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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면, 당신은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군사도시이기에 볼 수 있는 것들

등록|2012.05.13 17:22 수정|2012.05.13 19:23

▲ 화천읍내 어느 미용실, 세련된 머리 스타일을 원하면 이곳을 찾아라. ⓒ 신광태


"화천 인구가 얼마나 되나요?"
"6만 명 정도 됩니다."

강원도 화천을 처음 찾은 어느 대학교수의 질문에 정갑철 화천군수는 이같이 답했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 중 하나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네요"라는 말을 받아 정 군수는 "사실 주민 수는 2만5000여 명이지만 군인 수가 3만5000여 명 정도 되니까 6만 명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니죠"라고 말한다.

38선 이북지역에 위치한 강원도 화천에는 민간인보다 군인들이 더 많이 산다. 한국전쟁 중 국내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곳 또한 이곳 화천이다. 종전 후 이곳에 살아왔던 사람들과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군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화천읍내 상권이 형성된 이유이다. 이런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상가 간판들이 있어 소개해본다.

육군 중사 스타일이 되어 버린 내 머리

"저희 가게에 네 번째 오시는 거죠?"
"네, 네 번째 맞는데요. 저 사실 이 미용실에 12년 전에 마지막으로 오고 그동안 오지 않았었습니다."
"아니, 왜요?"

읍내 미용실 젊은 주인의 질문에 솔직히 왜 이곳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때에는 어떤 아주머님께서 머리를 잘라주셨었어요"
"네, 저희 어머님이세요. 그런데 그게 무슨…."

무궁화미용실, 간판 이름도 참 촌스럽다. 12년 전 '주인의 애국심이 참 대단한 모양이다'라는 호기심에서 들렀던 미용실. 들어서자마자 주인에게 "예쁘게 잘라주세요"라고 말하고 한참을 졸다가 일어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머리를 어떻게 이렇게 깎아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가 봐도 이건 육군 중사 스타일 머리다.

"너 머리 어디에서 깎았냐?"

다음날 출근했을 때 옆 동료 직원이 물었다.

"왜?" 
"말해주면 거기 안 가려고."

미용실 주 고객이 군인들이다 보니 당시엔 군인 스타일로 머리를 깎는 미용실이 흔했다.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그나마 낫지만 연세가 좀 드신 분들에게 맡기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군인을 만들어 놓곤 했다. (군인 스타일 머리) 덕분에 읍내를 지나다 병사들로부터 경례를 받는 경우도 참 많았다.

"요즘 무슨 무슨 '머리방'이나 '헤어샵' 등 세련된 명칭도 많은데, 간판은 안 바꾸세요?"
"어머님께서 지으신 이름인데, 이젠 정감이 가서 바꾸지 않을 생각이예요. 왜, 이상하세요?"

젊은 주인은 세련된 간판보다 예부터 어머님께서 지어 사용해온 토속적인 상호가 이곳 시골마을에서 더 적합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군인백화점에서 군인도 파나요?

▲ 군인백화점, 군인은 팔지 않습니다. ⓒ 신광태


"인마! 너 총 사왔어?"
"아뇨, 안 사왔습니다."
"이 자식이 군기가 빠져서, 빨리 PX 가서 총 사가지고 와!"

고참병의 장난에 속에서 PX로 총을 사러 갔던 신병 이야기 등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화천에는 '군인백화점'이란 간판을 단 군인용품 가게가 서넛 있다.

이곳에는 포탄, 소총, 수류탄 등의 무기류를 제외하고 모든 군인용품을 다 취급한다. 군화를 비롯해 군번줄, 야전삽, 곡괭이, 군인수첩, 군복, 깔깔이 등 말 그대로 모든 군인용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이다. 따라서 주 고객은 자대에서 지급받은 물품을 분실한 병사나 필요에 의해 여분을 준비하는 병사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곳에서 군인도 파나요?"
"네, 계급별로 나누어서 판매를 하는데, 장교는 조금 비싼 편입니다."

1년 전, 간판 이름이 흥미로워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고 어느 여성분의 질문에 대해 이같이 농담으로 답 맨션을 보냈다.

"정말요? 얼마나 하는데요?"

이런~ 농담으로 질문한 것인 줄 알고 농담으로 답을 한 것인데, 이분은 진담으로 여겼나보다.

