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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갇혀 있는 상황, 아이들에게 설명 못했다

[현장] 대한문 분향소 33일 차 풍경

등록|2012.05.07 09:19 수정|2012.05.07 11:45

5일 추모기도회한기연 주관으로 추모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 이명옥


5월 5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린 지 33일째다. 길거리서 안간힘을 다해 투쟁을 벌이는 이들에겐 특별히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달일 것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가족과 함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일이 많은 까닭이다.

주말인 데다 기념일까지 겹쳐 분향소 앞이 썰렁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분향소 앞에 다다랐다. 다행히 '한기연'(생각하고 행동하는 젊은 기독교인들의  모임)의 학생들이 추모기도회를 준비 중이었다.

아이가 셋인 고동민씨도 아이가 둘인 김정욱씨도 분향소를 지키며 앉아 있다. 서로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는지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지회장 모두 분향소에 있다.

멋진 연주와 노래를 들려 준 이지은 김혜정 학생이지은 김혜정 학생이' 5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Over the Rainbow ' 등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 이명옥


한기연이 인도하는 추모기도회는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만화영화 주제가도 부르고, 만화영화에 대한 추억담도 이야기하는 동안 모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만화 이야기를 하면서 어릴 적에 <플란더스의 개>라는 명작 만화를 즐겨봤다는 한 남학생은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도 노동을 해야 하나"는 걱정이 많이 됐다고 고백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당연한 고민인지도 모른다.

10살 , 8살, 3살 세 자녀를 두고 있는 고동민씨는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하루를 지내고 오라고 해도 선배들에게 미안하다며 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고동민씨가 문화제에 참석 중이다. ⓒ 이명옥


"애들은 아빠가 없어도 잘 논다고 합니다. 미안해서  제가 먼저 전화를 하지는 못했고 6시 반쯤 집사람이 문자로 맨션이 날아왔어요. '오늘 안 와?' 그래서 문화제 마치고 내려 갈 수 있으면 내려가 보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는 등 그런 문자를 기대했으나 그게 아니고 '음 거점으로 와' 그렇게 담담하게(하하하~ 학생들 웃음)...

엊그제 건강검진 받으려고 내려갔는데 집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제 아빠 없는 생활이 익숙해졌다' 제 입장에서는 죄스럽게 들릴 수 있는 얘기나 집사람은 당연한 듯이 '너 없는 생활이 익숙해져서 내가 그 생활에 끼어들면 불편해지거나 어려워진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좀 그랬습니다...

그래요. 지금 좀 분위기가 그런데 어렵지만 이렇게 투쟁하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죄책감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동지들과 어깨를 거는 것이 중요한 국면에 서 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마음이 먹먹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해야 될 것 같고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동민씨가 마이크를 잡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투쟁이 한창일 때 아내의 뱃속에 있었다던 막내 가온이를 비롯해서 세 아이들과 아내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런 그리움을 고씨는 에둘러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들을 가끔 보니까 마치 친척집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이에요. 아침에 헤어질 때 가온이가 '아빠'를 부르면서 1시간이나 울었어요. 사실 집사람이 가온이 가졌을 때 파업 투쟁 중이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집사람이 부른 배를 하고 와서 '투쟁'을 외치고 그랬거든요. 가온은 세상의 가운데에 서라.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에요. 고이가온 잘 어울리죠?"

고씨는 자신의 성 '고'와 아내 이정아씨의 '이'를 사용하는 양성평등 주의자다. 김정우 지부장도 김김정우로 양성으로 표기를 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이 참 성실하고 가정적이며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생일을 맞았는데도 전날(4일)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왔다며 주말 분향소 지킴이를 자청해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김정욱씨는 이렇게 말했다.

▲ 김정욱씨가 발언 중이다. ⓒ 이명옥


"한기연 동지들 얼굴 보니 반갑습니다. 김정욱입니다. 반갑습니다. 6개월 정도 감옥에 있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면회를 왔는데 철창 사이로 아빠가 갇혀 있는 것, 얼굴은 보이는데 어쨌든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실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투쟁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야기를 하더라도 우리 아이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들이 여전히 좀 남아 있습니다.

