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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이번에는 조금 나빠도 괜찮아

[주장] 민주주의를 '개나 줘버린' 사람들한테까지 착할 필요 없어

등록|2012.05.16 11:13 수정|2012.05.16 11:13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이정희의 최대강점을 '낭만성'으로 꼽았다. 유시민은 이정희와의 대담집 <미래의 진보>에서 이 대표에게 '이성의 향기가 난다'고 평했다. 완전 상반된 평가다. 둘 중 한 명은 틀렸다. 이 사태만 놓고 보면 유시민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이정희는 떼를 쓰고 유시민은 침착하고 냉정하다. 5월 7일 <한겨레>는 이정희는 "'진정성, 의리, 고통' 등 감성적인 단어를 많이 쓰는 반면, 유시민은 '정당성, 제도, 원칙' 등의 이성적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두 정치인의 행보에는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다. 담배를 영전에 바치던 노무현의 적자 유시민과 시위대 틈에서 혼절해버린 국회의원 이정희는 비슷한 수준의 감성 코드를 갖는다.

하지만 유시민이 훨씬 정치력이 뛰어나다. 유시민은 NL 계열의 학생운동권부터 집권당의 장관까지 정치판에서는 '안 해본 게' 없다. 개혁당 시절부터 그가 속했던 당은 전부 깨졌다. 유시민은 그 소용돌이에서 자기 지지세력을 별로 잃지 않고 살아남은 정치 고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닳고 닳은 '나쁜 남자' 유시민이 당권파의 삽질을 예상하고 이정희를 꼬신 셈이다. 이정희 뒤의 당권파는 참여계의 지분을 흡수할 호기로 보고 이를 냅다 받았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손을 잡고 왈츠를 추는 일러스트가 주간지에 실렸을 때 좀 더 순진한 쪽은 이정희였다.

인터넷 생중계, 유시민의 '신의 한 수'

유시민은 통합진보당 통합협상 때 당규에 "당대회, 중앙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를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을 관철시켰다. 그 조항이 없었더라면 당권파들은 조직력으로 이 사태를 대충 뭉갤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허나 그의 '신의 한 수'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인터넷생중계는 닉슨의 초조한 모습을 보고 유권자들이 케네디에게로 마음을 돌렸던 1960년의 TV 토론과 맞먹는 효과를 냈다. 덕분에 통합진보당 지지율은 반 토막 났고 정치인 이정희의 정치복귀까지도 대단히 어려워졌다. NL, 당권파는 국민일반의 지지를 기대하기 불가능해졌다.

당권파는 5월 들어 여러 차례 '좋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회의 때마다 그들은 뒤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회의진행 자체를 막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결국 당대표들은 전자 카페를 만들어 전자표결을 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당대표를 구타했다. 유시민의 안경이 날아갔다. 그들은 심상정 대표에게도 다가갔다. 유시민은 '신사도'를 발휘해 그녀를 보호했다. 조준호 전 대표는 당원에게 맞았다. 당대표가 당원에게 폭행당한 초유의 사태다. 이 모든 장면이 여과 없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다. 다음날 14일 폭행당하는 조준호 전 대표 사진을 1면에 실은 <중앙일보>의 헤드라인은 "이 장면 올 대선구도 흔드나"였다.

독하게 마음 먹은 유시민의 정치력 빛나

흔들지도 모른다. 당권파는 비상대책위원회도 인정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역대 최악의 타격을 받았다. 이석기와 김재연이 지난달 17일, 24일에 의원등록을 하고 금배지를 받아간 사실이 15일 확인됐다. 14일에는 한 당원이 대방동 당사 앞에서 분신기도를 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절망적인 몸부림이다. 당권파 모두 이번만 하고 정치 안 하겠다는 심산이다.

참여계의 합세로 범-PD의 몸집이 불어나 당내에서 진상조사위라도 꾸릴 수 있었다. 인터넷 생중계는 당권파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다. 당원의 34.6%인 4만5000여 명으로 구성된 제1의 지지세력 민주노총은 17일 지지철회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공식선언할 참이다. 국민은 물론이고 어떤 정치세력도 이들과 손을 잡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유시민은 독하게 마음을 먹은 듯하다. 8일 <뉴스토마토>의 보도에 따르면 유시민은 측근에게 '여기가 나의 마지막 당'이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정계은퇴로 가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게다가 유시민은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난 5, 6개월 동안 당을 같이 하면서 당 권력을 쥔 분들(구당권파)이 저에게 대선후보로 나가든 당 대표를 하든 같이 해주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해왔다"고 폭로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이로써 NL은 몰락하고 PD가 NL의 지분을 흡수할 가능성이 커졌다. 분당을 하더라도 당장은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과 국회의원 6석을 가져갈지 모르나 점점 그 세력은 지지를 잃고 말 것이다. 당권파가 몰락하면 진보진영에 가해지는 지난한 색깔논쟁이나 민주주의 훼손의 위험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지지율은 이전 수준 이상으로 회복될지 모른다.

이 사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여기까지 숨이 막히도록 달려왔다. 그런데 2008년과 무엇이 다른가? 그때의 '무기력한 분당'이 재현되지 않은 건 유시민의 정치력과 참여계의 감시 때문이다. 이 사실은 어떤 정치세력이든 뜻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태로부터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이제는 모두가 알지만 당권파는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다. 당권파는 자신의 신념과 이상향을 위해 민주주의가 유효한 수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정선거(비례대표선거), 폭력(13일 당대표폭행)을 감행했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는 우리가 사회를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민주적 절차를 따른 모든 결정이 역사적으로 옳은 것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민주주의를 파괴할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민의를 반영하게끔 가꾸어 나가야한다. 강압적인 이상향은 이상향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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