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최시중을 보십시오, 지금 박해는 '행복입니다'

[정연주의 증언78] 파업 중인 방송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2012.05.11 21:11 수정|2012.05.11 21:11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초여름 같은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습니다. 10일 오후 7시 조금 전, 여의도 공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방송 독립을 위해 66일째(KBS), 102일째(MBC) 파업 중인 당신들의 뜨거운 열망과 의지가 담겨있는 '희망 텐트'가, 굳건한 연대를 과시하듯 이마를 마주 대며 공원의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의도 '희망 텐트' 현장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

반가운 얼굴을 많이 만났습니다. 충주에서 올라온 KBS 후배들, 마산·창원에서 3년 전 강연 때 만났던 MBC 후배들과도 반가운 해후를 했습니다. KBS 사내 게시판 또는 인터넷에 KBS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나 댓글을 올렸다가 정직·감봉 등의 처벌을 받은 후배들도 만났고, 방송을 정권의 귀속물로 만드는 정권 친위세력에 저항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만나 사랑이 싹트고, 마침내 결혼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후배도 만났습니다. 사장에게 욕설하고, 지금의 KBS 체제를 비판했다고 해직 조치를 당한 후배 기자도 만났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씩씩하고, 당당하고, 단단해 보였습니다.

이날 저녁 나에게는 조그만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한국 방송 사상 유례가 없는 방송사들의 장기파업 과정에서 새로운 전기를 위해 마련된 '희망 텐트'에 힘을 북돋우는 '촛불 문화제' 들머리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의도 공원 한쪽에 마련된 곳에 서 보니 날은 벌써 거뭇거뭇해지고 있었습니다. 앞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당신들 모습을 보니, 이 좋은 봄날 저녁에 연인과 공원에 산보하러 나왔다가 잔디 위에 앉아서 따스한 정담을 나누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평화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어디에서 오는 평화일까.

38년 전, 평화로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MBC노조 파업이 100일을 넘겼다(자료사진). ⓒ 권우성


38년 전 나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언론 자유가 박정희 유신독재 권력에 의해 근원적으로 말살된 시절, 그 잃어버린 '자유언론'을 되찾고자 싸움에 나섰던 그때, 그리고 그 이후 역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그 평화로움이 떠올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굴종하고, 침묵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도 부끄러웠는데, 자유언론과 그것이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서, 그리고 이웃의 아픔과 역사의 고통에 참여하면서 나는 조금씩 떳떳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게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원을 통해 내게 평화가 왔습니다. 내 나이 서른 살 때 해직되었어도, 거친 광야에서 지날 때도, 긴급조치 9호로 구속이 되었을 때도, 마음의 평화는 늘 함께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에게, 내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에게, 그리고 이 사회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떳떳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난 10일 저녁, 여의도 공원에서 본 당신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나는 38년 전 나의 모습을 보았고, 당신들도 나와 같은 평화를 경험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평화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언론인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억압된 조건에서, 언론의 기본과 상식이 다 무너져버린 세상에서, 그냥 굴종하고 침묵하는 것은 부끄러움과 치욕의 삶일 수밖에 없지요.

당신들은 그런 부끄러움과 치욕을 떨치고 일어섰습니다. 권력의 친위세력들이 조그만 권력에 취해 저마다 충성경쟁하듯 온갖 패악을 저질러도, 그것은 이제 곧 신기루처럼 사라질 허깨비짓들일 뿐입니다. 친위세력들은 마치 이 권력이 무한으로 갈 것처럼 그렇게 해직과 정직, 감봉의 칼을 마구 휘두릅니다. 총선이 끝나자 마치 자기가 승리나 한 듯 그렇게 망나니의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정권 친위세력들의 생얼굴과 그들이 저질러온 해괴하고 희한한 짓들은 당신들의 방송독립 투쟁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법인카드로 7억 원을 쓰고, 어떤 무용가에게 엄청난 지원을 해주고, 도청을 하고, 그 도청된 자료가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달되고, 걸핏하면 사정없이 목을 치는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KBS, MBC 파업특보에 담긴 괴이한 이야기들

▲ MBC 노조 홈페이지 화면. ⓒ mbc 노조


▲ kbs 새노조 홈페이지 화면. ⓒ 언론노조 KBS본부


여의도 공원에서 당신들을 만난 바로 그날, MBC 노조와 KBS 새 노조가 파업특보를 각각 만들어서 배포했습니다. (KBS 새 노조(www.kbsunion.net)와 MBC 노조(www.mbcunion.or.kr)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생생하고 재미있는 뉴스와 볼거리가 참으로 풍성하지요).

