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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에 스파이더맨이...무슨 일이지?

3년 만에 '행복마을' 본보기된 전남 담양 무월마을

등록|2012.05.29 17:46 수정|2012.05.30 09:53

▲ 담양 무월마을 풍경. 마을길을 따라 경운기 한 대가 내려오고 있다. ⓒ 이돈삼


마을이 금산 아래 나지막하게 엎드려 있다. 마을의 역사도 800여 년을 웃돈다.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동서로 바름산 망월봉과 꾀꼬리산이, 남쪽으로는 유봉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짙푸름으로 한껏 달아오른 산야도 한 폭의 그림이다.

마을로 들어간다. 무월정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해신과 달신, 소망탑도 범접할 수 없는 풍미를 지니고 있다. 마을의 번성과 무탈을 기원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다는 솥다쟁이 벅수와 선돌, 디딜방아도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돌담도 운치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돌담을 따라 줄지어 선 한옥이 멋스럽다. 집 마당엔 정원들이 아담하다. 문패도 눈길을 끈다. 아기자기한 게 여간 매혹적이다. 걸음을 재촉하자 골몰샘이 보인다. 예전에 목을 축이던 샘물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한가한 돌담길을 굽이 돌아가니 공방 하나가 보인다. 이름하여 '허허 공방'이다. 공방 담장에 흙으로 빚어낸 농부의 얼굴이 정겹다. 토우다.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모습이 신선하다. 오진 모습이다.

쓰레기장이 될 뻔한 마을

▲ 무월마을의 한 공방에 걸린 토우. 스파이더맨을 연상케 한다. ⓒ 이돈삼


▲ 무월마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허허공방. 토우를 만들고 있는 송일근 씨의 공방이다. ⓒ 이돈삼


'대나무 고을' 전남 담양의 대덕면 금산리 무월마을 풍경이다. 동쪽 망월봉에 달이 차오르면 신선이 달을 어루만지는 듯한 절묘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라남도에서도 앞서는 행복마을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한 우리나라 대표 농촌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산골마을인 이곳에 내가 찾은 것은 지난 24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90여 가구가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산업화의 광풍으로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왁시글덕시글하던 마을은 조용해졌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았다.

30가구가 채 남지 않은 마을엔 풀이 우거지고 폐가만 늘어갔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채석장이 들어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부대 훈련장과 쓰레기처리장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불과 3년 전의 일이었다.

▲ 무월마을 돌담과 한옥. 최근 다듬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 이돈삼


▲ 무월마을 한옥과 마을길. 문패까지도 집집마다 특색있게 꾸며져 있다. ⓒ 이돈삼


우두커니 보고만 있다가는 마을이 사라질 판이었다. 젊은 사람을 중심으로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전라남도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행복마을사업'이 그것. 행복마을 추진을 신청했다. 지난 2009년의 일이다.

지원금에 자비를 보태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 주거환경 개선사업비로는 산책로를 만들고 돌담을 쌓았다. 그 길이가 2.5km나 된다. 옛 정겨움을 간직한 물레방앗간도 복원됐다. 뒷산 솔밭과 대밭 사이로 산책길도 냈다. 생태숲과 달빛전망대를 만들고 자연학습장, 문화관, 체험관도 지었다. 쉼터도 곳곳에 조성했다.

부족한 일손은 마을사람들이 울력을 통해서 해결했다. 기술이 있는 사람을 기술로, 장비를 보유한 주민은 장비로 거들었다. 마을길을 넓히는데 필요한 땅까지 선뜻 내놓은 주민도 있었다. 온 마을 주민이 내 일처럼 움직였다. 주민들은 "300년 동안 해야 할 일을 3년 만에 모두 끝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한적했던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 무월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소망탑. 한옥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멋스럽다. ⓒ 이돈삼


▲ 무월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옥과 돌담, 산책로도 대밭과 솔밭이 함께 어우러져 더 운치 있다. ⓒ 이돈삼


한옥이 한 채 두 채 늘어가면서 마을이 달라졌다. 15동에서는 민박손님을 받는다. 줄어만 가던 인구도 늘기 시작했다. 고향이 떠난 이들도 다시 돌아왔다. 그 소문을 듣고 외지인들도 찾아왔다. 행복마을 사업 이후 8가구 20여 명이 마을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땅값도 많이 올랐다. 마을주민들의 직접적인 소득과는 상관없지만 2배 이상 뛰었단다. 그럼에도 마을로 이사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 예전의 활기도 되찾았다. 인적이 드물던 마을이 행복마을의 본보기로 알려지면서 견학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자 마을에선 전통문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토우 만들기, 달떡 만들기, 마을길 걷기 등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옥민박과 함께 속칭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달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8개 나라 경찰서장들이 하룻밤 묵으면서 마을을 체험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마을에 감탄사를 토해냈다.

김승일(65) 무월행복마을 추진위원장은 "아직껏 발전되지 않고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게 행복마을 지정 계기가 되고 3년 만에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도 마을의 역사와 전통, 자연을 최대한 살려 살기좋은 마을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죽로차와 백목련차가 요즘 맛있는 무월마을의 전통찻집. 김승일 행복마을추진위원장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 이돈삼


▲ 김승일 무월행복마을 추진위원장. 17년 전에 이 마을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 이돈삼


▲ 무월마을 가는 길. 마을 입구가 깨끗하고 들꽃도 활짝 피어 제법 아름답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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