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 타고도 즐기는 라틴아메리카, 괜찮네
[서평] 윤영순 글과 사진 <라틴 아메리카 여행>
▲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윤선생 세계여행 시리즈2'로 나온 이 책은 '여행하며 배우는 재미있는 세계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 윤영순이 사진도 직접 찍었다. ⓒ 윤영순
새뮤얼 헌팅턴의 8개 문명 중 '신비와 열정의 땅'이라고 말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틴 아메리카를 꼽을 것이다. '신비'는 다른 지역에도 이래저래 해당될 수 있겠지만 '열정'만은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까닭이다.
비슷한 질문을 해보자. 미국, 일본,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스, 스페인, 영국, 독일, 폴란드, 러시아 중에서 '열정'의 이미지를 가장 강력하게 풍기는 나라는? 대뜸 스페인을 지목하게 되고, 탱고, 투우 등을 떠올리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어원을 헤아리게 된다.
앵글로(Anglo)아메리카는 영국이 지배했던 북미를 말하고, 라틴(Latin)아메리카는 스페인, 포르투갈이 다스렸던 남미를 말한다. 라틴이 본래 고대 로마, 에스파냐,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등 지중해 북안의 언어와 민족을 가리키는 어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의 라틴' 지역인 스페인 등지의 문화와, 그들이 식민지로 지배했던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문화에 일맥상통한 현상이나 흐름이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중의 하나가 '정열의 춤' 탱고이다.
▲ 브라질 이과수 폭포 바로 앞까지 다가가 물세례를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 ⓒ 윤영순
물론 스페인과 프랑스의 탱고도 아르헨티나의 것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확장된 결과이므로, 탱고가 앵글로색슨족의 거주지인 영국이나 그들의 본거지였던 동유럽 등 기타 유럽국가들에 비해 본래 라틴 국가들인 스페인과 프랑스에 강력한 뿌리를 내린 데에는 문화사적 원류의 흐름이 있었다고 볼 만하다.
14장의 비행기표를 들고 '라틴'으로 떠나다
남미는, 우리나라에서 멀다. 웬만큼 서구여행을 다닌 사람들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부터 시작하여 스페인, 독일, 동유럽, 북유럽, 러시아, 그리고 미국, 캐나다 등을 다 다닌 후에야 찾게 된다. 멕시코, 쿠바,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려면 무려 14장이나 되는 비행기표를 손에 들고 출발해야 하고, 첫 도착지인 멕시코에 닿는 데에 만도 비행기에서 15시간을 보내야 하니, 그만큼 경비도 많이 들어 좀처럼 떠날 마음을 먹기가 벅찬 해외여행인 탓이다.
해발 2309미터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멕시코시티에서 보는 독립기념탑과 교황청 공식 인정 세계 3대 성모발현 성지인 과달루페 성당,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23.5평방킬로미터의 거대 유령도시 테오티우와칸에서 보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국제적 명성을 자랑하는 연건평 4만4천 평방미터의 인류학박물관, 축제를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의 소깔로 광장에서 보는 민주화 시위, 250년에 걸쳐 지어진 덕분에 바로크, 이오니아, 코린트, 고딕, 르네상스 등 여러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향락적인 현대문명의 휴양지 칸쿤, 고대마야의 중심지 치첸이트사, 곳곳의 거대 피라미드.
▲ 멕시코의 '달의 피라미드'. 기원정 2세기에 건설되어 기원후 7세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국가 테오티우와칸 유적지에 있다. ⓒ 윤영순
<'신비와 열정의 땅'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 중 제 1부를 이루는 '멕시코' 여행의 답사지들을 대략 나열해본 것이다. 언뜻 훑어보아도 답사의 여정은 이처럼 신비하고 경이롭다.
그래서 윤영순 저자는 책의 부제를 '여행하며 배우는 재미있는 세계 역사'로 붙였다. 1부 '멕시코', 2부 '쿠바', 3부 '칠레', 4부 '아르헨티나', 5부 '브라질', 6부 '페루'를 읽으면 각각 그 나라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어떤 고대문명의 꽃이 피었는지, 남아 있는 유적과 문화재로는 무엇무엇이 있는지, 외세의 침탈은 언제부터였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을 두루 알게 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가 반겨주는 쿠바
이번에는 쿠바로 가본다. 콜럼버스의 기분을 느껴보는 카리브 해변의 아침, 수도 아바나 거리를 걸으면서 보는 거리의 공연들, 타이노족 원주민 마을에서 보는 그들의 삶의 모습과 연노랑꽃 '로또', 호텔의 살사춤이 소개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크리스토발 대성당, 헤밍웨이가 20여 년 동안 쿠바에 올 때마다 살았던 집이자, 그가 소설 '노인과 바다'의 실제 주인공 푸엔테스에게 상속한 집을 푸엔테스가 다시 국가에 헌납하여 그후 '헤밍웨이 박물관'이 된 '라 비히아', 영화 '노인과 바다' 촬영지인 코히마르 어촌,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암모스 문도스 호텔 511호실,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을 둔 채 누구도 편히 잘 권리가 없다'고 노래한 독립투사이자 시인인 호세 마르티의 하얀 동상, 체 게바라의 조각상도 소개된다.
