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책이 여기에...너무 아깝네
[책동네 새얼굴 - 4월 넷째 주] <사람 냄새>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외
김수박 쓰고 그림, 보리 펴냄, 2012년 4월, 132쪽, 1만2000원
지난달, 10년 넘게 써온 카세트를 버림으로써 내게 삼성 제품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내가 '삼성불매'에 동참하게 된 것은 '황유미' 때문이다. 삼성에서 일하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그녀. 이 책은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증언을 통해 '삼성 백혈병'의 진실을 파헤친 르포만화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138명. 사망 54명. 산업재해 승인 단 1건.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지만 개인질병일 뿐이라며 돈봉투로 입을 막으려는 '초일류기업'. 언론도 국가도 나서지 못한 싸움에 나선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슴을 때린다. 역시 삼성에서 남편을 잃은 정애정씨의 이야기인 <먼지 없는 방>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새책②]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김삼웅 씀, 철수와영희 펴냄, 2012년 4월, 296쪽, 1만3800원
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세상이 원래 그래"라는 말을 참 싫어한다. 세상은 뜻과 뜻이 부딪히며 만드는 갈등 속에 늘 변해왔다. 지배하려는 이들과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저항은 그 갈등의 핵심이었다. 이 책은 세계사 속 저항의 순간들을 통해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물은 진승·오광의 저항, "아담과 이브가 일할 때 영주가 어디 있었나" 외친 존 볼의 농민봉기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저항의 역사는 진보의 정신으로 이어져왔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세상을 앞으로 움직인 역사적 사건과 사상을 돌아보며 "역사는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강신주 씀, 천년의상상 펴냄, 2012년 4월, 508쪽, 2만3000원
김수영에 대한 내 기억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외운 '참여시의 원조'라는 말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불온'이라는 열쇳말과 함께 다시 만난 김수영. '자유'를 노래한 그의 시가 5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현실감으로 읽히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이 책은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 철학서이다.
김수영은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노래했다. 하지만 여전히 '좌빨', '친북'이란 말이 반공의 칼날로 사용되는 현실. 저자는 김수영을 '인문정신의 자긍심'이라 평하며 이 땅의 자유와 인문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흔한 시인론에서 벗어난 대중적인 서술이 읽는 이의 부담을 덜어준다.
강경석·강무홍 외 씀, 부키 펴냄, 2012년 4월, 448쪽, 1만4800원
'책동네 새얼굴'에서 소개하는 신간은 매주 다섯 권. 소개되지 못한 '아까운 책'에 대한 미안함은 늘 나를 괴롭힌다. 1년에 나오는 신간은 4만여 종. 독자들의 손이 닿기도 전에 서점에서 사라지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2011년에 나온 책 가운데 아깝게 묻혀버렸지만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책들을 소개한 서평집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처럼 베스트셀러만 기억되는 서글픈 책의 운명. 판매량만으로 평가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 50권을 모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탐서가 50인이 저마다의 기준으로 뽑은 책들. '책 편식'이 고민인 독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듯하다. 이 책 역시 '아까운 책'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바람이다.
정지창 씀, 한티재 펴냄, 2012년 4월, 288쪽, 1만5000원
아무리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들 하지만, 기자에게도 기사가 아닌 글로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더 유효할 때가 있다. 글쓴이의 생각과 삶을 편안하게 보여주는 이른바 '잡문'를 통해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이 책은 원로 민중문화운동가인 정지창 민예총 이사장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쓴 칼럼집이다.
"유신시대를 기자로 겪으며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엉터리 기사보다는 잡문을 쓰는 것을 더 보람 있는 일로 여겼다"는 저자. 1970년대부터 민중문화운동가로서, 민족극 비평가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진단과 소회를 풀어놓았다. 시대적 관심과 실천을 함께해온 저자의 이웃과 세상에 대한 따뜻하고 소박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