그가 트위터에 "K출판사에서 일하게 됐다"고 밝힌 것이 직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음날인 20일, 정씨는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에 'K출판사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번 일은) 트위터 사찰을 인사고과에 반영하여 부당해고를 저지른 사례"며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법원 판례 등을 인용해 "'5월부터 출근하라'고 알렸다가 취소한 것은 노동법상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합격 취소'라는 사측 주장을 반박했다. 정씨는 합격 통보 후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등 모든 구직활동을 중단했던 것과 관련한 손해를 배상하라고도 요구했다.

정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해고 사유가 회사명을 밝힌 것만이 아니라고 본다"며 "'출판 노동자들이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가' '사용자와 노동자는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근본적 불편함은 있는 것 같다'고 쓴 적이 있다"며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인데 (출판사 측은) 불편하셨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임금체불·부당해고가 빈번한 출판업계 노동현실까지 겹쳐 많은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었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트친이 쪽지로 '작가님이랑 트위터에서 친한 척하면 세무조사 당할 것 같다'고 했다"며 "오늘 젊은 신입사원의 트위터로 인한 해고 소식을 보며 암담함에 젖는다"고 썼다.

트위터 이용자인 @ph********은 "K출판사처럼 트위터 내용을 이유로 채용을 취소한다면, 출판사에 이력서 넣는 모든 사람들은 트위터를 폐쇄하거나 관리용 트위터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꼬집었다.

▲ '트위터 글 때문에 해고했다'는 사실로 논란을 일으킨 ㄱ출판사는 21일에 이어 23일 오전 사과문을 올렸다. ⓒ


K출판사 "트위터 글 근거로 정씨의 성격 판단한 것 사과"

정씨가 글을 공개한 20일, 반박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발표했던 출판사는 여론이 나빠지자 21일 사과문을 올렸다. 출판사는 이 글에서 '정씨와 독자 여러분에게 죄송하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사태의 원인을 정씨에게 돌린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출판사 측은 23일 오전 10시 2차 사과문을 게재했다.

K출판사는 2차 사과문에서 "트위터의 글을 근거로 함부로 정아무개씨의 성격을 판단, 인사에 반영한 것을 사과드린다"며 "채용과정에서 신중하지 못했으며 인권 의식이 모자랐기에 저지른 잘못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직원이 모두 3명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은 아니지만, 사실상 '부당해고'를 했다는 점 역시 받아들인다고 했다.

담당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일단 정씨가 요구한 사과와 구체적 개선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이후 정씨와 다시 대화해 원하는 바를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위터가 그 (부당해고)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K출판사는 설립된 지 9년이 됐으며, 올 1월까지 52종의 인문·사회과학도서를 출간해 왔다.

정씨 "트위터 자기검열이 더 심각"... 출판노조 "무시무시한 일"

2차 사과문을 읽은 정씨는 "제게 성의 있는 사과를 했다고 보지만, 이 문제는 계속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사측이 해고 사유로 트윗을 들며 '(정씨) 본인이 뿌린 씨앗'이라고 했다.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지는 태도는 중요하지만 생계가 위태로워지는 일은 다른 문제다. (이번 일을 겪은 후) 주변에서 '나도 트위터 없애야 하나?' '문제될 글들은 다 지웠다'고들 말했다. 이게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정씨는 "출판업계 70% 이상이 영세업체고, 직원이 5명도 안 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출판노동자들이 사실상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어 꼭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명섭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직차장은 "트위터 글을 보고 판단했다는 것 자체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개인 의견을 남기는 인터넷 매체일 뿐인데, 이것이 취업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출판계의 관행으로 치부해왔던 불공정계약, 부당해고  등의 문제에도 공감하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김 차장은 "K출판사가 빠르게 사과문을 올린 것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이번 일이 출판계 내부의 고용이나 노사관계 문제 등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