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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땀과 눈물을 모르는 자, 민중예술을 논하지 말라"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 '빛깔 이야기'를 듣고

등록|2012.05.21 10:06 수정|2012.05.21 10:06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빛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백기완 선생님 ⓒ 이명옥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 예술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삶과 예술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은 삶에서 시작이 되었으니 삶과  예술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또 고전문화는 교양있고 품격있는 이들의 향유물이고 민중들이 즐기는 문화는 대중문화라 저속하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다. 민중들의 일상에 녹아있는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화요, 예술이요, 삶의 향기다. 그런 의미에서 백기완 선생이 들려주는 민중미학 특강은 놓쳐서는 안될 귀중한 강연이다.

지난 5월 15일 정동에  경향신문 본관 5층에서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 6번 째 강의가 있었다. 선생은 민중들이 좋아하는  여섯 가지 빛깔에 담긴 바랄(꿈)과 바라지(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쪽빛, 새녁빛,  부심이빛, 달그림자빛, 물빛, 가노을빛. 여섯 가지 빛깔 중 이름이라도 들어 본 빛깔은 쪽빛과 물빛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쪽빛이나 물빛에 대한 이해마저 얼마나 피상적이고 무지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아마 여섯 가지 빛깔만 제대로 이해해도 민중미학과 민중미술, 민중문화의 바라지(원형)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검은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면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쪽빛'이라고 말한다.쪽빛은 푸른 빛 중에서도 유난히 맑고 푸른 빛이다. 한낮의 쪽빛 하늘이 내려앉으면 바다도 온통 쪽빛이 된다. 그 쪽빛 바다에 유람선을 띄우고 돈 푼이나 있다는 사람들이 '쪽빛 놀이'를 하기도 했다. 시도 읊고 술잔도 나누고 가야금과 거문고를 튕기며 여유와 부를 과시했던 것이다.

특강이 끝나고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집행위원장, 이은 영화감독,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김세균 서울대 교수, 정일욱 컬러TV 대표 ⓒ 이명옥


백 선생님은 "민중들이 바랄(꿈)로 삼던 쪽빛은 무지렁이들 마빡에 서려있는 진땀 무지땀 막땀에 햇빛이 서릴 때 발하는 빛"이라고 설명하셨다. 선생은 그 빛이 진짜 '쪽빛'이라고 하셨다. 온 몸에서 배어나오는 노동의 흔적, 삶의 결기와  땀에 배인 '쪽빛'이야말로 하늘도 거울삼는 '쪽빛'이며 자신의 삶의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쪽빛'이 된다는 이야기다.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왜 '쪽빛'을 푸른빛 중에 가장 푸른빛, 하늘도 거울로 삼고 무지렁이들도 거울로 삼고 양심의 빛이 바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도 거울로 삼아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새녁빛은 깜깜한 어둠이 걷히고 은빛으로 밝아오는 빛을 말한다. 새벽이 밝아오면 풀잎에 맺힌 이슬에 햇살이 서리면서 은구슬처럼 찬란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새벽이 지나 따가운 햇살이 쨍하고 비치면 새녁빛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선생은 아침을 불러오는 새녁빛은 동쪽으로부터 밝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울대(자존심)를 버리지 않는 무지렁이들에게서 나온다고 말한다. 생산의 주체인 무지렁이들은 애써 일한 노동의 대가를 대부분 다 빼앗긴다. 노동자 이땅의 무지렁이들은 그래서 외롭고 서글프다.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이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이나라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권리를 인정받디 못하는 외로움이 더 크다. 무지렁이들은 늘 외로움을 숭늉처럼 마시며 살아야 한다.

새벽 동틀 때부터 해질 때까지 뼈가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고 차별받아야 했던 무지렁이들.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는 똥을 누는 똥두간마저 달랐다고 한다. 

박재동 화백박재동 화백이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 이명옥


그런 차별과 착취와 멸시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무지렁이 민중들이 삶은 노예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무지렁이들은 그들을 버티는 마지막 힘인 주울대(자존심)마저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렇다. 지금 대한문 앞 길거리에서 이 시대의 무지렁이 쌍차 동지들이 희미한 별빛을 보며 잠이 들고  혼탁한 매연과 차소리에 잠을 깨야하지만 주울대를 곧추 세우며 새녁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핏빛 울음을 삼키고 활화산같은 분노를 잠재워 목울대로 넘기는 그들은 눈물대신 새녁빛의 결기와 광채를 쏟아낸다. 자기 안에서 새녁빛을 빚어내는 진짜 민중 노동자의 주울대(자존심)로.