▲ 쿠바에서 본 거리의 공연단 ⓒ 윤영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 세계 여행지인 라틴 아메리카, 언제 가볼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비와 열정의 땅'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읽고, 책 속의 사진들을 보면 불현듯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행서를 읽는 보람이다. 그래서 유럽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점이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 하나는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일반서점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전문서점이라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 중에서도 가장 먼 나라 칠레
라틴 아메리카 중 우리나라와 가장 먼 국가가 칠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가장 먼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칠레 포도' 등을 시중에서 많이 보기 때문인지, 아니면 세계 최초의 지구 일주 항해에 성공한 포르투갈인 마젤란의 이름을 딴 '마젤란 해협'이 칠레에 있다는 사실을 지리 수업 때 배운 탓인지, 칠레라는 나라의 이름은 아주 익숙하다. 물론 수도 산티아고의 이름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 아르헨티나의 프리토모레노 빙하. 지구 온난화 때문에 1년에 700미터가량 아래로 내려온다고 한다. ⓒ 윤영순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킨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1973년 피노체트의 쿠테타를 맞아 저항하다 비극적 최후를 마친 모네다 궁전, 안데스 산맥의 눈이 시린 풍광, 1914년의 파나마 운하 개통 이전까지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뱃사람들의 영원한 휴식처였던 푼타아레나스,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며 대포를 발로 밟고 서 있는 마젤란 동상, 키가 70센티에 눈자위에 흰줄이 있어 다른 지역의 펭귄과는 구별이 되는 '마젤란 펭귄'의 야생지 오타웨이 해협, 토레스델파이 국립공원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의 집결지 푸에르토 나탈레스, 파이네 폭포와 그레이 호수.
아직도 라틴에는 다녀야 할 여행지가 많다. 멕시코, 쿠바, 칠레를 다녔지만 이과수 폭포, 축구, 마추픽추가 대뜸 떠오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가 여전히 남았다.
누군가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지만 라틴 아메리카는 정말 '땅은 넓고 볼 것이 많다'고 했다. 멀리 태평양을 넘어 이곳까지 허위허위 날아온 보람을 느낀다. 마젤란은 새로운 해로를 개척하여 필리핀까지 갔다가 거기서 원주민과 싸우던 중 죽고 말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한가로이 안데스 산맥과 이과수 폭포 사이의 지리적 높낮이와, 마추픽추와 체 게바라 간의 시간적 원근을 한가로이 즐길 수 있다. 그 '신비와 열정의 땅'으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책이 바로 윤영순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인 것이다.
▲ 페루 대통령궁 앞에 선 저자 ⓒ 윤영순
2008년에 첫 기행문집 <포르투갈 모로코 스페인 여행기>를 펴낸 바 있는 윤영순 저자는 영어교사 출신으로 1990년부터 22년째 세계여행을 다니고 있다. "세계여행은 기회가 올 때마다 읽어내고 있는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이제 2/3쯤 읽었다고 생각"하면서 "역사의 흔적과 아름답고 신비한 경관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다가가서 관찰하고, 느낌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글로 표현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은 그의 토로이다.
"여행을 하나의 꿈으로 세우고도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의 여행 보따리를 풀어 나누는 일이 오늘까지 살면서 이유 없이 남다르게 내가 받은 선물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기를 책으로 세상에 내놓는 까닭에 대한 '서문'의 일부이다. 자신의 여행기가 현지에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저자의 '겸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왜냐하면 지금,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를 읽으면서 라틴의 '신비와 열정의 땅'을 마음껏 누비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영순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는 사진과 글로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일이 지닌 가치를 증언해준다. 저자처럼 책으로 낸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개인 블로그 등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정도는 실천할 일이다. 권력과 재물은 없지만 내가 가진 생각과 느낌이야 남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일인 까닭이다. 그 일의 실천이야말로 삶의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겠는가.
▲ 잉카 문명의 중심지인 쿠스코(페루).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붉은 지붕들로 가득찼다. ⓒ 윤영순
덧붙이는 글
윤영순 글과 사진 <라틴 아메리카 여행>, 솔과학 발행, 292쪽, 1만3천원, 2012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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