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 주민들 떠나는 것 가슴 아파"
'노코멘트' 기획그룹, 두리반서 '북아현동 철거민' 위한 바자회 열어
▲ 지난 5월 13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두리반' 식당에서 열린 '북아현 철거민들을 위한 바자회'에서 한 어린이가 진열된 책을 유심히 보고 있다. ⓒ 전민성
13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두리반 식당에서는 '북아현동 철거민들을 위한 바자회'가 열렸다.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된 이번 바자회에는 다양한 흥미로운 책들로 시작하여, 수제비누, 화장품, 작가들이 만든 수제 반지와 귀거리, 머리핀, 사진작가가 내놓은 원본 사진, 저렴한 옷가지 등 여러 종류의 저렴한 물건들로 즐비했다. 많은 사람들로 내내 붐비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손님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바자회는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북아현 철거민들을 위한 바자회'를 방문한 김은경(32, 서울 개포동)씨는 "두리반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바자회가 열리고 있다"며, "오늘은 북아현동을 소재로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장원영 작가의 사진 원본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북아현동 재개발 상황에 대해서 김씨는 "상가세입자 분들이 오랫동안 투쟁을 해 오고 계시다는 것, 합의도 거치지 않은 채 철거를 진행했다는 것,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보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이 바자회인지 잊고 있다가 친구가 '물건을 샀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것을 보고 근처에 있다가 급하게 왔다"는 장한라(21, 경기도 일산)씨는 "학교가 서대문에 있어서 북아현동에 가보았는데,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모습이 좋아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1, 2년 전쯤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장씨는 "소위 공동체 마을인 '달동네'에는 주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나이 많고 혼자 사시는 분들도 많은데, 재개발이 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런 방법(바자회)을 통해서라도 북아현 철거민들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바자회를 주최한 네 명으로 이루어진 '노코멘트' 기획그룹의 고영철(29, 서울 서교동)씨는 "박정근씨라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젊은이가 트위터에서 '북한을 풍자한' 내용을 올린 것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그를 돕는 첫 바자회를 열었다"며, '싼 가격에 물건을 사면서 기부금도 좋은 곳에 쓸 수 있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금까지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강정마을 돕기 바자회를 했으며, 이번 북아현 철거민을 위한 바자회는 그 네 번째"라고 설명했다.
고씨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광고를 하는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는 참가자들이 조금 저조한 편인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는 "현재 진보진영의 여러 가지 사안들, 즉 통합진보당의 문제나 진보신당의 권아무개(트위터 아이디 yawoori)씨가 북한 사이트의 내용을 리트윗(RT) 한 것 때문에 집을 압수수색 당한 문제들 때문에 북아현동 재개발의 문제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바자회에서는 배우 김여진씨가 기부한 물건들의 경매도 이루어졌으며, 천막 농성 중인 북아현 상가 세입자 이선형씨와 박선희씨가 오후 1시부터 저녁시간까지 바자회 현장에서 참여자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진보신당과 혁명기도원의 젊은 청년들이 조를 나누어 북아현동의 천막농성장을 지킴으로서 농성장 부부는 농성 185일 만에 처음으로 농성장을 떠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2010년 531일 동안의 두리반 투쟁 당시 노동절 날 열린 '뉴타운 컬쳐파티 51+'를 제안한 인디음악가 한받씨와 18개월된 아들 한은빛선율을 바자회가 열리던 두리반 앞에서 만났다. ⓒ 전민성 홍대 앞 두리반 531일의 투쟁 중 노동절이던 지난 2010년 5월 1일, '뉴타운 컬쳐파티 51+'란 제목의 70여 개의 인디밴드들이 참여하는 화려한 락 페스티벌이 두리반에서 열렸다. '노코멘트' 기획그룹의 고영철씨는 "매주 토요일이면 두리반 건물 3층에 있는 '사막의 우물'에서 자립음악회를 열었는데, 그 참여자들이 늘어나면서 인디가수인 한받씨가 '5월 1일 노동절 날에 51개의 밴드를 모아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 70여 개의 밴드가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5월 1일부터 시작된 공연은 2일 자정을 넘기면서 이틀 동안의 공연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두리반 앞 야외무대와 두리반 3층 '사막의 우물,' '지하 공간' 등 세 군데의 무대에서 공연이 있었고, 참가자들은 5만1000원으로 70여 개 밴드의 공연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락 페스티벌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당시 한받씨는 '음악가도 노동자다!' '노동절 