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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까지는 이게 제철이지!

[서평] <한국인의 밥상>을 읽고

등록|2012.05.12 14:16 수정|2012.05.12 14:17
이 계절 들어 식당마다 열렬히 광고하는 음식 중 하나가 멸치다. 멸치하면 흔히 반찬용 잔멸치나 국물용 멸치를 연상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회와 무침으로 먹는 큰 멸치를 뜻한다. 이 책 <한국인의 밥상>은 각 지역에 맞춘 소박하고 정이 가득한 식재료들을 소개하는 음식 에세이집으로서 멸치에 관해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부산 기장군 대변항의 봄은 멸치와 더불어 시작된다. 4월부터 6월까지 이곳에서는 항구에서 춤추는 멸치와 그에 장단 맞춰 그물을 털어내는 어부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이런 파시 철에는 알 굵고 실한 멸치가 행락객들 틈으로 붕붕 날아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넘쳐난다.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멸치보다 두어 배는 큰 이것들은 회로 먹거나 멸치젓을 담가 먹는 용도로 쓰이며, 그 맛을 궁금해 하는 관광객들과 미식가들을 위해 현장에서 판매도 된다.

멸치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음식이다. 게다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서 혈압을 정상화 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피로회복을 도와주고 두뇌 활동이나 지능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DHA가 풍부하고, 골격과 뼈를 형성하는데도 효과적이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효과적이다. 게다가 봄철의 까칠한 입맛을 다스려 주는데도 그만이다.

그런 한편 멸치는 맛 뿐 아니라 그 생애도 남다르다. 겨울이면 남쪽바다 멀리 나가있다가 봄이 되면 새끼를 낳고, 이후에는 먹이를 찾느라 해안가로 올라온다. 특히 부산 기장 앞바다는 멸치 서식지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다 할 만하다. 남쪽의 따뜻한 바닷물과 북쪽의 차가운 물이 흘러와서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수계가 만나는 지점인 이유로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그로 인해 멸치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생성하는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멸치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기장 대변항은 매우 건강한 바다인 셈이다.

멸치는 이곳 어부들의 수입원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봄과 초여름의 관광객들을 위한 흥겨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멸치 철이 시작되면 어부들은 항구에 몰려 온종일 그물을 터느라 정신이 없다. '어그럭차','어러렁차', '읏차차차' 그들만의 구령은 넘실대는 파도와 비릿한 멸치냄새와 함께 어우러진다. 그 틈에 멀리 튀어나간 멸치의 잔해들만 모아도 멸치젓갈 몇 단지, 멸치회 몇 접시쯤은 거뜬히 만들겠다는 우스갯소리와 어우러져 기장 대변항의 봄도 그렇게 깊어간다.

대변항에서 일본 대마도까지는 불과 50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옛날 왜구들은 수시로 이곳에 침범해서 약탈을 일삼았다. 멸치 맛을 본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지, 그 시절에도 멸치 회 같은 것을 먹었을 지를 궁금해지게 만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곳은 밥보다 멸치가 흔했던 연유로 그 옛날부터 멸치가 큰 수입원으로 기능했다. 그 풍성한 식재료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 지금도 마지막 손질에서는 반드시 막걸리에 헹구는 지혜도 잊지 않고 있다.

멸치로 즐기는 음식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멸치 회다. 뼈를 발라내고 포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버무려 회 무침으로 먹어도 맛있다. 또 다른 별미인 멸치 어죽은 추어탕 끓이는 방식에 재료만 멸치를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준 고마운 음식이란 이미지로 기장 사람들에게 남아있다. 한편 멸치섞박지는 생 멸치에 무를 섞어 썰어 넣고 담근 김치다. 일반적으로 김치를 담글 때 넣는 젓갈보다 슴슴하게 멸치를 간하는 것이 특징이고, 뼈와 살이 분리된 멸치가 무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선보인다.

맛도 맛이지만 멸치의 생태도 꽤 재미난 점이 있다. 그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이유는 타 집단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서로 뭉쳐서 한 덩어리로 살아가는 그 모습은 함께 어울려서 그물을 털며 풍어를 만끽하는 어부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런 한편 머리, 꼬리, 몸통이 제각각 맛이 다르다는 점은 동일함 속에서도 개성이란 묘한 매력을 가진 멸치의 특성을 깨닫게 해준다.

이제 봄은 저만치 가고 초여름으로 들어섰다. 다음 달 까지는 멸치 맛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계절에 맞춘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고 풍류를 즐기는 것은 몸과 정신 건강 모두에 긍정적이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멸치를 먹으러 가보자. 자고로 봄에 먹는 멸치는 화로에 구워먹는 것이 제일이고, 이것은 가을 전어에 버금갈 만하다.
덧붙이는 글 <한국인의 밥상>. 황교익.seed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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