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에서 전시회 여는 96세 노화백
군산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하반영 전시회... 최근작 30점 선보여
▲ 하반영 작품전시회가 열리는 창작 공간 여인숙(군산 동국사 오르는 길목에 있음) ⓒ 조종안
망백(望百)을 바라보는 하반영(96) 화백 작품전시회(5월 12일~6월 5일)가 전북 군산시 월명동에 자리한 '군산창작문화공간 여인숙(與隣熟)'에서 열린다. '여인숙' 이상훈(41) 대표가 <동행>이란 타이틀로 기획한 전시회는 하 화백이 올 초부터 준비해온 작품 30점을 선보인다.
한자 여인숙은 '여러(與) 이웃이 모여(隣) 예술을 무르익게 한다(熟)'는 뜻으로, 30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구)삼봉여인숙을 2010년 겨울 1층은 갤러리로, 2층은 입주 작가들의 생활공간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에 약 30평 정도의 창작 작업실을 갖추고 있다.
이 대표는 오픈식에서 "1세기 동안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그림으로 얘기하는 하반영 선생님을 새롭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며 "군산이 아닌 대한민국 미술 역사에 또 다른 획을 긋고 있는 하 선생님 그림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싶다"고 밝혔다.
서진옥 '여인숙'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회는 한국 화단에서 독자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하반영 선생님의 회고전 성격을 띠고 있다"며 "예술로 말하는 예술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말하는 예술의 미학적 질문과 함께 진행되는 세미나 형식의 전시회"라고 말했다.
서 큐레이터는 "작년 가을, 하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예술에 대한 집념과 험난한 인생역정을 듣다가 문득 '동행'이란 단어가 떠올라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며 "군산의 문화예술이 더욱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하반영 화백 작품에서 야생성 느껴져"
▲ 김용현 작가가 허름한 소파에서 창작에 몰두하는 하반영 화백과 그의 작품을 보고 느낀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 조종안
창작 공간 '여인숙'에 입주한 신진작가 세 명(김용현, 김홍빈, 윤선화)은 전시회 첫날(12일) 오후 3시 오픈식에 이어 열린 오프닝 세미나에서 고령의 원로작가 하 화백을 몇 차례 만나보고 느낀 점 등을 발표했다. 주제는 '하반영 작품 읽기'.
서양화를 전공한 김용현(46) 작가는 발표에 앞서 "군산은 처음인데 도착 전에는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 무척 궁금했으나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차분하고 여유가 넘쳐 마음이 끌렸으며 직감적으로 뭔가를 배우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김 작가는 "96세 고령에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하반영 선생님을 지난 4월 처음 찾아뵙고 살아오신 얘기를 들었는데, 대 선배님의 삶 자체가 예술이었다"며 "인터뷰가 아니라 인생 강의를 들었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처음엔 한국화, 서예, 서양화, 구상, 비구상, 풍경, 정물, 인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고 한 사람이 작업한 것인지 의아했으나 '예술을 하는 것은 유명해지려는 것도 아니고, 돈에 연연해서도 아니고, 작품 속에 자신의 사상과 혼을 담아 현실을 비판하고,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설치예술가 김홍빈(40) 작가는 "미술 역사에 쫄지 않는 태도로 장르를 넘나드는 하반영 화백의 실험은 모더니즘 이후의 의식적 양식 파괴와 구별된다"며 "제도교육을 받은 후배 미술가들 작품과 달리 야생성이 느껴진다"고 그동안 느낀 감정을 피력했다.
설치예술가 윤선화(27) 작가는 "젊어서는 프랑스 살롱 전(展)에서 유화 그림으로 금상까지 받은 화가가 요즘 그리는 그림은 문자의 형상을 이용한 작품이 대부분이다"며 사람 '인'(人)자가 세 개가 들어간 작품을 가리키면서 하 화백의 작품설명(<작품6>)을 소개했다.
▲ 작품 크기 21.3X27.9 Oil painting (작품 6) ⓒ 하반영
"낮은 사람, 잘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못난 사람···. 세상에는 필요 없는 사람 없이 모두 자신의 자리가 있어요. 나쁜 사람이 존재하기에 착한 사람이 보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 붉은 부분이 있는데 태양 빛이에요. 그림에 언제나 붉은빛이 존재하는데, 사람이 빛없이 살 수 없잖습니까."
윤 작가는 "하 선생님께서 세 개의 '인(人)'에 담으려 하신 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닌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순리적인 이치로 받아들여졌다"며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해도 이치에 어긋나지 아니한다'는 문장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노(老) 작가는 '사람 인'이라는 단순한 선으로 '포용'과 '동행'을 동시에 표현해냈다는 것.
"여러분의 비판은 나에게 약이 됩니다"
▲ 하반영 화백이 자신의 생활관 예술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조종안
상념에 젖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하 화백은 "영광스런 자리를 만들어준 여러분께 감사하고 서울·경기지역에서 와준 젊은 작가들에게 고맙다"며 "나는 아직 청춘이다. 왜냐면 아직 배울 게 많고, 못한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찬만 하니까···"라며 아쉬운 심정을 드러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여러분의 비판은 나에게 약이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느낀 대로, 생각나는 대로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그림에 제목도 달아주면 그 속에서 배울 점을 찾으려고 했는데, 칭찬이 과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점 하나 찍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이 그림은 이렇고, 저 그림은 저렇다'고 지적해주세요."
하 화백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근거한 자신의 사상과 혼을 그림에 담아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프랑스 유학시절(1979~1985)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프랑스에서 서양화를 하면서 하마터면 껍데기만 서양화 작가가 되어 자신의 혼을 빼놓고 돌아올 뻔했다는 것. 프랑스 살롱전 금상 수상작도 사실은 동양화풍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동행> 전시회는 작품에 제목이 없는 게 특징. "작품에 명제가 없는 이유는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 위함이다"고 말하는 하반영 화백의 내려놓음은 방문객에게는 배려를, 신진작가들에게는 그림에 대한 집중과 정진을 바라는 듯했다.
▲ 오프닝 세미나가 끝나고 학생이 작품에 명제(태양 속으로)를 적고 있다. ⓒ 조종안
▲ 작품크기 14X31.5cm. 담배 케이스에 ‘오일 페인팅’(Oil painting)으로 ⓒ 하반영
▲ 작품크기 24.3X19cm Oil painting on canvas ⓒ 하반영
▲ 작품크기 48X27.5cm Oil painting ⓒ 하반영
▲ 작품크기 9.3X17.2cm+2 종이박스 위에 Oil painting ⓒ 하반영
▲ 작품크기 24X19cm Oil painting ⓒ 하반영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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