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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비법 공개... 손찌검이 사라졌습니다

"달리기 1등했더니, 이제 안 때려요"

등록|2012.05.03 14:12 수정|2012.05.03 15:00

1등큰애가 운동회 달리기 대회에서 1등했습니다. 손등에 찍힌 표시가 어디서 많이 본듯합니다. ⓒ 황주찬


상으로 공책을 네권 받았습니다. 한권은 친구에게 줬답니다. 벌써부터 나눔에 대한 맛을 알았군요. ⓒ 황주찬



큰애: "아빠, 운동회에서 1학년 대표로 달린다요.('달려요'를 이렇게 발음합니다.)"
아빠: "잘했다!"
큰애: "나, 때리던 애들이 달리기 잘하는 비법이 뭐냐고 물었다요."
아빠: "그래? 그럼, 애들이 이제 너 안 때려?"
큰애: "예."
아빠: "와! 잘했다. 잘했어. 휴~ 한시름 놨다."

큰애가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대회에서 1등을 했습니다. 연습할 때부터 줄곧 1등을 했나 봅니다. 같은반 친구들이 비법이 뭐냐고 물었답니다. 큰애를 괴롭히던 두 녀석도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두 녀석에게만 살짝 기술을 알려줬습니다. 그후, 그 녀석들의 괴롭힘이 사라졌습니다.(관련기사 : 초등학생 아들, 계속 맞고 다닙니다. 어쩌죠? )

지난 1일입니다. 달력에 보니 '근로자의 날'이랍니다. 근로자는 쉬는 날이겠군요. 저는 직장에 나갔습니다. 정각 6시에 퇴근했더니, 큰애가 뒷짐을 지고 천천히 다가와 손을 쑥 내밉니다. 손등에 푸른색으로 '①'이라는 표시가 박혀있네요.

어디서 봤을까요? 눈에 익은 모습인데요. 곰곰이 생각하니, 돼지고기 등급표시와 비슷합니다. 손등에 찍힌 도장을 보니, 기분이 묘해지네요. 큰애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달리기 대회에서 1학년 대표로 뽑혀서 1등을 했답니다. 상으로 공책도 받았답니다.

네 권을 받았는데, 한 권은 친한 친구에게 주고 집에는 세 권만 들고 왔습니다. 아내가 섭섭해합니다. 일단 집에 가지고 와서, 엄마에게 자랑한 후 친구에게 선물해도 늦지 않을 텐데…. 아무말 없이 귀한 상을 친구에게 건넸답니다. 아쉬워하는 아내와 달리 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줬습니다.

잠들기 전 들은 비법, 공개합니다

운동회봄 운동회가 열립니다. 어릴적 운동회때 어머니가 입에 넣어주던 김밥 한줄이 생각나네요. 어머니가 못 오실때도 있었지요. 친구들은 엄마와 다정하게 점심을 먹는데 저는 홀로 건물 뒤쪽 수돗가로 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황주찬


순서운동회에서 펼쳐질 다양한 행사들이 빼곡히 적혀있네요. ⓒ 황주찬


그나저나 달리기 1등 한 비결이 뭘까요? 큰애를 밤늦도록 쫓아다녔습니다. 비법을 캐내려고요. 아들은 자신 만의 기술을 공개하지 않더군요.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양 이리저리 피하기만 합니다. 제가 귀찮게 계속 물으니, 거실로 도망칩니다.

큰애 뒤를 곧바로 쫓았지요. 이번에는 큰방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저도 자존심이 있지요. 끈질기게 꽁무니를 밟으며,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달리기 잘 하는 비법' 꼭 듣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깁니다. 결국, 큰애는 잠들기 전 제게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아들 말이, 달릴 때 팔에 힘을 줘야 한답니다. 힘을 바짝 준 팔을 앞뒤로 힘껏, 그리고 빨리 휘저어야 한답니다. 그러면 다리가 뜨거워지면서 빨리 달린답니다. 소중한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저도 운동장에 나가 실험해 볼 참입니다.

신기한 일은 아들을 괴롭히던 두 녀석이 달리기 대회에서 1등한 아들에게 찾아왔답니다. 몸집은 작지만, 다부진 아들이 내달리는 모습을 보고 기가 꺾였나 봅니다. 쉼 없이 아들을 괴롭히던 녀석들이 비법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후, 남몰래 하던 손찌검이 없어졌답니다.

아들의 큰 힘, 어디서 나온 것일까

산행2011년 4월, 백운산을 오릅니다. 다리에 힘이 팍팍 들어갑니다. ⓒ 황주찬


나무타기신나게 나무에도 오릅니다. 팔과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겠죠? 달리기 1등 비법이 이런 훈련(?)때문일까요? ⓒ 황주찬


당연한 결과지요. 비법을 전수해 준 스승님께 어찌 감히 손을 대겠어요. 그나저나 큰애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을까요? 짐작건대,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에 올랐던 일이 좋은 결과를 얻은 듯합니다. 등산이 아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요?

높은 산도 여러 번 올랐습니다. 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린이집에서는 숲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고요. 그 일이 쌓여서 이번에 쾌거(?)를 이룬 것이라고 마음대로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계속 세 아들을 데리고, 산을 찾으렵니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마음에 심어줘야지요.

또, 쉽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도 싹 버리게끔 혼자서 걷는 연습을 끊임없이 시켜야겠습니다. 그러면 작은 애와 막내도 초등학교 입학해서 달리기 1등 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한 가지 걱정이 듭니다. 큰애와 둘째가 내년이면 같은 학교에 다닐 텐데 둘째가 형보다 달리기를 더 잘하면 어떡하죠?

덩치도 비슷해서 벌써 형의 자리를 넘보고 있죠. 둘째에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잡아줘야 할 텐데….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둘째는 팽개치고, 큰애만 산에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여하튼 둘째와 막내도 큰형에게 달리기 비법을 전수받을 테니까, 큰형을 함부로 대하진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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