이번호 파업특보를 보니, 지금 방송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이한 풍경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MBC 총파업 특보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리 낙하산' 김재철이 국회 토론회에서도 '웃음거리'가 됐다... 토론 참가자들은 '김재철'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모두 어이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회를 맡은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MBC 김재철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코믹한 악당이 나와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만화를 보는 듯하다"며 "김재철 사장의 캐릭터가 워낙 '입체적'이라 KBS 김인규 사장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KBS 파업특보에는 이런 어이없는 '쭉쟁이' 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최경영 기자가 해임된 직후인 지난달 23일 보도본부 9기에서 20기 사이 기자 37명의 성명서가 나왔다. "더 이상의 징계는 안 된다"며 파국을 막기 위해 사측의 결단을 요구하는 내용이 었다.

이 성명서가 준비되고 있을 즈음, 성명서 초안을 받은 보도본부의 한 팀장. 이런 움직임을 길환영 부사장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수신자를 잘못 설정해 엉뚱한 사람에게 보내졌다.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파업 불참 중인 2노조(새 노조 지칭) 성향자들이 계속 꿈틀거립니다. 필요하다면 부분 인사를 통해 시그널을 줘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현 상황에 대한 조언도 곁들였다. 그리고는 "원칙과 질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중심에 부사장님이 위치하소서. OO"이라며 문자 메시지는 끝을 맺는다.

지금 방송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권 친위세력들의 권력 탐닉과 오만한 행태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 측근 친위세력들 모습과 판박이처럼 비슷합니다. 최시중, 신재민, 김두우... 그들의 권력 탐닉과 오만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하실 겁니다.

정권 친위대의 권력탐닉과 오만의 끝은?

당신들은 이번 파업 과정에서 스스로 떳떳해지고, 당당해지면서 평화를 가슴에 담았을 뿐 아니라 아주 소중한 경험도 아울러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가 어떤 것인지를, 특히 언론이 외면하여 외롭게 싸워가야 하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생생하게 경험했을 것입니다.

언론은 사실보도와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견제 기능을 통해 그 사회에서 참으로 필요로 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런 공론의 장을 통해 사회적 문제와 모순과 아픔, 특히 사회적 약자의 아픔과 그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이를 통해 치유하고 문제를 푸는 지혜를 공동체가 함께 찾아내게 되지요. 그런데 사회적 약자의 아픔과 고통을 전해야 하는 언론이 지금 우리나라 제도권 언론의 90%처럼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우 그 사회는 소통과 공론이 사라진 암흑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당신들은 바로 그 제도권 언론의 중요한 축인 지상파 방송에 직접 몸을 담고 있어 누구보다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 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업과정에서 바로 여러분들의 독립방송 투쟁도 이들 제도권 언론의 90%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되고 무시되고 왜곡되는 것을 매일 목격하면서 그 폐해를 느껴왔습니다. 그러면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아픔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이 참혹한 언론상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참 언론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소중한 경험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이 다시 언론현장에 돌아가 일을 하게 될 때에는 관념이 아닌 생체험에서 얻어진 깨달음과 사명감으로 진정한 언론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경험입니까.

그리고 보기 드문 공동 투쟁을 통해 연대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참으로 소중한 동지들을 얻게 되고, 새삼 뜨거운 동지애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소중한 경험들은 나 자신이 겪어온 것이기도 하답니다. 그랬기에 10일 저녁 여의도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이곳은 '축제의 현장'이라고 했고, 이미 얻어낸 것들만 보아도 여러분들의 싸움은 '승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정권 최고 실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자료사진). ⓒ 유성호


3년 9개월 전 내가 강제 해임되었을 때, 그때 칼을 휘두르며 진두지휘를 하다시피 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승자'처럼, 그리고 목이 댕강 날아간 내가 '패자'처럼 비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4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최시중 위원장을 보고 '승자'라고 여기는 이가 있는지, 그와 나 두 사람 중 누가 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 그 답은 자명합니다.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지요.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지금은 김재철, 김인규 세력이 마치 '승자'인 양 마구 칼을 휘두르지만, 최시중 전 위원장의 권력 탐닉과 처지를 생각하면 그 '승자'라는 것이 얼마나 신기루 같은 것인지 알 수 있지요. 진정한 '승자'는 옳은 일을 하는, 그래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당신들이 이미 승자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의 미래는 바로 당신들이 주인이 되어 만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주인은 바로 당신들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