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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근위대 교대식 못지 않은 진주성 교대식

등록|2012.05.28 17:21 수정|2012.05.28 17:21

▲ 김시민 장군이 성곽방어 명령을 내리고 위해 공복문에 도착하고 있다. ⓒ 김동수


"영국에 왕궁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면 진주엔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식이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동영상을 통해서 봤지만 영국 왕궁 근위병 교대식은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교대식이 있으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바로 경남 진주 진주 수성중군영 교대식(이하 교대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방이라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않지만 한 번 본 사람은 감탄할 수밖에 없지요.

영국 왕궁 근위대 교대식 못지 않은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식

교대식은 진주시가 진주성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지난 해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3시, 4시) 실시하고, 시간은 30분 동안 진행됩니다. (조금 살을 붙이면) 교대의식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듭니다.

교대의식 진행순서는 대북을 쳐 시간을 알리는 인정의식을 시작으로 진주성 중군영 군사들이 진주성 정문인 공북문 앞으로 집결하고, 성문개폐의식, 병마절도사 김시민장군의 행차, 수자대기 승기의식, 중군영 수문군사들의 교대의식, 수위의식, 수자대기 낙기의식, 순라의식을 거쳐 군사들이 배치를 풀고 의식을 끝내는 예필의식으로 마무리 됩니다.(진주시 누리집)

▲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을 진두지휘했던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 성곽방어 명령을 내리고 있다. ⓒ 김동수


지난 26일(토요일) 아이들과 촉석루에 갔더니 때마침 교대의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맨 앞에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을 이끌었던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행차를 하고 이어 진주성 정문인 공복문에 올라 "모든 성민은 내 명령만을 따라야 한다"는 성곽 방어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명령을 들을 때 가슴이 떨렸습니다. 420년 전, 진주대첩 당시에 우리 모두가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420년 전 진주대첩 현장에 있는 느낌

▲ 중군영 수문군사들의 교대의식 ⓒ 김동수


이어 수문군사들이 교대명령을 상징하는 패를 주고 받았습니다. 패를 통해 적과 아를 구별하고, 패를 통해서만 교대를 할 수 있습니다. 이어 교대식 중 각종 의식이 진행되었는데 검무와 군기, 긴창 시범이 이어졌습니다.

진주시에 따르면 진주성은 임진왜란 이후 병마절도사와 관찰사가 상주했던 경남지역 군사·행정의 중심지로 경상우병영 소속 주진군 4200여 명의 병력과 수성중군영 소속 1400여 명의 수성군, 취타수 100여 명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 수성중군영 교대식을 거행한 분들이 10여 명입니다. 그런데도 정말 대단했는데 수성군 1400여 명과 취타수 100여 명이 교대식을 가졌던 장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단검을 통해 교대의식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김동수


그 어떤 적도 성안으로 들어올 수 없음을 검무 시범은 보여주었습니다. 날렵한 몸을 통해 성을 사수하고, 넘어오는 적을 반드시 베겠다는 조선 장군의 위엄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420년 진주대첩 당시에도 수많은 왜적들이 장군의 검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졌을 것입니다.

▲ 두 사람이 군기로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 김동수


군기를 빼앗기면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군기는 절대 적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군기를 든 두 장수가 시범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긴 군기를 들고 대련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이었습니다. 진주대첩 당시 군기를 지키기 위해 진주성민 모두가 온힘을 다했고, 끝내 지켜냈습니다. 

검과 창, '무서버라'... 하지만 우레와 같은 박수

▲ 두 사람이 검으로 대련하고 있다. 놀라웠다. ⓒ 김동수


그리고 검과 창으로 두 장수가 대련했습니다. 단 한 순간 실수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실제 상황과 다름없었습니다. 온힘과 온 정신을 모으는 이들을 보면서 '무서버'(무서움)졌지만 관람했던 모든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관람하는 순간, 정말 모두가 조용했습니다.

▲ 적군을 향해 진주성을 절대 넘보지 말라는 포효다. ⓒ 김동수


▲ 도리깨 모양으로 생긴 무기로 교대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 김동수


그리고 도리깨처럼 생긴 무기 시범을 보였습니다. 도리깨는 옛날 농민들이 콩타작을 할 때 주로 사용했던 농기구입니다. 당시 농민들 대부분이 도리깨를 무기로 삼았는데 이를 되살린 무기였습니다. 도리깨는 대나무가 주재료입니다. 진주대첩 당시 도리깨와 낫과 곡괭이를 든 농부, 돌멩이를 든 아낙네와 아이들 등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진주성을 지켰습니다.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식을 동영상으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나시면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열리는 교대식을 관람하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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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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