예전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것을 주지는 못하지만 없는 중에서도 항상 많이 사랑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이 좀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실은 저는 어제 우리 아이들하고 우리 집사람하고 연세의료원에서 가족들 모아서 어린이날이라고 뮤지컬을 보여줘서 어제 제가 우리 아빠들 대표해서 우리 가족들 데리고 63빌딩가서 뮤지컬을 보고 왔습니다.(우와~ 학생들 함성) 

저만 어떻게 이렇게 잘 좀 보낸 것 같고요. 오늘은 다른 동지들 미안해서 제가 자원해서 오늘하고 내일(5-6일) 여기에 있겠다고 왔는데 지부장님이 고동민 동지나 몇 사람 아이들 있는 사람 가라고 하는데 고동민 동지가 갔어야 하는데 계속 안 가고 버티고 있네요. 빨리 마무리돼서 가정으로 돌아가야지요. 우리  고동민 동지 아이들이 셋입니다. 특히 가온이 너무 귀엽거든요. 평택의 와락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많이많이 방문해 주시고 항상 우리 아이들과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이 항상 웃을 수 있는 그런 날들이 곧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아빠를 보던 아이들, 여전히 집에도 잘 오지 못하고 투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갈이 없다는 김정욱씨의 고충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구조적인 모순에 저항하며 함께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아빠를 아이들이  자랑스러워 할 날이 올까.

김여름 학생건반을 다루고 있는 김여름 학생 ⓒ 이명옥


김정욱씨의 말을 듣고 난 뒤 건반을 담당한 김여름 학생이 자신의 부모님도 운동권이었다며 엄마와 아버지가 투쟁 현장에서 만나 결혼을 했고 투쟁 중에 자신을 낳았기 때문에 모태 투쟁가 출신이라고 밝힌 뒤 이야기를 했다.

"학력도 되고 지식도 많은 부모님인데 왜 가난하게 살까 그게 운동권으로 투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운동권이 아니었더라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가세가 기운 것과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한 것은 투쟁을 열심히 해서라기보다 아빠가 경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부모님을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여기 계신 동지들도 아이들이 자나서 엄마, 아빠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말씀 나눔을 담당한 신하나 간사는 요즘은 사람이 좀 싫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요즘 고장 난 인간이 많아서 멘붕(멘탈붕괴) 상태여서 인 것 같다고 자평을 내놨다.

신 간사는 고장 난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로 분향소를 구사대를 동원 수시로 부수고 원직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신규채용 공고를 버젓이 내고 있는 쌍용자동차 사주와 감정적이고 과잉반응을 하는 경찰을 예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신 간사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고장 난 사람들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지만 함께  분향소를 지키는 사람은 과연 어떤 차이를 지니는 것일까, 22명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 지리가 마음이 만나지는 자리, 사람 같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기도회가 끝나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참석한 사람들과  따뜻한  포옹을 하며 헤어진 뒤 김정우 지부장이 말했다.

"만일 다시 결혼식을 한다면 모두 오래오래 안아주고 싶어요. 제가 아버지 학교 2회 졸업생이거든요. 처음에 아버지 학교에 다니자고 했을 때 난 아내와 아이들한테 잘하는데 왜 그런 곳에 가야 하나 싶었어요. 아는 분이 하도 오라고 권유해서 갔는데 서로 고해성사 비슷한 고백의 사간도 갖고 그랬는데도 별 감동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 날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의식'이 있었어요. 아내의 발을 씻어주는데 순간 울컥 하더군요. '아,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표현을 못하고 살았구나' 싶은 것이... 그 후 아이들도 매일 안아주려고 하는데 술을 마시고 들어간 날이면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요즘도 가끔 아이들에게 "이리와 아빠랑 허그 한번 하자'하면 아이들이 '아빠 또 왜 그러세요' 그러면서 어색해 해요. 서로 많이 안아주고 위로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5일 분향소 가족 중 쌍차 김정욱씨와 2000년 이후, 미선효선, 광우병 촛불, 한미 FTA  집회 등으로 길거리서 서너 번이나 생일을 맞는다는 신영철 시민 등 두 사람이 생일을 맞았다. 생일날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 '함께 살자'며 어려운 고비를 같이 넘긴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가족과 함께할 날은 언제일까.
덧붙이는 글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는 11일에 김제동씨 사회로 바자회와 콘서트가 펼쳐집니다. 분향소는 49제 날인 5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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