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에게 제대로 이별을 고한다
무분별하게 쓰레기들이 버려지는 것...더 이상은 못 참겠다
▲ 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자발적인 쓰레기 퇴치 행위 ⓒ 임재근
일요일(4월 15일), 아침 8시 30분. 자다 일어난 남편이 허겁지겁 씻고, 옷을 갈아입고 부산을 떤다. 두 눈을 한번 비비고 나서야 아차 떠오르는 오늘 아침 우리의 일정. 봄맞이 아파트 주변 대청소를 입주민들이 모여 하기로 한 날이다. 부랴부랴 준비를 마친 남편만 간신히 배웅하고, 집을 나서지 못했다. 청소를 하러 나간 남편은, 몇몇 주민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사진들을 담아 오전 10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쓰레기 많아?"
"응, 주워도, 주워도 자꾸 보이더라."
"고생했어. 다른 사람들도 고생했네. 뭐가 제일 많았어?"
"뭐, 담배꽁초, 비닐, 과자봉지 같은 것들…."
"으이그,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이 큰 문제야."
쓰레기들이 가야 할 곳으로 제대로 보내주기 위해 아침부터 쓰레기와의 이별을 준비한 주민들을 보며, 쓰레기와 이별하지 않고 그대로 버리고 방치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왜 제대로 된 이별의식이 없는 것일까. 입주민까페를 통해 전체공지 되었지만 아쉽게도 몇몇 주민들로만 실행된 이번 자발적 청소 행위가, 무지막지하게 쓰레기를 버려대는 또 다른 주민들에게 전하는 부탁이면서, 나아가서는 경고가 될 수도 있겠다.
쓰레기와의 이별의식을 멋지게 솔선수범한 그들이 자랑스럽다. 또한 주변이 쓰레기로 인해 지저분하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집착할 수 있는 의식전환의 기회를 내게 던져준 입주자대표와 주민들에게 고맙기까지 한 마음도 전한다.
담배꽁초, 그 아이...
가장 먼저 이별해야 하는 아이는, 이제 너무 흔해서 질려버린 담배꽁초. 질려버렸기 때문에 이별 1순위다. 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일단 담배꽁초는 아주 작다. 어쩜 그렇게 작은 몸으로 세상 풍파를 다 겪고도 남아 있을 수가 있는 것인지…. 사람대접을 안 해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어른 아이 할 것 없는 그 많은 사람과 키스를 해봤다 해도, 그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드는 생각은 키스의 달콤함이 아니라, 욕지거리를 퍼붓고 싶은 심정이다. 허나 그 아이들에게 잘못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가만히 있었으면, 아늑하고 자그마한 박스 같은 자기 집안에 고이 뉘여 있었을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잘못을 추궁해야 한다.
▲ 교묘하게 숨어있는 도심 정원 속 담배꽁초 ⓒ 권순지
"잘 데리고 놀았으면, 이별도 잘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막 버리는 게 뭐란 말입니까. 그 아이 심정도, 갑자기 요상한 냄새를 풍기는 그 아이를 만난 흙과, 공기와, 나무들의 심정도, 그 모두를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 본 적이 없었겠지요. 특히, 안 그래도 이상한 냄새 나는 그 아이를 하수구에까지 버리는 사람들아! 냄새나는 그 아이도 불쌍하고, 그 냄새 맡는 다른 사람들도 불쌍하지 않나요? 그리고 하수구 막히면 책임지실 건가요?"
놀이터의 외로운 녀석들
놀이터에도 이별의 아픔을 숨긴 채, 외로이 떨어져 지내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녀석들에게서 버림 받았기 때문에 그냥 녀석들이라고 부르겠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녀석들은 속은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더니, 속은 텅텅 비어 있는 주제에 겉만 화려해서 눈에 띄기만 할 뿐 어디 하나 쓸모가 없는 녀석들이다. 같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므로 최대한 빨리 이별해야만 하는 존재들.
▲ 아파트 놀이터의 알록달록 옷을 입은 쓰레기들 ⓒ 임재근
이 겉만 요란한 녀석들을 버린 조그만 녀석들에겐, 버렸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어른들에게서 배워, 맛있는 것만 홀랑 빼먹고 버려 버렸다. 이젠 맛있는 게 없어진 녀석들을 아무렇게나 버린 조그만 녀석들. 변하지 않는 어른들은 그 조그만 녀석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
맛있는 것이 사라져서 요란한 빈껍데기만 남았더라도, 모두를 위해서 쓰레기와의 이별은 정성껏 해줘야 하는 거라고 가르칠 수 있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 '너도 이 놀이터에서 친구가 없어 혼자 놀면 외롭듯이 저렇게 혼자 나뒹굴고 있는 녀석들도 외로울 것이다' 라고 센스 있게 교육해 줄 어른이 필요하다.
길고양이가 습격한 이유
아파트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걷다보면, 이별은 잘 해서 떠날 준비가 다 되어있었지만, 습격을 당해 집이 없어져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한 친구들도 볼 수 있다. 외로운 길고양이가 설마 외롭다고 울음소리도 못내는 그 친구들의 집을 부수고 친구하자고 한 것은 아닐 터이다. 외롭기도 했겠지만 배고픔이 더 앞선 똑똑하고 본능적인 길고양이는, 간혹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과 뒤섞인 쓰레기친구들이 모여 있는 비닐봉지로 된 집을 발견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배가 너무 고플 때마다 그 떠날 준비 다 된 친구들의 집을 부쉈던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게도 말이다. 그럼에도 얇고도 얇은 비닐집은 잘 부서졌고, 그렇게 제대로 될 뻔한 이별도 부서졌다. 결국엔 이것도 고양의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이다. 애초에 사람들이 음식물을 잘 분류하고 그 친구들을 비닐집에 이별했다면, 이런 지저분한 꼴을 한 그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과의 이별보다는 쓰레기와의 이별이 더 쉽다
연애하다가, 결혼했다가 이별하는 커플이 부지기수인 것은 웬만한 성인남녀라면 다 아는 사실. 남녀는 서로 성격이 안 맞는다거나, 상대방이 힘들게 한다거나, 싫어지거나 하는 등의 경우에 죽기 살기로 이별을 위해 노력한다. 이별이 어렵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다. 설사 처음엔 서로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이별과 동시에 아파지는 게 사람과 사람과의 이별이다.
그에 비하면 쓰레기와의 이별은 어떠한가. 너무나 쉬운 게 바로 쓰레기와의 이별이다. 물론 제대로 보내주려면 같은 친구들끼리 모아서 보내줘야 하고, 종량제봉투라는 정해진 집에 모아서 보내줘야 하는 등의 다소 번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뒤따르지만 사람과의 이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꼭 쓰레기와 제대로 이별해야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금수강산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제대로 된 이별이라는 것이 동병상련의 쓰레기친구들이 함께 모여 외롭지 않게 떠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조금만 재미있게 바꿔본다면 번잡하거나 귀찮지 않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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