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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래방 참사, 엄연한 '산재'입니다

[주장] 단합대회 참석했다 이주노동자 참변... 사측은 업무상 재해 아니라는 입장

등록|2012.05.09 20:09 수정|2012.05.09 20:09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이 있어서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가정의 달이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겐 꿈과 같은 이야기다.

비록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서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을 기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에 와서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국인들에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어린이날이면 휴무인데다,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가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버이날이면 조그마한 동네 마트에서도 카네이션을 파는 것을 보면서 어버이날에 대해 듣고 보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외국인력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개인으로만 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라는 부분에서 접근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개념을 배제해 버린다. 이 말은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가족을 동반하여 입국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가족'과 함께 살 권리를 배제 혹은 박탈당한 이주노동자들은 늘 그리움 속에서 5월을 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이주노동자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가족의 문제로 풀어가고자 하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합대회도 회사 모임" 판례... 산재 신청 못할 이유 없어

▲ 부산 부전동 시크노래주점에서 지난 5일 밤 화재가 발생해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화재가 난 '시크노래주점' 건물. ⓒ 부산소방본부


그런 가운데 어린이날에 부산 서면에 위치한 노래방에서 화재로 9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당하는 큰 참사가 있었다.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이들 중에는 자동차부품업체인 ㈜기수정밀에 근무하던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세 명이 있었다.

이 사고로 기수정밀은 한국인 노동자 세 명과 함께 총 여섯 명의 직원을 한꺼번에 잃었다. 화재 사고가 언론에 보도될 초기에는 기수정밀 노동자들이 '회식' 혹은 '단합대회'를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보도되다가, 사측 관리이사의 인터뷰 이후 '회식'이니, '단합대회'니 하는 말들은 사라지고, 사측 입장만 그대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에 보도된 회사 측 입장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손영태 관리이사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사측은 "근무시간이 아닌 주말 오후에 본인들이 별도로 약속을 잡아 가진 자리인 만큼 보험이나 보상을 거론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우선 선을 그은 뒤, "함께 일하던 식구였던 만큼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하면 사망 사고에 대해 위로를 표할 수는 있지만, 업무상 재해 관련해서는 사측과 연관성이 없다고 미리 입장 표명을 한 것이다.

9일 오후 기자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도 회사 측은 같은 입장임을 밝혔다. 손영태 관리이사는 "산재가 될 수 없다. 그날 5시까지 일을 했다. 회식이라고 하는데, 자기들끼리 마음 맞아서 나간 거다. 회식이 아니었다"라고 산재로 처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상해보험을 든 것도 아니고, 보상이 애매하다. 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뿐인데. 직원들과 임원들이 위로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거듭 밝혔다.

사측에서 희생자들은 산업재해가 적용되는 회사 모임이 아닌 개별적 만남으로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미리 입장 표명을 한 이유는 산재 신청을 기피하기 위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산재 처리가 될 경우 사망자가 여섯 명이나 되기 때문에 피해 유가족들과 보상 문제를 놓고 민사적인 부분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비용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에서 산재 신청을 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언하고 있는 이유는, 비용적인 측면과 함께 산재 보상과 관련한 유가족과의 충돌, 대외적인 이미지 등 외적인 부분에서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사측은 행사 참여에 강제성이 있거나, 사업주의 지시 또는 적극적인 독려가 없었던 사실 등으로 보아 회사의 노무관리 또는 사업운영상 필요한 행사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희생자 가족들 위해서라도 '산재 신청' 피해선 안 돼

▲ 이주노동자들이 나오는 영화 <방가? 방가!>의 한 장면 ⓒ 시너지


그러나 사측의 주장과는 달리 일반적인 판례는, 단합대회는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회사의 노무관리 또는 사업운영상 필요한 행사로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서 발생한 재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노래방 화재 사고의 경우 기숙사 생활을 하던 입국 1년 미만의 새내기 이주노동자들과 새내기 내국인 직원들이 전역을 한 달 앞둔 내국인 직원과 함께 동행했다가 발생한 사건으로 단합대회의 성격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또, 일정 부분 사내 위계질서 속에서 암묵적 강압이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산재 여부를 놓고 충분히 다퉈볼 여지가 있다.

이번 사건 피해자들은 이주노동이라는 고달픈 삶 속에서, 같이 일하던 직장 동료들과의 화합을 위해 노래방에 갔다가 세상을 등졌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고인으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은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을 상처를 받아야 했다. 사측에서 "함께 일하던 식구였던 만큼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혀놓고서 산재 신청을 회피하는 것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이는 고인이 된 이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요, 경우도 아니다. 산재 승인 여부는 근로복지공단이 판단할 일이지, 사측에서 지레 산재인지 아닌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산재 신청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언급한 것처럼 현재까지 사측은 고인이 된 직원들의 모임이 자발적인 것으로 회식이나 단합대회가 아니라고 우기며, 산재 신청을 거부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게다가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유해는 사건 발생 직후 본국으로 송환되어, 유가족들이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지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산재 승인 여부를 따져볼 계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신청조차 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산재 여부에 대한 분명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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