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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나네, 도랑네, 너울네에 대한 송가

백기완의 민중미학 7강 '민중들의 가장 에쁜이는'을 듣고

등록|2012.05.29 09:29 수정|2012.05.29 13:42

이애주 교수. 백기완 선생님. 김진숙 지도위원노나메기 한마당에서 ⓒ 이명옥


백기완 선생은 일전에 "평생 만난 여성 중 최고의 여성은 김진숙"이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김진숙(부산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만나 본 적이 있다면 그의 그 아름다운 미소와 밝은 모습이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에겐 투혼과 생명력이 뿜어내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백기완 선생의 민중미학 특강 7강 '이 땅 민중들의 가장 예쁜이는'을 듣고서야 김진숙이야말로 나네(언 땅을 뚫고 나오는 자그마한 새싹). 도랑네 너울네가 지닌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랭이(민중)들의 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땅 민중들의 흠모의 대상이 될 만한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이는 김진숙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시청 앞, 재능교육 투쟁 현장, 대학 청소노동자, 병원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이땅의 진정한 미인의 면모를 마주할 수 있다.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민중들이 좋아하는 미인 이야기 ⓒ 이명옥


지난 22일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 7강 '이 땅 미중들의 가장 예쁜이는'은 한 마디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한국 민중의 미의식은 참으로 독특하고 뛰어나다. 이는 선생이 풀어내는 미인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다. 특히 수사적 언어의 뛰어남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언어 조형미가 빚어내는 시적 표현의 아름다움은 땅별(지구)에서 미인을 표현하는 언어 중 가장 아름답다고 단언한다. 자연 현상을 미인의 눈, 코, 입과 발가락, 엉덩이 등 신체 부위에 절묘하게 대입시킨 방법론은 듣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랭이(민중)들은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때 신체의 맨 아래인 발가락부터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마도 그것은 노동과 실천적 삶을 중시하는 민중들의 인생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발가락을 말할 때 은어 새끼 떼가 서로 입 맞추는 꼴이 가장 아름다운 발가락이라고 한다고 한다.

선생은 엉덩이를 '꽃술(진달래술)을 기다리는 흰 항아리'같다고 표현했는데 진달래 꽃술을 한 잔 마시면 취흥이 오르지만 두 잔을 연이어 마시면 위경련을 일으킨다고 한다. 딱 한 잔의 꽃술을 기다리는 흰 항아리 같은 엉덩이라면 얼마나 순결하고 거룩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겠는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얼굴은 모두 중요하지만 눈, 코, 이를 미를 가늠하는 지표로 삼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영혼의 호수라고 말한다. 우리네 미인의 눈동자는 호박꽃 잎에서 아침햇살을 맞아 반짝이는 이슬 같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호박꽃을 흔히 못생긴 여성에 비유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사실 황금색 호박꽃은 아름다움과 더불어 생명력이 넘치고 생산적인 크고 탐스러운 꽃이다. 그렇게 크고 탐스러운 호박꽃잎에 맺힌 아침이슬에 비친 햇살을 닮았다면 얼마나 맑고 밝고 청초하게 빛나는 눈동자일 것인가.

우리네 미인의 코는 크고 높고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네 미적 관점으로 나타낸 미인의 코는 새내기(새댁)가 시어머니 앞에서 처음 빚은 송편과 같다고 했다. 뾰족하지도 넓적하지도 않은 아담한 우리들의 코가 바로 미인의 전형적인 코일 것이다.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선생의 옷 빛깔이 미인의 가지런한 이의 빛깔이다. ⓒ 이명옥