지금 다방의 주 고객은 노인들...

▲ 다방, 이젠 주 고객층이 젊은이들이 아닌 노인들이다. ⓒ 신광태


1970~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초까지 전국 어디에나 흔했던 것이 '다방'이었던 것 같다. 군사지역인 화천읍내만 해도 수십 개의 다방들이 즐비했다.

외출을 나온 병사들이 갈 곳이 딱히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곳에 가면 예쁜 종업원들이 옆으로 다가와 "오빠! 나 인삼차 한 잔만 사주라"라는 말이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 전방에서 여자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하던 병사들에게는 이건 일종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각 다방업주는 예쁜 아이(종업원) 모시기에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던 다방들은 다 사라졌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터미널 옆의 어느 다방을 찾았다. 소파를 이용한 의자 등 분위기는 옛날 그대로 인데 고객층이 군인들에서 노인층으로 바뀌었다. 들어서자 주인은 내가 '단골이 될 만한 나이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는지 별로 반기는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왜 상회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 '이곳에서 물건을 사면 자신이 직장에서나 부대에서 승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 신광태


지금이야 수퍼, 마켓 등 상가들의 명칭도 다양한데, 과거 상가들은 꼭 '상회'라는 명칭을 붙였다. '마산상회' 그러면 십중팔구 마산이 고향인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이고, '평안쌀상회'라는 곳은 평안도에서 피난 온 사람이 운영하는 쌀가게로 보면 거의 정답이다.

읍내를 쭉 둘러보던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승진상회'라는 간판이 붙은 구멍가게였다. 미닫이문과 건물 형체로 보아 족히 몇십 년은 이 간판 이름을 사용해온 듯하다. "왜 가게 이름을 '승진상회'라고 했을까"에 대한 답은 간단히 나왔다. 군인들 특히 장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급, 즉 승진일 테고, 이곳에 오면 빨리 승진이 될 수 있다는 주인의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간판 이름 같다.

삼유삼무 운동, 대체 무슨 운동일까!

▲ 뭘 없애고 뭘 지키자는 운동인지, 흥미롭다 ⓒ 신광태


어느 식당에 걸린 빛바랜 액자 안의 글귀. '손님맞이 3유3무 운동'.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아마 손님을 맞는 데 있어서 3가지는 유지하고 3가지는 없애자는, 관청에서 주민계도용으로 배포한 것 같다. 3유(有)로는 질서 지키기, 친절하기, 청결하기. 3무(無)로는 부당요금 안 받기, 심야영업 안 하기, 시비폭력 없애기. 업주들이 얼마나 불친절하고 식당이 얼마나 청결하지 않았으면 이런 문구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상인들은 군 장병이나 면회를 온 가족들에게 친절할 이유가 없었다. 3년간 병역을 마친 병사들이 이곳을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에서 어쩌다 나온 병사들을 대상으로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늘 음식값, 술값 등의 요금으로 인한 시비와 싸움은 끊이질 않았다.

'심야영업 안 하기'라는 글귀도 이상하게 보인다. 1980년대부터 (전방지역을 포함) 전국적으로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모든 상가들은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왜 관청에서 심야영업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유는 대부분 군인과 업주들의 싸움이나 술값 시비는 심야에 발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당시 행정에서 심야영업 금지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맹목적적인 현대화가 능사일까!

▲ 평화로운 화천읍내 모습 ⓒ 신광태


"이곳이 화천 맞나요?"

1980년대 칠성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어떤 중년신사의 질문이다. 제대 후 "화천을 향해 소변도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화천의 어느 부대에 배치됨에 따라 면회를 왔다는 그 사람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말을 반복한다.

"내가 이곳에서 군 생활할 때 추억은 비포장도로의 먼지,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다방, 술집 그리고 식당이나 숙박업소 업주들의 불친절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되었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는 말로 함축했다.

"과거의 것을 맹목적으로 털어버린 문화가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지요."

그의 말은 사방거리나 봉오리 마을에 옛 풍경을 살려 과거 그곳에서 군 생활을 했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향수의 거리'로 만들면 또 다른 여행상품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그의 말에서 '과거의 잔재를 밀어버리고 현대화만를 고집하는 것만이 능사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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