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기 시작했다. 서예치료관련 활동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최근들어 어른들을 가르치다 보니 십 수년 전에 사회에 처음나왔을때 꼬맹이들과 함께 문방사우랑 벗하면서 지냈던 추억도 그리웠다.
아침 일곱시가 채 못되는 시간에 가벼운 토마토샐러드와 오곡밥 약간으로 배를 채우고 볶은 검은콩과 효소물을 간식으로 챙겨서 운전대로 잡았다. 남으로 내려가는 이른 아침의 도로는 막히지도 않고 하늘도 쾌청하다. 계룡산을 지날 즈음에는 공기맛도 쌉쌀하여 잠시 차를 멈추고 바람 열 보시기를 마시고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 두 세곡을 불렀다.
내 노래를 제대로 들은 이는 세상에서 몇 사람이 안 된다. 아마도 하느님이 귀가 있다면 무척 시끄럽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아름다운 성가를 무진장 많이 들으시니깐. 하지만 나를 낳아주셨던 아버지는 내 노래를 좋아하셨다. 발음도 이상하고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것이 확실한데도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듣기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에게는 막내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무엇보다도 소중하였을터이고 그 사랑으로 모든 소리를 참으셨을 것이었다.
남으로 내려가서 처음으로 방문한 아동센터에는 지필묵연이 미리 택배로 내려간 박스들은 뜯어지지 않은 채로 있었고 아이들은 산만하였다. 그러나 박스를 뜯어 지필묵연을 꺼내는 나를 아이들은 도와서 책상에 깔고 수업준비를 해주었다.
미리 준비한 교안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눈치코치만 가지고는 아이들의 말을 행여나 놓칠세라 종이들을 나누어주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적게 하고 그 이름들을 가슴에 달게 하면서 이름을 익혀나갔다. 이름을 익히고 눈빛을 익히면 아이들의 말은 금방 느낌으로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마음은 물처럼 투명하고 천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꽃과 나무와 동물 또는 상상속의 어떤 것들을 가지고 애칭을 짓기 시작하고 그리고 손가락을 붓으로 먹그림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적었다. 그런데 나는 놀랐다. 아이들의 단점에 대해서 나는 아이들의 입모양을 알아맞추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미리 상상을 해두었는데 '늦게 일어난다' .숙제를 안한다' ' 엄마 말을 안 듣는다.' '학교가기 싫어한다' ' 군것질과 거짓말을 잘한다' 대충 이런 것을 상상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서 삼분지 정도가 자신들의 단점을 '욕을 한다' ' 때린다' 였다. 폭력성이 있는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인 것이었다. 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다양하고 그 아이들 중에서는 다문화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나는 도경계를 두 개나 지나는 운전길에 올랐지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자신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서도 희망을 보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욕을 하고 때린다는 것이 안좋다고 아이들이 느끼고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디서 욕을 배우고 어디서 폭력을 배울까? 수 많은 언어중에서 어떤 것이 소통에 필요한 언어이고 어떤것이 소통을 더 막히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욕이란 것은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배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욕의 산물은 어른들에게서 출발한다. 아이들이 좋지 않다는 느끼는 욕과 폭력들은 기실은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앞으로 재미있는 말, 신나는 말, 고우면서 즐거운 말을 아이들이 많이 쓸 수 있는 수업시간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푸른 풀로도 글씨를 쓰고, 맛있는 과자를 먹으면서 과자의 맛도 신나게 초록색풀로 적어보는 그러한 창의성을 듬뿍 키워주고 싶다. 욕들이 사방에 넘치는 현실에서 이러한 것들은 별로 표가 나지 않겠지만 꾸준히 할 것이다.
나와 무관할 것 같은 그 욕과 폭력들은 부메랑처럼 우리가 낳은 아이들을 아프게 쓰여지는 현실에서 한 아이라도 한 아이에게 욕을 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의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침 일곱시가 채 못되는 시간에 가벼운 토마토샐러드와 오곡밥 약간으로 배를 채우고 볶은 검은콩과 효소물을 간식으로 챙겨서 운전대로 잡았다. 남으로 내려가는 이른 아침의 도로는 막히지도 않고 하늘도 쾌청하다. 계룡산을 지날 즈음에는 공기맛도 쌉쌀하여 잠시 차를 멈추고 바람 열 보시기를 마시고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 두 세곡을 불렀다.
내 노래를 제대로 들은 이는 세상에서 몇 사람이 안 된다. 아마도 하느님이 귀가 있다면 무척 시끄럽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아름다운 성가를 무진장 많이 들으시니깐. 하지만 나를 낳아주셨던 아버지는 내 노래를 좋아하셨다. 발음도 이상하고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것이 확실한데도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듣기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에게는 막내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무엇보다도 소중하였을터이고 그 사랑으로 모든 소리를 참으셨을 것이었다.
남으로 내려가서 처음으로 방문한 아동센터에는 지필묵연이 미리 택배로 내려간 박스들은 뜯어지지 않은 채로 있었고 아이들은 산만하였다. 그러나 박스를 뜯어 지필묵연을 꺼내는 나를 아이들은 도와서 책상에 깔고 수업준비를 해주었다.
미리 준비한 교안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눈치코치만 가지고는 아이들의 말을 행여나 놓칠세라 종이들을 나누어주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적게 하고 그 이름들을 가슴에 달게 하면서 이름을 익혀나갔다. 이름을 익히고 눈빛을 익히면 아이들의 말은 금방 느낌으로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마음은 물처럼 투명하고 천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꽃과 나무와 동물 또는 상상속의 어떤 것들을 가지고 애칭을 짓기 시작하고 그리고 손가락을 붓으로 먹그림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적었다. 그런데 나는 놀랐다. 아이들의 단점에 대해서 나는 아이들의 입모양을 알아맞추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미리 상상을 해두었는데 '늦게 일어난다' .숙제를 안한다' ' 엄마 말을 안 듣는다.' '학교가기 싫어한다' ' 군것질과 거짓말을 잘한다' 대충 이런 것을 상상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서 삼분지 정도가 자신들의 단점을 '욕을 한다' ' 때린다' 였다. 폭력성이 있는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인 것이었다. 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다양하고 그 아이들 중에서는 다문화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나는 도경계를 두 개나 지나는 운전길에 올랐지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자신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서도 희망을 보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욕을 하고 때린다는 것이 안좋다고 아이들이 느끼고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 나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수업을 마치고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발표하는 장면 ⓒ 이영미
아이들은 어디서 욕을 배우고 어디서 폭력을 배울까? 수 많은 언어중에서 어떤 것이 소통에 필요한 언어이고 어떤것이 소통을 더 막히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욕이란 것은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배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욕의 산물은 어른들에게서 출발한다. 아이들이 좋지 않다는 느끼는 욕과 폭력들은 기실은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앞으로 재미있는 말, 신나는 말, 고우면서 즐거운 말을 아이들이 많이 쓸 수 있는 수업시간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푸른 풀로도 글씨를 쓰고, 맛있는 과자를 먹으면서 과자의 맛도 신나게 초록색풀로 적어보는 그러한 창의성을 듬뿍 키워주고 싶다. 욕들이 사방에 넘치는 현실에서 이러한 것들은 별로 표가 나지 않겠지만 꾸준히 할 것이다.
나와 무관할 것 같은 그 욕과 폭력들은 부메랑처럼 우리가 낳은 아이들을 아프게 쓰여지는 현실에서 한 아이라도 한 아이에게 욕을 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의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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