이의 빛깔은 어떠했을까. 아름다운 이는 옹달샘에 가지런히 잠긴 차돌맹이에 비유했다. 희지도 누렇지도 않은 맑은 무명빛깔의 이의 색이 바로 미인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미인의 조건에 머리카락을 빼 놓을 수는 없다. 선생은 노랗고 붉게 물을 들이는 요즘의 세태 속에서 전형적인 미인의 조건으로 삼았던 머리카락의 빛깔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전형적인 미인의 머리카락 빛깔은 머루에 빛나는 검은 머리다. 머루 빛 검은 머리는 햇빛보다 더 빛나는 검은 빛을 말한다. 그외에도 막 익은 앵두빛깔 입술이라든지, 노을에 비친 볼이라든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이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보다 더 아름다운 미는 내면의 아름다움. 즉 사람의  됨됨이에서 아름다움의 전형을 찾은 것이 우리 민중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었다. 진정한 미인은 외적인 미의 조건보다 더 아름다운 불멸의 얼이 삶에 녹아져 그 얼을 삶에서 꽃피운 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진짜 예쁜 이들은 나네 . 도랑네.너울네라고 이야기하는 백기완 선생님 ⓒ 이명옥


선생은 랭이(민중)들이 으뜸으로 치는  미인의 전형으로 나네, 도랑네, 너울네를 예로 들어 주셨다.

'나네'는 언 땅을 제치고 일어서는 새싹을 의미한다. 언 땅을 치고 솟아나는 새싹을 본적이 있는가. 언 땅을 제치고  솟구쳐 올라 강인한 생명력을 키워낼 수 있는  생명의 전령, 이 땅의 싸울 어미들이야말로 이 땅 민중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미인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도랑네'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깜깜한 산골 화전민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말한다. 관솔불을 밝히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깜깜한 어두움을 몷아내던 화전민의 아낙 도랑네를 닮은 여성, 어둠을 몰아내는 관솔불을 닮은 여성이 민중들의 흠모를 받는 진정한 미인의 전형이 될 수 있었다.

'너울네'는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기링 없으면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떼물(홍수)이 져서 길이 없어지고 강을 건널 수 없을 때 너울네는 이쪽 동네 천년 묵은 느티나무에 밧줄을 묵고 그 밧줄을 잡고건너가 저 쪽 마을의 천년 묵은 은행나무에 묶어 길을 만들어 마을 사람을 건너게 한 여성이다.

거센 비바람과  거친 물살을 뚫고 건너가는 사이 저고리와 치마가 다 벗겨져 벌거숭이가 된 너울네는 마을길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산에서 산으로 길을 만들며 넘어가야 했다. 그래서 너울네는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개척자 정신을 지닌 여성을 의미한다.

이 땅의 랭이(민중)들이 손꼽는 미인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잠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아니라 '언 땅을 녹이며 생명을 낳고, 관솔불을 밝히 듯 따뜻한 품으로 생명을 가꾸고  길을 찾고 길을 만드는 여신과 전사의 면모를 두루 지닌 존재'였던 것이다.

선생은 또한 바비 인형을 닮은 기계적인 미인, 서구의 영화배우를 모방한 성형미인, 인간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관능미에 대한 예찬에 대한 경계의 말씀도 더불어 해주셨다.

모방미는 개성을 죽이고, 본질을 잃게 만들고 정서를 죽이는 일이다. 남을 그대로 따라하는 일에 개성, 본질, 정서가 담길 리가 없다. 얼굴이 무엇인가. 얼이 담긴 꼴(형상)을 말한다. 그런데 기계적으로 턱을 깎아내고 코를 높이고 쌍커풀을 만들고 광대뼈를 낮춰 표정을 잃게 만들고 기계적인 미인을 만들어 내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정서, 개성,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하며 더욱 나네, 도랑네, 너울네가 지닌 진정한 랭이(민중)의 아름다움의 미학적 가치를 높이 사야만 한다.

선생의 이야기는  자본이 벽으로 굳게 언 땅을 녹이고, 사람들의 절망한 가슴에 희망의 관솔불을 밝히며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크레인에 올랐던 이 시대의 나네, 도랑네, 너울네인 소금꽃 김진숙과 이땅의 수많은 또 다른 소금꽃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송가였다.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8강 노나메기를 들이댄다 ⓒ 이명옥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 8강과 9강은 선생이 온힘을 기울이는 '노나메기 운동'에 관한 것이다. 강의는 5월 29일 저녁 7시 30분 경향신문사 5층에서 열린다. 수강신청은 전자우편(busimi@hanmail.net)으로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서울의 소리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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