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여행온 연인들, 여기 꼭 찍고 가요
[강원도 자전거여행 1] 춘천시 공지천유원지에서 신매대교까지
▲ 오리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공지천유원지. 오른쪽 붉은 지붕 건물이 '이디오피아의 집'. ⓒ 성낙선
봄이 무르익고 있다. 진달래꽃과 개나리꽃이 지고, 그 자리에 철쭉이나 개나리꽃만큼이나 노오란 애기똥풀이 자라고 있다. 나뭇잎은 연한 녹색에서 점점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한낮의 기온이 때때로 30도 가까이 치솟아오를 때도 있어 벌써 여름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반팔 소매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아직도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다. 녹음이 짙어지고 날이 따뜻해져서인지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일 년 사계절, 날씨 걱정하지 않고 자전거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 초봄에는 꽃샘추위와 황사에 시달려야 하고, 여름에는 수시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아야 하는 데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머리꼭지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불볕더위와 싸워야 한다.
가을 역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기는 하다. 하지만 가을에는 태풍이라는 복병이 있어 날을 잘 골라잡아야 한다. 겨울에는 맘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런 반면에,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요즘에는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 공지천유원지에서 시작되는 단풍나무길. 오른쪽은 의암호. ⓒ 성낙선
자전거여행지로 거듭나는 호반의 도시, 춘천
춘천이 자전거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가는 복선전철이 개통된 이후, 전철에 자전거를 싣고 강촌이나 춘천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지난 해 말 북한강 자전거길이 열리고 나서는 그 수가 더 많아졌다.
가평역에서 고슴도치섬으로 알려져 있는 위도 아래 신매대교까지 자전거도로가 깔렸다. 물길을 따라가는 자전거길이라 일반 도로 위를 달리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경쾌한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사실 이곳은 북한강과 의암호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북한강가에 자전거도로를 놓기 오래 전부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 소양2교에서 바라다본 봉의산. 녹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 성낙선
최근에는 또 의암호를 순환하는 100km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해서 또 떠들썩하다. 의암호 주변 자전거도로 중 일부 단절구간을 연결하는 공사를 벌여 의암호 전체를 순환하는 자전거도로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강촌과 춘천을 연결하는 자전거도로가 모두 100km 가량이 된다.
이 자전거도로를 완성하겠다고 하면서, 춘천시는 올해 10억 원을 들여 의암공원에서 어린이회관까지 수상도로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좀 씁쓸한 구석이 있다.
올해 춘천시는 8억 원의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유치원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에 18개 시군이 있는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무상급식을 거부한 지역이 춘천시다. 그런데 10억 원을 들여 강물 위를 지나가는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하니, 마냥 반가워 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 소양2교를 건너서 바라본 의암호. 아래 시멘트길은 소양2교 밑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다. ⓒ 성낙선
공지천유원지에서 맛보던 커피 맛은 잊었지만...
북한강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놓이면서 관심을 좀 덜 받는 여행길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춘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여행 코스로 공지천에서 신매대교를 오가는 구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강물 위로 자전거도로를 건설한다며 아무리 법석을 떨어대도, 이곳의 여행길에서 만나는 풍경만큼 정겹고 낭만적인 곳은 또 없을 듯싶다.
한두 번 가보고 나서는 금방 잊히는 여행길이 있는 반면에, 이곳은 수차례를 오간 뒤에도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거리는 약 6km, 길이는 짧지만 춘천의 풍경을 상당히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여행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공지천 유원지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춘천으로 여행을 온 연인들이 한 번쯤 들러가는 커피집 '이디오피아의 집'도 거의 옛 모습 그대로다. 이 집이 문을 연 것은 1968년, 올해로 44년째를 이어오는 매우 유서가 깊은 커피 전문점이다.
그때 이디오피아산 원두커피를 선보이면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1990년 후반 쇠락의 길을 걷다가 2009년 들어 외벽에 벽화를 그려넣는 등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건물 자체는 그대로여서 옛날 풍경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 ⓒ 성낙선
건물 내부엔 에티오피아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과정과 전공 등을 설명하는 그림판들과 에티오피아 커피와 관련한 문화와 풍습 등을 소개하는 물건과 벽화 등이 전시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는 황실근위대로 1200여 명 규모의 1개 보병대대를 편성해 한국에 파병했다. 이 보병대대는 미군 수송선을 타고 21일이나 되는 긴 항해를 한 끝에 1951년 5월 6일 아침 부산항에 도착했다. 대대 병력은 1년 단위로 교체됐고, 1965년 3월 1일 철군했다. 이 대대는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것이 인연이 돼 춘천시에서 기념관을 건립했다. 춘천에 와서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치른 희생을 기억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은 의암호 나들길
▲ 의암호 나들길 표지판. ⓒ 성낙선
이 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데다 도로 한편으로 수령이 꽤 오래 된 단풍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풍경이 꽤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는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점점 더 짙은 녹색을 띠어 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광경이 파노라마 사진으로도 다 보여줄 수 없을 만큼 장쾌하다.
