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암 투병을 하셨던 89세 노친을 모시고 사는 내 처지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에 대여섯 번 정해진 시간에 약을 드려야 한다. 간단히 병원 약만 드리는 게 아니다. 달이고 데우는 일도 해야 한다. 또 집안 살림을 직장 생활을 하는 집사람에게 온통 맡길 수는 없다. 통장 관리부터 가사노동을 어느 정도는 분담해줘야 한다.
게다가 내 건강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성인병 백화점'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건강 문제를 안고 사는 처지에서는 매일 오후 걷기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또 아내에게도 성인병들이 있어 아내 건강 쪽에도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 장명수 해변 길내가 매일 두 시간씩 걷는 장명수 해변 길 풍경. 아늑함과 한적함,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 지요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올해 노무현 대통령의 3주기에도 '봉하마을'에 가지 못했다. 지난해 2주기 날은 월요일이어서, 오후 7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되는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하는 일 때문에 고장에서 거행된 추모제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20일 고장의 많은 분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봉하마을을 다녀왔는데, 나는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올해도 봉하마을을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23일 저녁 8시 서산시 호수공원에서 거행되는 3주기 행사에는 참례할 수 있게 됐다. 3주기 행사에서 내가 '추모시'를 낭송하기로 돼 있어 좀 더 정갈해지고 비장해지는 마음이다.
장명수 해변의 갈매기들
요즘은 거의 매일 '장명수'에 간다. 장명수는 우리 집에서 보통 걸음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아늑하고 한적한 포구 이름이다. 지난해는 아내가 원북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한 덕에 원북면에 속한 들길과 산길이며 해변 길들을 고루 걸어보았다. 그러다가 아내가 올해 다시 태안 읍내 학교로 직장을 옮긴 후로는 원북면의 길들과 결별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 4월 개나리와 진달래와 벚꽃 등 봄꽃들이 산을 장식할 때는 백화산을 주로 올랐는데, 요즘은 다시 장명수를 주로 가곤 한다.
바닷물이 많이 들어오는 사리 때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장명수 해변을 보고 오는데, 황량한 갯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조금 때는 해변으로 차를 가지고 가서, 바다와 간사지 사이의 제방 수문 위에 차를 놓고 해변 걷기운동을 한다.
▲ 장명수의 갈매기 떼갈매기들은 장명수의 물때를 정확히 알고 있고, 어떤 때 먹을 것들이 많이 실려오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 지요하
요즘은 대규모 갈매기 떼를 보곤 한다. 사리 때는 아니지만 어지간히 들어오는 바닷물이 잔 새우와 새끼물고기 등 먹을 것들을 많이 실어오는 모양이다. 평소에는 많지 않던 갈매기들이 며칠새 갯벌에 하얗게 깔린 듯이 많았다. 갈매기들이 특별히 많이 모이는 때가 있다. 갈매기들은 물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본능에다가 정보 체계도 잘 갖추고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별로 보이지 않던 갈매기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수히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저 갈매기들이 대체 어디에 있다가 오늘 저렇게 갑자기 많이 나타난 것일까? 저 갈매기들이 밤에 잠자는 곳은 어디일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마냥 궁금하다. 매번 같은 의문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곤 한다.
갈매기들은 매우 영리하다. 백로, 왜가리, 물떼새, 오리 등은 사람이 조금만 접근을 해도 날아가 버리는데, 갈매기들은 의연하다. 가까이 다가가도 자신들과 나 사이에 물이 가로놓여 있을 경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물을 밟고 접근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또 일부는 하늘로 날아서 내 머리 위를 돌며 나를 탐색하기도 한다. 내 모습을 익히려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나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 녀석들이 나를 기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기억'은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머리카락인가, 뱀장어 새끼인가
장명수 갯고랑에는 작은 조각배 두어 척이 있다. 낚시를 한다거나 고기를 잡기 위해 있는 배가 아니다. 언제나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배다. 그리고 그 배가 있는 갯고랑에는 머리카락도 빠져나갈 수 없는 미세 그물이 쳐져 있다.
장어새끼를 잡기 위한 그물이고 배다. 머리카락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이 갯고랑에 쳐져 있다는 것은, 장명수의 밀물과 썰물이 얼마나 부드럽고 완만한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그물에 머리카락 같은 장어새끼들이 걸려들곤 한다.
▲ 머리카락 같은 뱀장어 새끼들대양의 심해에서 태어나서 부모가 자란 곳을 찾아 멀고 먼 길을 헤어와서 그만 그물에 걸려든 뱀장어 새끼들. 요즘은 저 머리카락 한 올 값이 4천원이다. 그럼, 저 대접 하나가 대략 20만원은 될 듯. ⓒ 지요하
뱀장어는 민물에서 성장하여 산란기가 되면 바닷물로 들어간다. 심해로 내려가서 산란을 한다. 부화한 뱀장어 새끼는 치어 시절에 길고 긴 여행을 한다. 그리고 부모가 성장을 한 곳으로 돌아온다.
부모가 성장한 곳으로 돌아오다가 그물에 걸린 머리카락 같은 치어들은 양식장으로 가서 자라게 된다. 요즘은 뱀장어 새끼 한 마리 값이 4천 원이다. 20여 년 전부터 장명수에서 뱀장어 새끼를 잡고 있는 사람은 내 후배가 되는 사람이다. 농사가 본업이지만, 장명수에서 뱀장어 새끼를 잡아 자녀들을 대학까지 가르쳤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환경변화 탓인지 뱀장어 새끼가 별로 잡히지 않아 겨우 용돈이나 벌어 쓴다고 한다.
