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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걷어낸 한강하구, '나무은행' 만들자

[주장] 아름다운 생명울타리로 장항습지 지켜내기

등록|2012.05.09 18:07 수정|2012.05.09 18:07

▲ 한강변 철책선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있다. ⓒ 고양시청


한강하구 철책을 걷어낸다. 고양 쪽 12.9km, 김포 쪽 9.7km에 이른다. 경기도는 신곡수중보를 더 아래쪽으로 옮기되 당장 어려우면 배가 드나드는 문이라도 먼저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강화-김포-파주 통일전망대로 이어지는 자전거누리길 관광상품에 장항습지도 끼워 넣는단다.

배 위에서 강 구경하고, 자전거로 휴전선 동쪽 끝까지 내닫는 관광은 분명 신나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재두루미 큰기러기 저어새를 비롯한 철새들은 쉼터와 잠자리를 빼앗기는 일이기도 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버드나무숲 아래 함께 살던 붉은발말똥게,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고라니도 앞으로 조용히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사람들, 하늘과 땅을 뒤덮는 음식냄새며 비닐봉지를 비롯한 쓰레기, 밤을 낮처럼 밝히는 불빛이 그들의 평온한 나날을 비집고 들어올 테니까.

사람들은 뭇 생명이 이렇게 스러지는 것을 참으로 바랄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그러나 개발업자들 속사정은 다르다. 개발은 한가롭게 생명을 노래할 여유가 없는 속도전이요, 이익을 남겨야 할 장사판이니까. 개발 하면 하나같이 강턱에 자전거길부터 닦고 강물에 배 띄우는 까닭도 그것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몰고 와서 한몫 챙길 수 있는 제일 빠른 개발공식, 돈벌이이기 때문이다.

철책은 비록 흉물스런 냉전의 상징이지만 여러 목숨붙이와 습지를 단단히 지켜왔다. 자전거길이 철책이 해온 구실을 오롯이 해낼까. 자전거길이나 뱃길은 뭇 생명들과 함께 갈 수 없는 빠른 바퀴(속도)의 길이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습지가 아니더라도 온 나라에 차고도 넘친다. 빠른 속도, 높은 수익만 꿈꾸는 개발업자의 논리가 아니라면, 뭇 생명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또 자전거길을 고집할 까닭이 없다.

건물 짓느라 뽑혀나간 나무들 모아, '나무은행' 만들자 

철책을 걷어낸 자리에 서울 시내와 경기도 곳곳에서 집 짓고 건물 세우고 길 닦느라 뽑혀나가는 나무를 옮겨, '나무은행'을 만들자. 장항습지 강기슭을 시작으로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뽑아냈던 한강변 나무를 다시 돌려주자.

나무은행은 자유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을 막아준다. 50m 폭의 숲은 시끄러운 소리를 10~15dB이나 줄여준다고 한다. 그리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야생동물을 품어준다. 또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필요한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 개발 강박증과 빠른 속도만 탐닉하는 사람들 조급증을 막아주는 치유의 울타리 구실까지 하지 않을까.

심은 나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일정 기간 출입을 막고, 습지탐방 인원도 지금처럼 제한한다. 경기도가 밝힌 중앙전망대·방문자센터·습지연구센터 따위도 따로 세울 필요가 없다. 습지를 연구하는 공인된 연구원들은 365일 드나들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망대? 나무 아래 알맞은 자리를 골라 너른 습지를 살필 수 있으면 그곳이 전망대지, 따로 있을 까닭이 뭔가.

전망대 세우고 방문자센터 만들면 식당과 편의점이 따라 들오고 술집과 주차장이 똬리를 틀게 마련이다. '생태'란 이름으로 분칠을 하겠지만, 그 이름만으로는 사람들 발과 바퀴에 딱딱하게 굳어가는 습지와 떠나가는 뭇 생명을 살리거나 되돌릴 수 없다.

자전거길 닦고 방문자센터 세우는 데 따로 돈 들이지 않으면 아등바등 본전 뽑을 일도 없으니, 사람들 떼로 몰고 와선 떠들고 먹고 돌아다니게 할 까닭도 없지 않겠나. 차가운 철책을 걷어낸 자리, 자전거길 대신 따뜻한 생명의 울타리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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