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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시집 <기탄잘리>

인도여행에 가지고 간 책(3)

등록|2012.05.10 14:25 수정|2012.05.10 14:25

책표지타고르 시집 <기탄잘리> ⓒ 최일화

지난 2월 3일부터 4월 15일까지의 인도 여행에 나는 <기탄잘리>를 챙겼다.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Song Offering)' 혹은 '노래로 바치는 제물'이라는 뜻으로 벵골어다. 이 시집은 원래 벵골어로 쓰였으나 타고르가 1912년 스스로 영역 출판함으로써 이듬해인 1913년 노벨상을 받게 한 시집이다. <기탄잘리>는 너무나 유명해서 우리는 그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고작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는 기탄잘리 60번째 시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 그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라고 하는 한국을 노래한 시에 덧붙여져 '그곳은 마음에 공포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려 있는 곳'이라는 <기탄잘리> 35번째 시를 겨우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몇십 년 전, 내가 10대 적부터 타고르를 알고 그 시인을 좋아했으면서도 나 역시 <기탄잘리>를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 전에 박희진 시인이 번역한 번역시집을 사놓긴 했는데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읽었을 뿐이다. 그래 이번 여행길에 가지고 가 시인의 옛집 근처에서 꼼꼼하게  읽어보리라고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영어판 <기탄잘리>가 벵골어판 <기탄잘리>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어판 <기탄잘리> 103편 중에 53편만 벵골어판 <기탄잘리>에서 옮겼고 나머지 50편은 다른 여러 시집에서 발췌해서 영역했다는 사실이다.

즉, 기티말랴(Geetimalya)에서 16편, 나이베댜(Naibedya)에서 15편, 께야(Kheya)에서 11편, 시슈(Sishu)에서 3편, 그리고 우싸르가(Utsarga) 스마란(Smaran) 차이딸리(Chaitali), 깔뽀나(Kalpona), 그리고 아차랸탄(Achalyntan)에서 각 1편씩을 뽑아 영문판 <기탄잘리>로 엮은 것이다. 타고르 시인이 방대한 분량의 시를 썼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을 발췌하여 영어로 옮길 때는 그것을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시인 자신이 스스로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고가 출판업자 앞에 놓이고 그것이 출판되었을 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집의 앞부분에는 당시 유명한 영국시인이었던 W. B. 예이츠가 쓴 긴 서문이 붙어 있다. 타고르보다 10년 늦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예이츠는 당시 서구에서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예이츠 서문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나는 이 번역의 원고를 여러 날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기차 안에서나 버스의 좌석에서 또는 레스토랑에서도 읽었다. 나는 어떤 낯선 이가 내가 그것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가를 알아차릴까봐 가끔 그것을 덮어야 했다."

서구애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타고르에 대한 찬사는 그의 서문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는 서문의 마지막에 기탄잘리 60번째 시를 인용하고 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무한한 하늘은 머리 위에서 꼼짝도 않고 쉴 줄 모르는 바다는 시끄럽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소리치며 춤추며 모여든다.
그들은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껍질을 가지고 논다.
시든 갈잎으로 배를 엮고는 미소를 지으며 넓고 깊은 바다에 띄운다.
아이들이 세계의 바닷가에서 놀고 있다.
그들은 헤엄을 칠 줄도 모르고, 그들은 그물을 던질 줄도 모른다.
진주 캐는 이는 진주를 찾아 물속에 뛰어 들고, 상인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았다가 다시 흩뜨린다.
그들은 숨은 보물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그물을 던질 줄도 모른다.(중략)

