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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묘비에 '통일애국투사'...대법원, "무죄"

"민주주의 수준, 시민의 정치의식 고려할 때 해악 위험성 없어"

등록|2012.05.30 11:15 수정|2012.05.30 11:15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비전향장기수 묘역을 조성하면서 표지석과 비석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A(65)씨 등 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온 A씨와 B씨는 2005년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사찰의 제안으로 비전향장기수 6명의 묘역을 단장하면서 묘비 등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는 문구를 새겨 넣고 제막식을 거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한범수 부장판사)는 2007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는 남파간첩이나 빨치산으로 활동해온 망인들의 행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취지의 비문이 세워지는 장례식에 참석하고 망인들의 묘역을 단장하면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이라고 칭하는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일반 국민들의 감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생계난, 부적응 등의 문제를 겪는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은 인도적 차원에서 허용되는 것이고, 그들이 사망한 후 장례절차를 치르는 것 또는 그러한 인도적 활동의 일환 내지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로서 용인된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인들이 이 사건 묘역의 이름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 연화공원'이라고 짓고 그러한 내용의 표지석을 길가에서 지나다니는 일반인이 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두었다고 하더라도, 죽은 자를 추모하는 비석이나 표지석을 만들 때에는 죽은 자의 생각과 활동을 숭모하는 글을 적는 것이 자연스럽고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설명했다.

"비석 만들 때 죽은 자 숭모하는 것, 사회적으로 용인"

이어 "비록 길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표지석이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묘역이 종교시설인 사찰 경내에 설치돼 있어 단순히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이 아닌 직접 묘역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망인들의 가족이나 지인들과 절을 찾는 종교인들로 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더구나 망인들의 이념, 전술 및 선전, 선동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없이 단순히 묘역 표지석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으므로 그러한 내용의 표지석 때문에 망인들과 연고가 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 시민의 정치의식, 피고인들의 사회적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와 같은 행위만으로 피고인들이 망인들을 추모하는 이외에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하는 행위가 있었다거나, 위 행위로 인해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줄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검찰이 "묘역 표지석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이라고 새기고, 묘비들에 남파간첩, 빨치산을 '열사', '의사'로 호칭하며, 그들의 활동을 '통일애국활동'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원하는 방향의 통일조국을 위해 적극 활동한 것"이라며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8형사부(재판장 최성준 부장판사)는 2007년 12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던 피고인들이 남파간첩, 빨치산으로 활동해 온 망인들의 행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묘비가 세워지는 장례식 등에 참석하고, 망인들의 묘역을 단장하면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이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는 행위를 했더라도, 피고인들의 행위가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동조하는 것이라거나,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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