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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KAI...'수상한' 검찰

횡렴 혐의 일부만 기소...KAI 매각 고려한 봐주기?

등록|2012.05.25 15:51 수정|2012.05.25 15:51

▲ 검찰이 KAI와 연관된 횡령사건을 미온적으로 처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당사자들이 말을 아끼고 있어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진다. ⓒ 하병주


한국항공우주산업(주)(이하 KAI) 김홍경 사장이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둘러싼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검찰의 '봐주기'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태다.

KAI 김홍경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이는 KAI가 29.4%의 지분을 가진 S&K항공(주)(이하 S&K)의 직원 김경민 씨다. 그는 김 사장을 배임혐의로 지난 3월 6일 고발하면서, S&K 전 사장인 백아무개 씨도 횡령혐의로 함께 고발했다.

김 씨가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10월 28일에 백 씨를 횡령혐의로, 2011년 3월 14일에 김 사장을 배임혐의로 각각 고발했던 것.

이에 검찰은 백 씨를 기소했고, 법원은 1심에서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3년 선고를 내리면서 '80시간 사회봉사'를 함께 명했다. 백 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KAI 김 사장에게는 증거불충분 이유를 들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김 사장을 고발한 김 씨는 항고 했으나 부산고검은 같은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 지난 2월 27일 있었던 KAI와 중소협력업체 동반성장 선포식 장면. ⓒ 하병주


그렇다면 고발인은 이미 지난해 끝난 문제를 올해 왜 다시 꺼낸 걸까? 그리고 기소가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이런 궁금증을 풀려면 지난해 사건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발인 김 씨는 당시 S&K의 경영지원팀장이었다. 그는 2010년 초 무렵, 업무 과정에서 당시 사장이던 백 씨의 횡령을 의심했고, 이를 KAI에서 파견 나와 있던 S&K 감사는 물론 KAI 감사에게도 알리면서 세밀한 조사를 주문했다.

이렇듯 문제가 불거지자 S&K 백 전 사장은 어쩔 수 없이 16억 원을 회사에 돌려줬다. 그리고 3년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KAI 김 사장과 합의한다. 이에 따라 김 사장은 KAI 직원인 이학희 씨를 파견시켜 S&K 새 사장을 맡게 한다. 이 과정에 KAI 김 사장과 백 씨 사이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협약을 맺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백 씨는 자신의 회사 지분 중 상당량을 KAI에 매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발인 김 씨는 "횡령 사실이 더 있음에도 사태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백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지난해 3월에는 역시 사태수습 과정에서 축소 은폐한 의심이 있다며 KAI 김 사장까지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 김경민 씨가 검찰에 제출한 횡령혐의 입증자료 목록. 이 가운데 검찰은 위 세 건만 혐의가 있다고 봤는지 나머지는 기소하지 않았다. 세 건의 합산금액은 약 16억 원이다. ⓒ 하병주


검찰의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은 지금부터다. 사건을 맡은 창원지검은 백 씨를 기소하면서 고발인이 제시한 여러 가지 횡령혐의 가운데 일부만 택한다. 나머지는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고발인 김 씨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확인한 횡령혐의만 6건에 금액은 23억여 원이다. 그 증거자료를 모두 검찰에 제출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3가지 혐의 내용만 들어 있었고, 횡령금액을 16억 원이라고 밝혀놓았다. 뒤에 알고 보니 검찰이 나머지 건에 대해서는 기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횡령 혐의 더 있는데 검찰은 왜 16억 원만 기소했나?

검찰은 왜 일부 혐의만 인정해 기소했을까? 증거가 불충분 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 사건 종결 후 또 발생한다. 고발인 김 씨가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횡령 혐의 입증 자료를 KAI에서 파견 나온 S&K경영진에 제시하자 백 씨는 이번에도 이를 인정하고 7억 원을 순순히 내놓은 것이다.

검찰에 제출했던 증거자료와 KAI에서 파견 나온 S&K경영진에 전달된 자료는 똑같은 것이었다. 검찰이 백 씨의 횡령 혐의를 축소해 기소한 이유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고발인 김 씨는 "내가 확보한 정확한 증거자료는 이만큼이니 이것 말고도 더 횡령한 것이 있는지 찾아내 달라고 고발했는데, 검찰이 수사를 하긴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백 씨가 최초 횡령사실을 인정한 금액 '16억 원'이다. 이 금액은 고발인 김 씨가 처음 KAI 관계자와 주변에 백 씨의 횡령사실을 알리며 구두로 흘렸던 금액과 일치한다.

