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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그 이름 석 자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

등록|2012.04.26 09:43 수정|2012.04.26 09:43

▲ 지난 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최시중'. 이 이름 석 자는 지난 4년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였습니다. 그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이 대통령과 동향이면서 고려대 동문으로 '멘토'로 불렸고, 이명박 정권 고위 공직자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이 대통령과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개발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수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25일 오전 10시 38분 대검찰청 앞에 섰습니다. MB정권 실세 중 실세인 최 전 위원장이 대검찰청, 그것도 수많은 권력자들이 비리와 불법으로 불려들어가 결국 감옥행으로 마무리한 대검 중수부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한 권력이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최 전 위원장은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꾸었지만 받은 돈으로 "2007년 대선 때 여론조사 비용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가 받은 돈의 성격과 대선자금 여부는 검찰이 밝혀야 합니다.

최시중,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성' 입증해줄 사람

하지만 우리가 최시중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반민주 정권을 증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 전 위원장은 2008년 3월과 5월 김금수 당시 KBS 이사장을 만나 "쇠고기 파문 확산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방송 때문이며 그 원인 중 하나가 KBS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해 여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정연주 사장을 내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정연주 사장 때문에 이명박 정권 지지율이 하락했다며 그를 끝내 끌어내렸던 최 전 위원장은 한국갤럽 회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03년 10월 7일 지지율이 낮은 노무현 정부를 '캄보디아'에 비유했습니다.

2003년 10월 8일자 <동아일보> "지금은 정권 말기적 상황"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최시중 한국갤럽연구소 회장은 7일 '밝고 힘찬 나라 운동본부'가 서울클럽에서 주최한 '노무현 정부 어디로 가고 있나' 제하의 강연에서 "일부에선 벌써부터 노무현 정권에 레임덕(lame duck·집권말기 권력 누수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노 정권은 권력 자체를 만들지 못해 누수될 권력도 없다"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은 정권 말기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여론조사 기관에서 볼 때 지지율 40%선은 '위기선'인데 갤럽방식으로 현재 노 정권의 지지율은 30%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선에 도달하면 국민이 통치자를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 정도로 상황이 어려울 땐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자고 얘기하지만 나는 캄보디아를 거론하고 싶다."

30%대 노무현 정권은 권력 자체도 만들지 못했다며 맹비난 했던 최시중 당시 회장이 정작 이명박 정부 방송통신위원장이 된 후 이명박 정권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자 오히려 정연주 사장에게 책임을 지웠습니다. 180도 돌변한 것입니다.

2003년 10월 자신이 했던 발언을 기억했다면 정연주 사장에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바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정치 바로하라고 비판해야 앞뒤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연주 사장 강제해임은 이명박 정권 언론탄압의 서곡이었고, 그 중심에는 최시중 위원장이 있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해 12월 19일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는 "공영방송으로서의 MBC, 민영방송으로서의 MBC 등 여러 형태로 일컬어지고 있는 문화방송의 오늘의 현실에서 과연 MBC의 정명(正名)은 무엇인가. 이 자리가 축하의 말보다 오늘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는 냉엄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언론의 정명이란 권력 비판입니다. 하지만 이후 MBC에는 정권보호의 정명을 위한 낙하산 사장들이 내려왔고, MBC는 'MB씨'가 되어버렸습니다.

언론탄압 상징이 "나는 언론탄압하지 않았다"

언론인 출신 최시중이 오히려 언론 탄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언론 탄압을 한 적이 없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지난해 11월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시간에 정태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무소속)과 최시중 당시 위원장은 이런 설전을 벌였습니다.

"검찰의 인터넷 괴담 수사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게 아닌가?"(정태근)
"이명박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적이 없다."(최시중)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적이 없나. 단언하나. 단 한 번도 없나?"(정태근)
"없다."(최시중)

이에 앞서 지난 해 3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2기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뒤, 일부 언론 등에서 내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당사자라고 비판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억울하다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마디로 '악어의 눈물'이었습니다.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위원장 시절 방통위 누리집에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익성을 확대하는데 힘쓸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 방통위누리집



최 전 위원장은 재임 시절 방통위 누리집 인사말에서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익성을 확대하는 데 힘쓸 것입니다. 그래서 방송통신 융합의 모든 혜택을 국민이 고루 누리는 '방송통신 국민 주권 시대'를 열어 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꾸준한 관심과 격려를 기대합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거짓말을 해도 이렇게 뻔뻔하게 할 수 있습니까? 측근과 친인척이 비리로 줄줄이 잡혀 가는데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랑하던 이명박 대통령과 닮아도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왜 최 전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 '멘토'인지 증명되었습니다.

최 전 위원장은 <조중동> 종편에는 어쩌면 이 대통령보다 더 뒷배입니다. 지난해 12월 10일 <한겨레>는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6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중국음식점에 주요 대기업 광고담당 임원과 광고업계 간부들을 불러놓고 "광고를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보고 기업들은 광고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최 위원장은 또 "광고가 활성화돼야 산업이 큰다"며 "기업들이 광고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었습니다. <조중동> 종편에 '뼛속까지 특혜'를 주려고 마지막까지 힘쓴 것입니다.

KBS가 '김비서'가 되고, MBC가 'MB씨'가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최시중 전 위원장이었고, <조중동> 종편 탄생과 특혜 중심에 바로 그가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고통이 여전합니다. MBC 노조 총파업이 석 달을 앞둔 지금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독재정권 이후 가장 많은 언론인 해고 기록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최시중이 남긴 언론의 '주홍글씨'입니다. 최시중이란 이름 석 자를 잊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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