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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서울역 사제폭탄, 파괴력 약해 '폭발물' 아냐"

1심과 항소심, 중형 처벌하는 '폭발물' → 대법원, '폭발성 있는 물건'

등록|2012.05.22 13:35 수정|2012.05.22 13:35
공공장소에서 폭발물을 터뜨리면 사회혼란으로 주가지수가 하락할 것을 예상해 풋옵션에 투자한 뒤 수익을 올린 목적으로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물품보관함에 설치해 터뜨렸던 '사제폭탄'은 형법상 '폭발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제폭탄을 중형으로 처벌하는 형법이 규정한 폭발물사용죄의 '폭발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법정형이 훨씬 낮은 단지 '폭발성 있는 물건'으로 판단한 것이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K(44)씨는 지인들로부터 3억 원을 빌려 주식을 했으나 손실만 보게 돼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되자, 공공장소에서 폭발물을 폭발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사회혼란 등으로 주가지수가 하락할 것을 예상해 풋옵션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 빚을 갚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에 K씨는 2011년 5월 인터넷을 통해 사제폭발물 제조 방법을 습득한 뒤 부탄가스, 화약을 담을 꽃병, 폭죽, 타이머 등 폭발물을 만들 재료를 구입한 뒤 실제로 '사제폭탄'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K씨는 P씨에게 돈을 건네고 폭발물이 들어 있는 배낭 2개를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물품보관함에 넣어 두도록 시켰다. 작년 5월 12일 오전 11시경 서울역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던 사제폭탄이 폭발했고, 이날 낮 12시경에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던 사제폭탄이 폭발했다.

갑작스런 사건으로 시민들은 긴급히 대피했고 경찰과 소방서, 대테러 기관 등이 출동했다. 검찰은 "공안을 문란케 했다"며 형법 제119조 1항이 규정한 폭발물사용죄 혐의로 K씨를 구속 기소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2형사부(재판장 김우진 부장판사)는 2011년 8월 검찰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K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풋옵션을 구매한 다음 직접 만든 폭발물의 폭파로 인한 사회혼란과 그에 따른 주가하락을 이용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유동인구가 특히 많은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범행장소로 정해 폭발물을 폭파해 불특정다수의 시민들을 혼란과 위험에 빠뜨린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을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K씨는 "이 물건의 구조와 위력 등에 비춰 볼 때 형법 제119조에 규정한 '폭발물'이 아니라 형법 제172조에서 규정한 '기타 폭발성 있는 물건'에 해당한다"며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5형사부(재판장 안영진 부장판사)는 2011년 11월 1심과 같이 폭발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형량은 다소 무겁다며 징역 4년으로 낮췄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이 사건 폭발물의 폭파 위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점, 물품보관함이 파손된 것 외에 인명살상의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던 점,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하면서 범행을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1심 형량은 다소 무거운 것으로 보인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공공의 안전을 문란케 하기엔 현저히 부족한 파괴력과 위험성"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2011도17254)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제폭탄을 터트린 혐의(폭발물사용)로 기소된 K(44)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폭발물에 관한 법리를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형법 119조 폭발물사용죄는 폭발물을 사용해 공안을 문란하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공공위험범죄로서 개인의 생명·신체 등과 아울러 공공의 안전과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 법정형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등으로 매우 무겁게 설정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폭발물사용죄에서 말하는 폭발물이란 폭발작용의 위력이나 파편의 비산 등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 및 공공의 안전이나 평온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정도의 강한 파괴력을 가지는 물건을 의미한다"며 "따라서 어떠한 물건이 형법상 폭발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폭발작용 자체의 위력이 공안을 문란하게 할 수 있는 정도로 고도의 폭발성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제작물은 폭발작용 자체에 의해 공공의 안전을 문란하게 하거나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해할 정도의 성능이 없거나, 사람의 신체 또는 재산을 경미하게 손상시킬 수 있는 정도에 그쳐 사회의 안전과 평온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을 초래해 공공의 안전을 문란하게 하기에는 현저히 부족한 파괴력과 위험성의 정도만을 가진 물건"이라며 "따라서 이 사건 제작물은 형법에 규정된 '폭발성 있는 물건'에는 해당될 여지가 있으나 형법 제119조에 규정된 '폭발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이 사건 제작물은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채로 물품보관함 안에 들어 있었으므로 유리꽃병이 화약의 연소로 깨지더라도 그 파편이 외부로 비산할 가능성은 없었고, 부탄가스 용기는 내압이 상승할 경우 용기의 상부 및 바닥의 만곡부분이 팽창하면서 측면이 찢어지도록 설계돼 있어 부탄가스통 자체의 폭발은 발생하지 않고, 설령 외부 유리병이 파쇄되더라도 그 파편의 비산거리가 길지는 않은 점을 꼽았다.

실제로 강남고속터미널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던 것은 연소될 당시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품보관함의 열쇠구멍으로 잠시 불꽃과 연기가 나왔으나, 물품보관함 자체는 내부에 그을음이 생겼을 뿐 찌그러지거나 손상되지 않았고, 서울역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던 것은 연소될 당시 열쇠구멍에서 5초간 불꽃이 나온 후 많은 연기가 나왔으나 폭발음은 들리지 않은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제작물이 형법 제119조에 규정된 폭발물에 해당한다고 단정한 다음, 피고인에게 폭발물사용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은 폭발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따라서 폭발물에 관한 부분을 파기해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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