뱀장어 새끼들을 잡는 일은 곧바로 살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금이냐 옥이냐 하는 식으로 극진히 보호를 해서 양식장으로 넘긴다. 양식장의 오염되지 않은 물에서 뱀장어들은 편히 자랄 수 있다. 종족 번식의 소임은 차단이 된다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 뱀장어 치어 집기뱀장어 새끼를 잡는 시간은 물이 둘어올 때 잠깐이다. 물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작업을 마치고 지금은 배 안을 정돈하는 중이다. ⓒ 지요하
뱀장어 새끼들에 비하면 갯지렁이들의 운명은 가혹하다. 장명수 갯벌에서는 갯지렁이가 많이 나온다. 썰물로 드러난 갯바닥에서 갯지렁이를 잡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갯바닥에는 늘 갯지렁이를 잡은 쇠스랑 흔적이 즐비하다.
갯지렁이들은 뱀장어 새끼들처럼 양식장으로 '모셔지는' 신세가 아니다. 일부는 일본으로 팔려가고, 일부는 낚시가게들로 간다. 낚시에 꿰어져서 고통을 겪으며 인간들의 취미생활을 돕는 일에 희생된다.
비탈에 선 나무들
장명수 해변 길을 걷다 보면 작고 문인 황순원 선생의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떠오르곤 한다. 장명수 해변 길 중에서도 근흥면 안기리와 용신리 쪽 길에서 비탈에 선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비탈에 선 나무산비탈의 돌출 부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나무. 뿌리가 온통 드러났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지만 소나무는 여전히 늠름한 자태로 푸르른 기상을 발산하고 있다. ⓒ 지요하
2010년 9월 2일 제7호 태풍 곤파스로 인해 많은 나무들이 뽑히거나 부러졌다. 비탈이 아예 무너진 곳들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의 호우 때도 산비탈이 무너져 제방 길이 막힌 곳이 있었다. 자연의 힘은 정말 무섭다. 육지 안으로 음푹 들어와서 밀물 때도 파도다운 파도가 거의 없는 장명수지만, 한 번 제대로 요동을 치면 장정 혼자서는 들기도 어려운 큰 돌덩이를 파도가 간단히 들어서 제방 길 위에 올려놓곤 한다.
제방 길 위에 무수히 깔린 자갈들을 발로 치우며 걸은 때도 있다. 요즘은 비탈에 선 나무들을 보며 괜한 궁금증이 생긴다. 나무뿌리가 온통 드러나다시피 한 산비탈의 돌출부위가 언제 무너지게 될까? 저 소나무의 생명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저 소나무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은 산비탈의 저 돌출부위가 유지되는 덕분일까? 아니면 저 소나무의 뿌리 덕분에 저 돌출부위가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 장명수 해변의 가을 풍경장명수 해변이 가을에는 또 다른 원색으로 장식된다. ⓒ 지요하
일단은 아슬아슬하다. 산비탈의 돌출부위에 서 있는 소나무는 여전히 늠름하다. 소나무 특유의 기상이 푸르기만 하다. 그리고 건강하다. 그 모습이 자못 대견스럽다. 나도 저 소나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비록 이런저런 건강 문제들을 안고 토대가 부실한 조건 위에 버티고 서 있지만, 뿌리를 온통 드러낸 채 산비탈의 돌출 부위에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저 소나무처럼 푸른 기상을 잃지 말자! 혼자 생각하며 주먹을 쥐어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저 소나무가 안쓰럽다. 2010년 9월의 곤파스도 이겨내고. 지난해 8월의 폭우에도 굳건히 버텼지만, 과연 저 소나무가 얼마나, 언제까지 저 자리에 서 있을지 괜히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어쩌면 나는 그런 마음 때문에 장명수 해변 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비탈에 선 나무들을 눈여겨보며, 내일도 또 내년에도 안녕을 빌기 위해 오늘 장명수 해변 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비록 몸은 늙어가도 푸르른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소망으로...
▲ 5월 바닷물 속의 노인장명수 바닷물은 따뜻하다. 5월의 바닷물 속에서 목욕을 하는 노인장을 보았다. 불현듯 내 선친 생각이 났다. 사진부터 찍고 나서 양해를 구했다. ⓒ 지요하
1986년 작고하신 선친이 남겨놓으신 시집 <장명수 산조>도 떠올려보곤 한다. 1980년 노동판을 전전하며 객지 유량생활을 하던 나는 그해 회갑을 맞으신 선친께 조금이라도 불효를 면할 마음으로 <장명수 산조>라는 시집을 만들어 회갑 상에 올려드렸다. 선친 몰래 선친의 습작품들을 모아 만든 시집인데, 우리 고장(충남 태안)에서는 최초로 세상에 나온 개인 시집이 됐다.
'장명수(長命水)'라는 이름을 가진 포구의 전설을 장시로 형상화한 작품도 담고 있는 그 시집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선친과 함께 장명수 갯벌을 걸었던 내 어린 시절의 어느 하루를 절절히 그리워하며….
바람소리
지동환
나직한 야산 기슭
후미진 돼지바위 돌아
우엉! 우엉! 울어 쉰
황소 목 울림
무둥하게 산고동이 울다
으슥한 산오리숲 그늘진 곳
실안개 몰려가다 말라붙고
어둠 빛 묻을 무렵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허허 실성하는
긴 한숨
메아리 가다오다 머무는
노송나무 삭정이 속
설움에 겨워 목이 메인
한 삼백 년 묵은 곡성 조석으로 흘러
오가는
그 소리
그 노래
그 꿈….
▲ 선친의 생존시 시집 내가 불효를 면할 마음으로 선친 몰래 선친의 습작품들을 가져다가 시집을 만들어 1980년 5월 단오에 선친의 회갑상에 올려 드린 시집이다. 우리 고장 최초의 개인시집이 됐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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