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가계부채 증가 부추긴다
기획재정부 적극 검토... 금융당국, 경기침체·금융부분 부실 경고
▲ 정부가 내주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계부채 악화 우려가 크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자료사진). ⓒ 유성호
정부가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투기지역 해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이르면 내주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강남3구가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지금보다 빚을 더 내 집을 살 수 있다. 집을 사고 팔 때 내는 세금도 줄어든다. 결국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는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조치가 향후 가계 빚 증가를 제한하는 금융규제의 완화로 이어지면, 경기침체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투기지역 해제되면, 대출 늘고 세금 줄어들어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뒤, 당 안팎에서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지난달 16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도권 거래 자체가 실종돼,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기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였거나 급등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된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동산가격안정심의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또는 해제를 결정한다. 2003년 2월 대전 서구·유성구와 충남 천안시가 첫 투기지역으로 지정됐고, 서울 강남3구는 같은 해 4~6월 투기지역이 됐다.
강남3구를 제외한 지역은 2008년 11월 정부가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모두 해제됐다. 이후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카드를 만지작 거렸다.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6억 원을 초과하는 집을 살 때 빚을 더 낼 수 있다. 부채가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에서 다른 서울지역과 같은 50%로 완화되기 때문이다. 연 소득이 1억 원인 사람의 경우, 대출 한도가 4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늘게 된다.
대출이 집값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40%에서 50%로 완화된다. 10억 원짜리 집을 살 경우,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은 4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늘어난다. 또한 집을 사고팔 때는 내는 세금부담도 덜게 된다. 3주택 이상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10%포인트의 양도소득세 가산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를 악화하는 정책은 상식적으로 이해 안돼"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를 통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는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와 달리,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문제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가계부채는 2010년에 비해 66조 원(7.8%) 늘어난 912조9000억 원에 달했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가계부채가 630조7000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282조2000억 원 늘어난 것이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2일 '가계부채와 부동산 버블에 따른 위기사례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가계부채 증가가 부동산경기 악화 시에 경기침체 및 금융부문 부실로 이어져서 민간부문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악화시켰다"고 밝혔다.
고승범 국장은 또한 "우리나라는 과거 담보대출인정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을 도입하는 등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날 보고서의 의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승범 국장은 "계속 똑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금융위가 금융규제 완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한국은행 내에서도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2일 박양수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모형팀장 등이 발표한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보고서에서 과도한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2007년 이후 지속된 소비부진현상에는 주택가격 상승과 관련된 가계부채 급증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소득에 비해 과도한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가계의 소비여력이 크게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고서에는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안정을 통해 가격상승 기대를 억제함으로써 가계의 차입수요를 축소해야 한다"며 "최근 들어 지방 주택가격의 가파른 오름세로 주택관련 대출이 지방을 중심으로 큰 폭 증가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껏 가계부채 증가 문제를 경고해 온 홍종학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지난달 23일 인터뷰에서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정책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납득하기 힘들다"며 "특히,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가 금융규제 완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적극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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