날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음악가여, 여기로 모여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2010년도에는 두리반에서 2011년에는 석관동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회관에서 두 차례의 '뉴타운 컬쳐파티'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13일 바자회가 진행 중이던 두리반 식당 앞에서 아들 한은빛선율(생후 18개월)을 안는 채 자신의 음반과 다른 인디음악가들의 음반을 실은 손수레를 펼치고 음반을 팔며 작은 공연을 하는 '뉴타운 컬쳐파티 51+'의 제안자인 인디가수 한받(39)씨를 만날 수 있었다. - '두리반'은 인천공항철도 건설과 관련된 개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준비한 페스티벌에 어떻게 '뉴타운'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나요? "재개발의 상징인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 정책'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서울시가 마을을 파괴하면, 우리는 새로운 축제를 벌인다'는 '대항의 의미'인 거죠. 재개발의 배후에는 각 구청, 서울시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 박원순 시장의 당선 이후 앞으로 재개발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아요? "적어도 오세훈 때보다는 '좀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강남구 포이동에도 화재이후 재건은 되었지만, 강남구청이 그곳에 계속 시설을 지으려 하고 있어요. 서울시의 시장은 바뀌었지만, '친(親)자본세력인 강남연결지역을 어떻게 견제해야 할지'는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동료들과 이 지역의 문제를 알리는 영상을 만드는 데 함께 하려 하고 있어요." ◆ 한받씨의 인디음악 홈페이지: atu4tal.com |
<취재후기>
북아현동 재개발은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바자회가 있던 당일까지 185일 째 노숙농성 중인 상가세입자 부부의 가게가 있는 곳은 아현역에서 시작되는 소위 '역세권'이라고 하는 1-3구역이다. 이곳에는 1075명의 세대주가 있었으며, 그중 45세대가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아 허허벌판처럼 변해버린 삭막하고 위험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어버이날 다음 날이던 지난 9일, 농성 중이던 상가세입자 박선희씨를 따라 남아 있는 가게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림건설이 걸어놓은 '13억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재판을 참관했다. 1-3구역은 비교적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다세대 주택들이 많던 '거주밀집지역' 이었다. 세대주가 1075명이라면 최소한 한 건물당 5-6가구 이상이 살았을 것이고, 계산해보니 최소 6450세대가 살았으며, 한 가족당 최소 4명씩 계산을 해 봐도 2만5800명이 된다.
이날 서부지방법원 법정에는 1-3구역을 떠난 머리가 하얗게 센 70세 이상의 노인 다섯 분이 재판장에 나오셨다. '이미 이사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대림건설이 이분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해놓았다'는 것이었다.
여름처럼 기온이 높이 올라간 더운 날이었다. 젊은 담당 변호사는 '선생님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이니까,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안심을 시켜드렸지만, 어르신들은 '오늘 재판장에 나오지 못한 분들에게 손해가 가지는 않는지' 등을 계속 물으셨다. 할아버지들은 변호사에게 자판기에서 찬 음료수를 꺼내 대접하며 감사해했다.
내가 살고 있는 북아현 3구역은 오랫동안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던 비교적 낡은 구역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구역보다 훨씬 넓은 지역이 '뉴타운 구역'으로 묶여 있다. 대기업들이 작은 구역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으니, '노후도 기준을 사용하여 넓힐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구역을 넓힌 것'이라고 한다.
뉴타운 재개발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지역 토박이인 나이 든 분들의 땀과 눈물, 기억이 묻어 있는 마을이 허물어지고, 그분들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터를 떠나 외지로 나간 노인분들이 결국 오래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나는 여러 번 들었다.
작년 7월 29일 연일 비가 계속 내리던 밤 0시 40분, 내가 사는 충현동에서도 가장 낡은 구역에서 5미터 축대가 무너지면서 그 아래 가건물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돌보며 살던 남성 장애인 김아무개(54)씨가 매몰되어 사망했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멀쩡한 집을 부수어 영세 가옥주들을 세입자로 내몰고, 영세 세입자들 또한 서울에서 더 이상 살 곳을 찾을 수 없게 하는 '뉴타운 재개발' 사업은 하루속히 구역이 해제되고, 개발이 필요한 곳은 '그곳에 살던 세입자와 가옥주가 계속해 살 수 있는 방식'의 '진정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재개발과 연결된 온갖 비리와 착취구조, 비인간적인 철거방식 등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른들이 어린 한은빛선율처럼 후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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