이런 길에서는 마냥 페달만 밟을 수는 없다. 속도를 줄이거나 때때로 자전거에서 내려 쉬어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길은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겸한 곳치곤 도로가 그다지 넓지 않아 자전거를 탈 때 조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길은 한동안 의암호를 둘러싼 둑 위를 달리다가 중도선착장 부근에서부터는 도로 옆 인도 위를 달리게 된다.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서로 분리가 되어 있지만, 쓰임새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길은 여전히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중간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소양강처녀 동산이 나온다. 언제 봐도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동상이다. 소양2교를 넘으면서 다시 호숫가에 바투 붙은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우레탄을 깔아 길이 아무 폭신폭신하다. 원래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로 만들어진 길임을 알 수 있다.
이 길은 원래 호숫가로 하얀 목책이 서 있었는데 지난 해 쇠로 만든 봉으로 울타리를 고쳐 세웠다. 하얀 목책에서 약간 목가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 예전에 중간 중간 나무토막이 부러져 나간 곳이 있곤 했는데 더 이상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도로 주변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은 여전하다.
▲ 애기똥풀 흐드러지게 핀 자전거도로. ⓒ 성낙선
녹색 하늘, 내 마음을 빼앗아간 자전거도로
▲ 춘천 시내 유일의 놀이동산인 육림랜드 후문. '동물원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 성낙선
날이 흐릴 때는 터널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어두워진다. 언제 와도 피부에 스며드는 촉촉한 느낌이 좋다. 길 주변으로 애기똥풀을 비롯해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잔뜩 피어 있다. 이 길에서는 사람도 자전거도 모두 풍경이 될 수 있다.
육림랜드는 1975년에 문을 연, 매우 오래된 놀이공원이다. 어른들 눈에는 매우 낡고 좁은 놀이공원으로 보이겠지만, 아이들 눈엔 전혀 그렇지 않다. 회전목마 같은 놀이시설에 호랑이가 사는 동물원이 있는 데다 풀장까지 갖춘, 있을 건 다 있는 종합 놀이공원이다.
주중엔 놀이객이 별로 없어 마침 폐장한 지 오래된 공원처럼 보이지만, 주말이나 방학 땐 소풍을 나온 아이들로 제법 시끌벅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조금 나이가 된 여행객들에겐 옛날 놀이공원에 놀러갔던 기억을 떠올리기 좋은 공간이다.
신매대교 부근에서 다시 되돌아선다. 이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곧장 달려 제2보충대까지 가거나 신매대교를 넘어 호수 건너편 자전거도로를 탈 수도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달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 의암호와 육림랜드 사잇길. 싱그러운 맛이 그만이다. 주말에는 육림랜드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더해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 성낙선
공지천 유원지로 돌아왔을 때는 공지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전거도로를 타보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지천은 도시 안을 흐르는 여느 하천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청계천 개조 공사 이후 도시 내 하천들이 변화를 몸살을 앓고 있는데 공지천 역시 예외는 아니다.
▲ 공지천 자전거도로 공사를 하다 만 구간. 별 생각 없이 달리다가는 큰 변을 당할 수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 위로 옛날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가 있다. ⓒ 성낙선
최근에 하천가에 조경석을 쌓으면서 자연스러운 맛이 많이 사라졌다. 조경석을 쌓고 하천 바닥을 파헤치기 전에는 모래 둔덕 위에서 아이들이 모래장난을 하며 놀던 모습을 보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된 것이 조금 아쉽다.
공지천유원지까지 왔으면, 공지천을 일부나마 들여다보고 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이디오피아의 집 앞 주차장에서 왼쪽을 보면 건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공지천교 아래를 지나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공지천이다. 공지천 자전거도로는 약 5km, 왕복을 한다고 해봐야 10km다.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신매대교까지 다녀와서 뭔가 아쉬운 기운이 남아돈다면, 좀 더 땀 흘려 달려볼 만하다.
▲ 공지천 풍경. ⓒ 성낙선
▲ 공지천 호반교 다리밑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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