부심이빛은 아이들이 입는 초록 바지에 빨간 대님, 빨간 저고리에 초록 옷고름, 풀빛 치마에 빛똥(색동) 저고리를 말한다. 아이들이 지닌 생명력 자연이 지닌 생명력을 가장 잘 표현한 색이며 살기(생명)를 상징한다. 꽁꽁 언 얼음이 녹으면 단단한 대지에 제일 먼저 고개를 내미는 것은 발길에 수없이 짓밟힌 보리와 잡초다. 북풍한설을  꿋꿋하게 견뎌 낸 냉이 쑥 질경이 민들레의 강인한 투혼과 생명력은 아이들이 지닌 활기찬 생명력과 닮아 있다. 실제 밝고 환한 빛깔은 좋은 에너지와 긍정적인 사고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어둡고 침침한 색은 우울한 성격을 형성시킨다고 한다. 자기 안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청년 시절이 지나고 노년에 이르면 빨강 꽃분홍 등 밝고 환한 색을 찾는 것은 다시 청춘을 불사르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의 발현이 아닐까.

달그림자 빛은 달그림자 빛은 정말 답답하고 서러운 여자의 피눈물을 뜻한다. 예부터 남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면 자기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한 맺히고 답답한 여자의  눈물을 곳곳에서 여성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과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재능 농성자의 눈물에서 본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의 눈물이 아니고 다른 피눈물과 만나면 칼이 되고 활이 되는 분노의 눈물임을 잊어선 안 된다. 

물빛은 모든 빛의 바라지(원형)이고 모든 빛의 어머니다. 물빛은 움직임으로 혹은 그 자체로 지니는 빛깔을 의미한다. 바다는 움직임 자체가 빛이고, 붓도 먹도 그림을 그릴 천도 없어 자기 옷 한쪽을 찢어 낸 아이가 바로  물빛의 바라지(원형)을 보인 셈이다.

가노을빛은 연애로 시작해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 새로운 생명을 낳는 빛이며 세 단계의 진화를 거친다. 첫 번째 그리움의 대상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설레임과 반가움의 빛은 발그레한 얼굴의 홍조가 가노을빛이다. 수줍음을 벗어던지고 사랑하는 뎃님(연인)을 만나 서로 안았을 때 온몸이 앵두빛으로 달아오르는데 그것 또한 가노을빛이다. 그 사랑이 무르익어 새로운 생명을 낳는 빛으로 익으면 밤송이 색 비슷한데 그것이 가노을빛이다. 가노을빛은 노나메기 빛이라고도 한다. 밤송이가 아름 벌면 사람 혼자 먹는 것이 아니다. 밤송이가 익어 아름벌면 사람도 먹고, 다람쥐도  먹고 누름(자연)도 함께 노나(나눠) 먹을 수 있다. 가노을빛이란 진정한 그리움의 색이며, 불붙는 사랑의 색이고  사랑의 대상을 만나 올곧게 사랑을 지키고 익혀 생명을 낳는 노나메기 색인 것이다.

선생이 말한 민중들이 좋아하는 빛깔에는 노동과  땀과 눈물과 살기(생명)가 있다. 그 빌깣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우리가 민중미학과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 박재동 화백은 '수 십년 그림을 그려 왔지만 가노을빛이란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선생의  빛깔 이야기를 들으며 왜 선생이 그토록 우리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애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지 일상에 발목을 잡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민중미학 특강 7강 민줄들의 예븐이 이야기 ⓒ 이명옥


선생은 '혁명과 예술은 긴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선생이 말하는 긴장감은  목마름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은 배고픔을 면하는 것만으로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으로 그리움을 표현하고 움직임 속에서 노동의 가치를 깨우치며 눈물과 땀으로 생명을 키워가는 것이 우리네 민중들의 삶이자 예술이고 빛의 바라지(원형)니 말이다. 그러니 노동으로 온몸에서 배어나오는 땀이 빚어내는 쪽빛의 의미, 그리움과 사랑의 빛깔 가노을빛을 알지못한다면 민중의 예술을 입에 올리지 말라.

백기완의 민중미학특강 제7강의 주제는 '이 땅 민중들이 좋아하는 예쁜이는'이다. 무지랭이들에겐 나네, 도랑네, 너울네 등 민중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미인들이 있었다. 이 땅 민중들이 좋아하는 예쁜이는 어떻게 생겼기에 미인일까. 관능미도 화석화된 해석학적, 미적 관점도 아닌 놀라운 민중적 시각으로 풀어 낸 미인 이야기 놓치지 마시라. 제7강은 5월 22일 오후 7시 30분 경향신문사 5층에서 열리며 수강신청은 전자우편(busimi@hanmail.net)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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