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찰산 정상에서 만난 개. 보기와 달리 너무 순했다.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어도 내내 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렇게 큰 개를 보면 보통 두려운 마음이 많이 생겼는데 이 개에게는 그런 경계심이 생기지 않았다. ⓒ 김은주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토찰산 정상에 오르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여든 노인네처럼 숨차하고, 거의 몽롱한 의식으로 다녔기 때문에 그 전에 했던 계획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행 중 몇 사람이 계획대로 산을 탈 것이라고 아침을 먹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 대열에 동참하고픈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사실 나도 이들처럼 오늘 아침은 몸도 힘이 넘치고 기분도 아주 좋아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냉큼 등반에 가담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등반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여기가 바로 4천미터 높이고 조금만 높아져도 고산증세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서의 5백 미터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1층 식당에서는 괜찮은데 3층에 있는 객실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보면 굉장히 숨이 차오르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이상해집니다. 조금만 높아져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므로 현재 시점에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게 사실 겁도 났습니다.
이번 등반에는 나를 포함해 6명이 동참했습니다. 거기엔 우리 작은 애도 끼어있었습니다. 큰 애는 보드를 타느라 스키장에 있었고, 할 일이 없는 작은 애는 우리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등반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오르기 위해 먼저 리프트에 올랐습니다. 어제 보다는 리프트를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에 쓸려서 작은 눈알이 볼을 매섭게 때리고 목을 후벼 팠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나약해졌습니다. 이래가지고 산을 탈 수 있을까,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약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리프트가 멈춘 지점에는 리프트를 운행하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 주로 몸을 녹이는 공간이 있는데 그리로 들어가 잠시 전열을 가다듬을 때 등반을 시작하기도 전에 세 명이 기권을 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산을 오를 사람은 세 명으로 압축됐습니다. 기권한 사람들처럼 등반을 그만두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픈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나에게는 항상 이런 종류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 고통의 극한을 체험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에 등반에 동참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 토찰산 스키장의 리프트. ⓒ 김은주
▲ 토찰산 정상에서 우리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던 사람들이 하산하고 있다. ⓒ 김은주
바람은 점점 세졌습니다. 장갑을 꼈지만 손이 다 얼었습니다. 볼도 누군가 칼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모자를 제대로 안 썼는데 바람이 머리를 때려 머리에 통증이 느껴져 등반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바람이 센지 바람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때 바람에 떠밀려 날아갈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날아갔다면 아마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한 발아래는 수직 낙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좀 불안했습니다. 바람의 세찬 기세 때문에 두렵기도 했지만 고도가 올라갈수록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속도 좀 울렁거리고 심장에 통증도 느껴져 불안했습니다. 올라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호흡에 마음을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기적처럼 몸이 괜찮아졌습니다.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더 높이 오를수록 토찰산의 여러 능선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눈구름에 가려진 새하얀 산이 새파란 하늘과 선명한 색의 대비를 보이며 정말 절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더 만족시키는 것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오직 눈과 바람과 하늘뿐인 공간을 휘적휘적 수행자처럼 올라가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었습니다. 그 순간 의식은 어떤 때보다도 집중되고, 만족감은 상승됐습니다. 아마도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은 이런 맛에 그 험난한 산을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난 이런 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칼바람 속을 기도하며 올라가는 그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칼바람 속에서 바라본 멋진 풍경이 이번 여행을 완전히 좋은 여행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순간이 없었다면 여행은 그저 그런 여행이 될 뻔 했는데 이 순간이 있었기에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니 난데없이 개가 한 마리 서있었습니다. 진돗개처럼 생겼고, 덩치도 그만했는데 굉장히 순했습니다. 가만히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어디 들어갈 곳도 찾지 못한 채 그 매서운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서있었습니다. 둥그런 집 안을 들어가면서 함께 데리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내겐 그럴 용기도 권리도 없었습니다.
둥근 접시 뚜껑을 엎어놓은 것 같은 집 안은 어둡고 좁고 이미 많은 등산객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우리 세 명이 들어섰을 때 남자 여럿이서 준비해온 간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오렌지도 있고, 키위도 있고, 포도도 있고, 견과류도 있고, 감자 샐러드도 있었습니다. 그 남자들은 우리에게 음식을 권했습니다. 권하는 족족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히 난에 싸먹은 감자샐러드는 너무 맛있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가져간 즉석 미역국을 좀 나눠주었습니다. 그들은 수프로 이해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면서 맛있다고 했는데, 미역을 처음 먹었다는 사실에 좀 의아했습니다. 하긴 미역을 먹는 나라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산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먹을 걸 아낌없이 나눠주면서 즐겁게 웃는 그들은 참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영화배우 스티븐 부세미를 닮은 외모 때문에 친근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헤어질 때 이란과 한국은 같은 나라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터키인들이 언젠가 우리나라에 대해 형제국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뉘앙스였습니다.
한국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이었습니다. 이란에서 만난 대부분의 이란인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우호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른데도 왜 이런 생각을 할까 하고 나름 연구해봤는데, 아마도 드라마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대장금>과 <주몽>이 이란에서 시청률 70프로 대의 드라마로 인기를 끌면서 정서적인 교감을 이룬 게 이런 생각의 근원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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