이번 인도여행에 이 시집을 가지고 가서 나는 꼼꼼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일정은 72일 일정에 67일을 타고르가 학교를 세우고 집필활동을 하던 산티니케탄으로 정했기 때문에 나는 <기탄잘리>를 읽는데 더욱 열중할 수가 있었다. 타고르는 힌두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도의 신분제도에서 브라만 계급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어느 한 구절에도 힌두교와 관련 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서구의 독자들은 이 <기탄잘리>를 읽고 완벽한 기독교 시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불교도들은 또 불교사상이 녹아 있는 훌륭한 불교시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만해 한용운 시인을 생각했다. 만해는 타고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해 스스로도 타고르의 시에 비판을 가한 시가 있는 것처럼 사상적인 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산문체적인 그의 문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타고르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16년이라고 한다. 노벨상을 받은 지 3년 후다. 그해 <신세계>에 실린 일숭배자(일숭배자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확인할 수 없었음)의 <세계적 대시인, 철인, 종교가 타꼬아 선생>이다. 타고올에 대하여 비교적 간단히 소개한 글이다.

이 글 다음에 잡지에 등장한 글은 1917년 <청춘>11호에 진학문에 의해서인데, 순성 진학문은 이 잡지에서 <인도 세계적 대시인 라빈드라나드 타쿠르>와 <타선생송영기> 그리고 <키탄자리> <원경> <신월>의 몇 편시와 타고르가 한국인을 위해 순성에게 건네준 <쫏긴이의 노래>(The Song of the Defeated)를 함께 번역 소개하였다. 1918년에는 만해 자신도 <유심>에 타고르 관련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1926년에 만해의 <님의 침묵>이 발간되었다면 그 이전 10여 년 동안 상당수의 타고르의 시가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이후의 일이다. 이 사실로 만해가 타고르의 작품을 충분히 읽고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번 여행길에 타고르의 옛집 다섯 채가 모여있는 우타라얀(Utarauana)여러 번 방문했는데 한 집의 거실에 불상이 중심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힌두교 신자라기 보다는 우주를 통틀어 신은 하나라는 범신론적 입장을 견지한 시인으로 볼 수 있다.

범신론적인 입장에서 시를 썼기 때문에 종교에 구애됨이 없이 모든 독자의 감동을 자아낸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타고르가 세운 대학 경내엔 만디르(Mandir)하는 예배처가 있는데 이곳에선 기독교 불교의 행사도 거행되고 세계 어느 종파의 사람들도 자유롭게 그 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타고르의 범신론적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기탄잘리> 91을 소개한다.

오, 생의 마지막 성취인 당신, 죽음이여, 나의 죽음이여, 오셔서 나에게 속삭이십시오!
날마다 나는 당신이 오시는가 지켜보고 있었어요.
당신을 기다려 생의 기쁨과 고통을 나는 견디어 왔습니다.
나의 온 존재, 내가 가진 모든 것, 나의 희망과 사랑의 전부는 언제나 당신을 향해 은밀히 흘렀지요. 당신의 마지막 눈짓 하나로 나의 생은 영원히 당신 것이 될 겁니다.
꽃들은 엮어졌고 신랑을 위해 화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혼배가 끝나면 신부는 자기의 집을 떠나서 밤의 고적 속에 홀로 그녀의 낭군을 만날 것입니다.
           
시집의 후반으로 갈수록 죽음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그 죽음은 그러나 허망한 것도 고독한 것도 비탄도 아니다. 위 시에서 보는 것처럼 새로운 피안의 세계가  환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편을 읽으면서 만해는 불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인도나 우리나 식민지배하에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너무 안일하게 피안의 세계, 초월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타고르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즉, 타고르의 시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현실을 외면하고 피안을 꿈꾸는 '백골의 향기이며'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해는 시의 외적인 모습, 산문체라든가, 님의 호칭 등은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으나 시 정신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다른 독특한 시 세계를 펼쳐 <님의 침묵>을 완성해 냈을 것이다.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일부


물론 타고르는 <기탄잘리>가 아니고 시집 <원정>을 읽고 느낀 소감을 쓴 것이지만 <기탄잘리>나 <원정>이나 타고르의 시적 경향은 동일하기 때문에 만해의 이 비판은 <기탄잘리>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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