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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까지 문제풀이 강요... 초등학교 맞아?

'일제고사 1등 석탑' 세운 한 초등학교에 가보니...

등록|2012.05.22 17:53 수정|2012.05.22 20:01

▲ 4학년과 6학년 교실 불이 밝은 충북 A초 건물. 시계가 오후 7시 37분을 가리키고 있다. ⓒ 윤근혁


"5월은 가정의 달, 행복한 학교 만들어요."

위와 같은 현수막이 정문에 내걸린 충북에 있는 A초등학교에 들어선 때는 지난 18일 오후 7시 30분쯤. 2층에 있는 4학년과 6학년 교실에 불빛이 환하다. 6학년 교실에 가봤다

가정의 달에 시작한 야간 문제풀이, 왜?

"○○○이 아프리카에 간 까닭... 정답은?"
"사아 번!"

학생들이 목청을 돋아 '정답 4번'이란 것을 합창한다. 가정의 달 5월, 학교의 야간 보충수업 강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이 교실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전체 6학년 학생 22명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17명의 학생들이었다. 열등생으로 분류된 학생 4명은 4학년 교실에서 따로 공부한다. 어머니 노릇을 대신해야 하는 학생 한 명만이 이 보충수업 강요 행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이명박 대통령과 교과부의 교육방향에 맞춰 충북교육청이 지정한 녹색성장 시범학교. 하지만 이들은 지난 5월 8일쯤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교시에 걸쳐 '문제풀이 기계'로 내몰리고 있다. 주5일제가 시행됐지만 토요일에도 나와야 한다.

"선생님이 6월 26일 시험 때까지만 밤중까지 공부하면 된다고 했어요. 정말 재미없어요."

▲ 지난 18일 오후 7시 50분쯤 충북 A초 4학년 교실 복도. 불빛이 환하다. ⓒ 윤근혁


한 6학년 남학생의 말이다. 6월 26일은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있는 날. 사실상 교육청 평가와 학교 평가에 반영되는 이 시험 때문에 학교는 골을 싸맨 끝에 국영수 문제풀이에 나섰고 학생들은 골병이 들고 있었다. 이 학교는 사설업체에서 만든 문제집도 사줬다.

이 학교 한 6학년 학부모는 "이전에는 방과 후에 한 과목을 3시간 동안 시험 대비 학습을 시키더니 5월 들어서는 아예 우열반으로 나눠 밤 8시까지 공부시키고 있다"면서 "학교 가기 좋아하던 우리 아이가 공부하기가 싫다며 너무 힘들어 한다"고 털어놨다. 이 학부모는 "야간 학습이나 토요 등교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안내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학교 교장은 "학부모 동의를 받고 한 일"이라고 해당 학부모의 발언을 부인했다. 교감은 "저녁에 학생들이 늦게 간다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눔활동 등으로 자연을 충분히 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A초등학교가 야간 보충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교과부가 보내준 돈 4000만 원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는 이 학교 등 전국 289개교를 전원학교로 뽑은 뒤 3000∼6000만 원의 돈을 보내줬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이 돈 가운데 일부를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 구입비, 학생 저녁 식사비 등에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일제고사 1위 석탑, 동심이 사라졌다

이날 오후 8시 5분쯤. 정규수업 6교시와 보충수업 6교시, 모두 12시간가량을 학교에서 보낸 학생들은 어둠을 뚫고 교문을 나섰다. 개 짖는 소리가 나는 학교 근처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이 시각 이 학교 본관에 걸린 대형 LED 전광판에 다음과 같은 글귀는 여전히 번쩍번쩍 빛났다.

"꿈을 키우는 어린이, 미래를 여는 학교."

▲ 충북교육청이 지난 해 말 만들어 세운 일제고사 석탑. ⓒ 윤근혁


충북교육청은 지난해 말 한 건설업체의 기증을 받아 '일제고사 석탑'을 청사 현관 앞에 세웠다. '3년 연속 전국 1등을 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이 지역 상당수 학교가 A초등학교처럼 오후 8∼9시까지 야간 보충수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전교조 충북지부는 밝혔다. 충북교육청이 세운 일제고사 석탑은 아이들의 뼈와 눈물로 만든 '동골탑'인 셈이다.

일제고사 5년, 그리고 어른들의 욕심이 가득한 학교와 교육청에 '동심'은 없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희망>(5월 21일자)에 쓴 글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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