▲ 고발인 김경민 씨가 검찰에 제출한 S&K 전 사장 백 씨의 횡령 입증자료. 계약서 위쪽이 정상이라면 아래쪽은 허위 계약서다. 이중계약임을 암시하듯 숫자와 한글 금액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와 같은 이중계약서가 있음에도 이를 기소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 하병주


그래서 고발인 김 씨는, S&K 전 사장인 백 씨가 자신이 알고 있는 횡령금액이 이것뿐인 것으로 확신했고, 이후 이뤄진 감사에서도 그 금액만큼만 횡령을 인정했다고 추측한다.

나아가 KAI 역시 감사를 철저히 했다기보다 백 씨의 진술에만 의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감사 과정에서 백 씨의 횡령 사실을 꾸준히 제기한 김 씨 자신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자료요청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KAI 김홍경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백 씨의 횡령금 16억 원은 고발인 김 씨의 입에서 최초 흘러나왔고, 백 씨는 이를 인정했으며, KAI 역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김 씨는 추가 자료가 더 있음에도 자신을 조사하지 않자 백 씨와 김 사장을 각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이때 김 씨가 제출한 증거자료는 6건에, 금액으로 23억 원이었지만, 묘하게도 검찰이 기소한 것은 백 씨와 KAI가 주장하고 합의한 '16억 원'에 해당하는 횡령혐의 3건이었다.

김 씨는 또 검찰이 KAI 김 사장을 불기소한 것을 두고도 의구심을 보였다.

"백 사장의 횡령사실을 충분히 조사하고, 그 과정에 간여한 세력은 없는지 광범위하게 조사한 뒤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할 텐데 고발한 지 두 달 만에, 그것도 백 사장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이렇게 서둘러 김 사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KAI의 코스피 상장과 김 사장의 'KAI 사장 연임'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KAI 코스피 상장은 지난해 6월에 이뤄졌고, 김홍경 사장의 연임 결정은 지난해 8월에 있었던 일이다. 반면 김 씨는 지난해 3월 14일 김 사장을 고발했고, 검찰은 5월 19일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김 사장에 대한 사건처리가 늦어졌을 경우 KAI 상장과 연임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란 건 미뤄 짐작할 수 있음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KAI문제에 관심 둔 이유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당시 청와대에서도 이 문제를 직접 조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KAI 본사가 있는 경남 사천에 내려와 고발인 김 씨 등을 만나고 간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이 사건에 어떤 식이든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당시 그런 이야기가 들려서 확인하러 간 것은 맞다. 하지만 이미 검찰에서 수사 중이어서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잘 모른다."

여기까지가 KAI 김 사장과 그 출자회사인 S&K 전 사장 백 씨에 대한 고발사건의 숨은 이야기다. 검찰이 실제로 '봐주기'를 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의심을 살 만한 빌미를 제공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창원지검 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취재를 거부한 상태다. KAI 측 역시 "책임 있는 답변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며 사실상 취재를 거부했다.

▲ KAI 공장 내부 전경. 대외 신용도 관리를 위해 협력업체 관리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KAI가 출자회사 경영허물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하병주


남은 문제는 고발인 김씨가 올해 3월 9일, 두 사람을 재차 고발했다는 것이다. S&K 전 사장 백 씨에게는 횡령을, KAI 김 사장에게는 배임 혐의를 뒀다.

하지만 검찰이 이들을 기소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올해 연말까지 지분 매각을 통해 KAI의 새 주인을 찾겠다고 나서 지난해 코스피 상장을 앞뒀을 때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특히 KAI 지분 매각은 현 정부가 막판까지 목매고 있는 사업이어서 검찰이 '정치적 판단'을 할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반대로 검찰이 이들을 기소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백 씨의 추가 횡령사실을 누락시킴으로써 사실상 이번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사건을 맡은 창원지검 진주지청의 이철희 부장검사는 "일단 조사가 끝나봐야 뭐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말을 아꼈다.

S&K는 자본금이 34억 원인 기업이다. 이 가운데 백 씨가 지닌 지분은 23억2800만 원. 백 씨가 자신의 횡령을 인정하고 회사에 반납한 돈이 23억 원이니, 그는 자신이 투입했던 자본금 대부분을 횡령했던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부분만 그렇다.

또 S&K는 KAI가 10억 원의 자본금을 투입한 출자회사다. 현재 KAI에서 하청을 받아, 에어버스사 항공기 A320의 날개 상판을 생산하고 있다. S&K에서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KAI의 신용도는 물론 우리나라 항공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이다.

그런데도 검찰과 KAI가 S&K 전 사장의 횡령을 '봐주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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