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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비례 사퇴" vs. 김재연 "사퇴 불가" 진보당의 운명, 12일 중앙위에서 결론 난다

[초점] '부정선거' 수습 방안 놓고 당권파-비당권파 첨예한 의견 대립

등록|2012.05.06 21:54 수정|2012.05.06 22:06

▲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참관하러 온 당권파 당원들이 후속 조치안건 처리에 항의하자,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가 운영위 정회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공명정대한 과정을 통해 선출된 나는 합법적이고 당당하다. 문제투성이 진상보고서를 근거로 청년 비례 사퇴를 권고한 전국운영위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말이다. 하루 전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총사퇴를 권고했지만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해 '사퇴 불가'를 얘기한 그는 시종일관 당당했다. 김 당선자는 "깨끗하고 정당하게 치러진 청년 비례대표 선거를 하루아침에 부정으로 낙인찍는 이유가 뭐냐. 수만 명의 당원과 청년 선거인단을 부정선거 당사자로 혐의 씌우는 이유가 뭐냐"고 강변했다. '부정 당사자'로 낙인 찍는 이유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운영위에서 당권파들은 "일부 세력을 내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조사위 조사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김 당선자의 주장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김 당선자의 '사퇴 거부'에 대해 비당권파 핵심 관계자는 "부정·부실 선거임이 확실히 드러난 만큼 당 전체가 책임지자는 뜻에서 내린 운영위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잘못이 없다'고 사퇴를 거부한다면, 윤금순 당선자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냐"고 맹비난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김재연의 기자회견은 당권파의 지시다. 이석기가 해야 할 기자회견을 대신 하는 셈"이라며 "이석기가 나왔다면 계파의 실세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반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테니 일종의 완충장치를 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당선자의 '사퇴 거부'는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인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의 뜻이라는 것이다.

당권파 "비례대표 사퇴는 진성당원제에 대한 쿠데타"

실제, 당권파는 운영위의 권고사항 '대표단 총 사퇴, 순위 경쟁 명부 비례대표(14명) 총 사퇴, 비대위 구성' 등을 모두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당권파의 한 관계자는 "운영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당원의 투표로 결정해 선출된 비례대표가 사퇴하는 것은 진성당원제에 대한 정치적 쿠데타"라고 말했다.

운영위의 결정은 '권고안'으로 강제력이 없다. 당권파들이 끝까지 비례대표 사퇴를 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가능한 조처는 제명이다. 그러나 제명(출당조처) 조치를 해도 의원직은 유지하게 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당선인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 했을 때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진 탈당 시에만 당사자의 비례대표 의원직이 상실되고, 비례대표 후순위가 승계하게 된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비례대표 후보들이 권고를 받아줄 것이라 기대한다"라며 "(출당 조치에 대해) 아직 그렇게까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제명 등의 제재 조치가 가해지면 "당이 두 조각(당권파-비당권파) 날 수" 있고 "거기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게 통합진보당의 중론이다. 

▲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를 대신 의장직을 맡은 유시민 공동대표가 전국운영위원들과 함께 후속 조치안건을 처리하려하자, 참관하러 온 당원들이 운영위 해산을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비난 여론에 당권파가 경쟁 명부 비례대표 사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무력을 쓰면서까지 운영위의 권고안 처리를 방해한 당권파를 향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통합 논의 테이블을 이끌었던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권파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운영위에서 결정한 그 길밖에 없다"라며 "선택 안 하면 다시는 재기 불가능한 상태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운영위에서 진성당원제 운운하며 폭력을 행사한 행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진보정당의 '용팔이' 같은 행태"라고 힐난했다.

5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현장에 가보면 활동가들 어깨가 바닥까지 쳐져 있다, 조합원들이 탈당한다 난리란다, 현장이 무너진 자리에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고 한탄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이날 "사퇴를 거부할 수 있겠지만 거부할 경우 사회적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의원이 된다 해도 사실상 의정활동은 불가능해진다, 진보의 강용석·최연희·김형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위터 상에서도 당권파를 향한 비판 여론이 압도적이다.

이런 비난 여론에 밀려 당권파가 비례대표 사퇴안을 받아들이면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당선자는 전략 공천자 5명(정진후·김제남·박원석·서기호·강종헌)으로 줄게 된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 비례대표 6석을 확보했고, 비례대표 후보자는 20명까지 결정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쟁 명부 비례 당선자 14명이 사퇴하고 유시민 공동대표 역시 사퇴의 뜻을 밝힌 터라 5석만 남았다.

유 공동대표는 "결국 통합진보당은 비례 한 석을 잃게 되고 19대 국회 정원은 299명으로 돌아가게 된다"라며 "5석이더라도 대오 각성해 6석보다 큰 기회 될 수 있도록 국민에게 유용한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 책임지는 길"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사퇴 여부는 늦어도 주초까지는 결론이 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 공동대표는 "개원될 때까지 3주 넘는 시간이 있어 (사퇴 결정에) 시간 여유가 있다"며 사퇴를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주 안에 한 차례 운영위가 더 열리고 오는 12일 중앙위까지 예정된 상황이기 때문에 결론이 빨리 나야 한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핵심'...당권파의 선택은?

▲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전국운영위원들이 향후 대책에 대해 밤새 토론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의장직을 맡은 이정희 공동대표가 더 이상 사회를 보기 어렵다며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 유성호

비례대표 사퇴 여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있다. 비대위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당 혁신 조치를 당헌·당규에 넣을 수 있다. '비례대표 사퇴-대표단 사퇴'라는 단기적 수습책이 아닌, 당을 혁신할 기틀 자체를 마련할 수 있다. 비대위 구성이 진보당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오는 12일 열릴 중앙위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의 건이 핵심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당권파 관계자는 "비대위 구성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중앙위의 결과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최고 대의기구인 중앙위원회에서 결판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0여 명으로 구성된 중앙위 역시 운영위와 마찬가지로 '당의 혁신'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 중앙위 내 의사결정에 대한 비율 배분은 '구 민주노동당계 55, 국민참여당계 30, 통합연대계 (진보신당 탈당파) 15'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구 민주노동당계 내에서도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연합 등을 제외한 다른 주체들은 비당권파와 뜻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대위가 구성된다고 해도 당권파가 비대위에 '보이콧'을 선언하고 당 혁신 작업을 반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민참여당계인 천호선 대변인은 "당권파(구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혁신의 뜻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수"라며 "당권파와 비당권파를 뛰어넘는 혁신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에 대한 의지가 당 내에 있기 때문에 진통을 겪더라도 비대위 구성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낙관이다.

천 대변인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전선이 형성되면 당 혁신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며 "비당권파만의 연합에 의한 혁신은 가능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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