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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요양원 보내자던 엄마... 다 이유가 있었네

[기사공모-나의 어머니] 동화같던 엄마의 '거짓말'이 그립습니다

등록|2012.05.11 10:38 수정|2012.05.11 10:38

▲ 딸이 그린 삽화. 어머니의 '거짓말'이 그립다. ⓒ 이하영

내가 11살이었을 때였다. 부쩍 '밤마실'이 잦아지자 엄마는 '뻐꾹산 여우' 이야기로 겁을 줘서 내 발을 붙들어 놓으려고 했다.

"영환이 아저씨 알지? 그 아저씨 예전에 뻐꾹산을 넘어가다가 하마터면 큰 변을 당할 뻔했단다. 눈이 하얗게 내린 밤에 뻐국산을 넘다가... 아, 글쎄 길을 잃어버렸다지 뭐니. 아무리 걸어도 그 길이 그 길 같더래,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갑자기 눈처럼 하얀 여우가 나타나서는..."

만약 그때 정신을 잃었으면 분명 그 여우한테 잡아 먹혔을 텐데, 다행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서 변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뻐꾹산은 내 고향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이다.

엄마는 "그 여우가 배가 고파지면 가끔 마을에도 내려오니 밤늦은 시간에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그 무섭다던 하얀 여우도 내 발을 붙잡지 못했다. 난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도 '밤마실'을 계속 다녔다.

내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실'을 다닌 이유는 바로 텔레비전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이 주는 즐거움이 두려움을 이겼던 것. 친구들 집에는 텔레비전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없었다. 내 친구는 모두 세 명, 난 그 친구들 집을 사나흘 간격으로 번갈아 다니며 텔레비전을 봤다. 한 집만 계속 가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젠가 내가 텔레비전 때문에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오밤중에 남의 집을 제집인 양 들락거리는 염치없는 꼬마를 한결같이 반겨 줄 어른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의 예상대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을 겪고야 말았다.

"야! 인마! 이제 그만 집에 가! 밤늦게 오지 좀 마라!"

제일 친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의 아버지가 역정을 냈다. 난 얼굴이 빨개져 도망치듯 뛰어 나왔다. 그 일이 있은 뒤 11살 꼬마의 거침없는 '밤마실'은 끝났다.

어느 날, '요즘은 왜 밤마실을 가지 않느냐'고 엄마가 물었다. 난 주저주저 하다가 그날 내가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한참 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날 밤, 엄마와 아버지가 다투는 소리를 잠결에 어렴풋이 들었다.

다음 날, 엄마는 "우리집에도 텔레비전이 들어오니 더 이상 밤마실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난 엄마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며칠을 매달려도 이뤄지지 않던 소원이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그런데, 엄마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며칠 후 우리 집에 거짓말처럼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거짓말쟁이'가 된 엄마

▲ 동화 같던 엄마의 거짓말이 그립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중 한 장면. ⓒ 세인트폴시네마


세월이 흘러 엄마는 할머니가 됐고 난 아저씨가 됐다. 엄마는 시골집을 지키고 있고 난 도시에서 살고 있다. 내가 집을 떠난 이후, 엄마는 진짜 거짓말쟁이가 됐다. 엄마 표현대로라면 '공갈'이다.

"텃밭 갈고 고추 모종해야 하는데... 아버지 혼자 못 하겠단다. 일요일 날 바쁘니?"

일요일에 집에 와 농사일을 거들라는 엄마의 말씀. 하지만 일요일에 고향집에 가보면 이미 일이 끝난 경우가 다반사였다.

"벌써 다 했네... 누가 한 거야? 아버지 혼자 못 한다며?"
"어제 작은 아버지 하고 같이했어.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고단한 너한테 밭 갈라고 하기가 뭐해서..."

농사일을 핑계 삼아 부른 것이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보고 싶고, 뭔가 주고 싶은 게 있어서 한 거짓말이었다. 쌀, 김치, 쑥갓, 시금치, 참기름 같은 것들을.

요즘도 엄마는 거짓말을 한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예전에 하던 거짓말처럼 마음 편히 속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아버지 요양원에 보내자. 어제는... 아, 글쎄. 이불 홑청을 가위로 다 오려놨지 뭐니... 치매가 이런 병인 줄 정말 몰랐다."

분명 거짓말이다. 이제 더 이상 나도 속지 않는다. 며칠 있으면 다시 전화가 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얘, 막내야. 며칠 전 내가 한 말 공갈이다. 그러니 요양원 절대 알아보지 마라. 화날 때는 어디로 보내고 싶다가도 그때만 지나면 마음이 또 바뀌지 뭐니... 내 마음이 갈대다, 갈대."

이런 식의 전화 통화가 오간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아버지는 치매 중에서도 희귀 난치병으로 알려진 '진행성핵상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후 아버지는 가족들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요양원을 고집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난 아버지와 엄마 의견을 모두 존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젠 엄마의 '거짓말'이 그립다

▲ 예전부터 아버지는 당당했다. 계속 당당한 모습이시면 좋겠지만... ⓒ 세인트폴시네마


이태 전까지만 해도 고향집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찍힐 때마다 가슴이 덜컥했다. 혹시 아버지가 잘못됐다는 전화일까봐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그새 담대해진 것인지, 아니면 지친 것인지, 이제 고향집 전화번호가 찍혀도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이런 마음을 들킬까 봐 온갖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이 가증스러워 가슴이 덜컹거릴 뿐이다.

아버지가 당당한 모습으로 생을 정리하기를 바랐다. 아니, 꼭 그럴 것이라 믿었다. 아버진 강하고 늘 당당했다. 전쟁터(한국전쟁)에서도 당당하게 살아 왔고, 아프기까지는 자식들에게 손 한 번 내밀지 않고 당당한 노인으로 살아왔다.

언젠가, 아버지가 소변을 참지 못하고 바지에 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 얼굴에 스미는 낭패감을 보며 가슴이 저렸다. 거짓말 같았다. 아니 거짓말이길 바랐다. '이 녀석아, 그동안 감쪽같이 속았지'라며 환하게 웃는 아버지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거짓말은 이젠 동화가 아니다. '하얀 여우'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제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 난감한 현실일 뿐이다. 치매 걸린 아버지 곁을 오롯이 지키다 갈대가 된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가 이야기해주시던 '하얀 여우'가 그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나의 어머니'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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