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쇼'가 아니라 '교과부 쇼'가 문제
[주장] 김연아 교생실습 논란 앞에서 생각해보는 우리 사회
▲ 교생실습 중인 김연아 선수 ⓒ 곽진성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學而時習(학이시습)'은 아주 유명한 말이다. 흔히 이 말은 '배우고, 배운 것을 복습하여 확실히 알게 되는 일' 정도의 뜻으로 해석된다. 그 탓에 이 말은,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들이 밤늦게까지 교실에 불을 켜놓고 아이들을 강제로 붙잡아 놓는 논리적 근거로 원용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習'은 '복습'이 아니라 '실천'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교실 안에서 말과 글로 배운 것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면 정말 즐겁다는 가르침이다. 효도하라, 우애를 가져라, 예의범절을 지켜라 등 교과서에서 공부한 이론을 머리로 아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넓은 광장에서 가슴으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기쁨이라는 해석이다.
복습도 실천도 아닌 교생실습의 무의미함
그렇다면 교생실습은 복습인가. 그것도 아니다. 교육학이나 교과지도론 관련의 이론을 되풀이하여 공부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 강의실을 떠나 초등이나 중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과정에 '실'자가 붙은 것도 그것을 반증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법관이나 검사가 대학 4학년 때에 법원 또는 검찰청에서 4주간 일한 후 졸업장을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을 졸업하려면 학부 마지막 학년 때 병의원에서 4주간 근무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 시보나 인턴 등의 실습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교사는 실습을 먼저 한 이후에 대학 졸업장을 받고 자격증도 취득한다. 김연아 논란은 여기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법대나 의대를 졸업해도 판검사나 의사가 되지 않는, 혹은 못 되는 사람은 실습을 거치지 않을 뿐더러, 자격증을 얻은 이후에는 임금을 받고 그 과정을 밟는다. 장차 어떤 직업을 가지든 무조건 실습을 거쳐야 학부 졸업장을 받게 되고, 그 과정도 무임금인 사범대 또는 교육대 학생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학 졸업장을 받기 위해 김연아는 교생실습을 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교생실습은 불필요하다. 교생이 실습기간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 학교의 교사는 4주간의 학습내용을 다시 가르친다. 또 교생실습은 교사의 3대 역할 중 하나인 학습지도만 일부 실습해볼 뿐 생활지도, 상담활동은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무의미하다. 판검사나 의사와 달리 실습기간이 무임금이라는 점도 문제이며, 장차 교사가 되지 않을 사람에게도 강제로 이수하게 하니 그 또한 여러모로 낭비에 불과하다.
교사가 되지 않을 사람에게는 교생실습이 근본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김연아의 교생실습은 결코 '쇼'가 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가 교사로 근무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졸업장을 받으려면 반드시 참여해야 했기에 어쩔 도리 없이 교생실습을 했을 뿐인 까닭이다.
연예신문에서나 '뉴스'가 될 만한 김연아 교생실습을 이른바 '정론지'라는 본격언론들이 취재에 나섬으로써 발생한 사단일 뿐이다. 김연아가 교생실습에 참여하지도 않고 졸업장을 받았다면 모르되 그가 결석하지 않고 실습에 임했다면 그게 어찌 정론지의 뉴스가 될 수 있겠는가.
▲ 교생 수업 사진. 아이들은 있는 힘껏 지루해하고 있다. ⓒ 차현아
김연아 '쇼' 논란과 '참'언론의 역할
모름지기 정론지라면 교생실습이 언제, 어떻게 실시되어야 옳은가, 그리고 지금 드러난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선방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루어야 한다. 교생실습 과정에 빠짐없이 참석한 김연아에게 '쇼'를 했다고 비난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는 행태 또한 품격을 갖춘 정론지의 면모가 못 된다.
김연아가 평소의 교육과정에 불성실하게 임했다면, 그리고 그것을 대학당국과 교과부가 눈감아 주었다면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연아 개인을 힐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말이다. 법대 입학 후 학교에는 나오지 않고 고시원에서 줄곧 살아도 대학이 장학금까지 주면서 고시 공부를 독려하고, 합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명예의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태가 일반화된 줄 모든 국민이 다 아는데, 어찌 김연아의 교생실습장만 뒤따라 다니는가. 스스로 연예신문이기를 자청한 것인가.
김연아를 중심에 놓고 일어난 '쇼' 논란은 끝이 났다. 명예훼손 여부를 다투는 법정이 열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질을 벗어난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본인에게 '쇼'를 할 생각이 있었을 리도 만무하겠지만, 교과부와 대학이 교생실습장으로 '강제구인'을 하는 데에는 아무리 세계적 스타일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떠밀려 나간 교생실습장으로 기자들이 찾아오고, 결과적으로 '배우'처럼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머잖아 졸업을 하게 되면 김연아에게 다시는 교생실습 따위가 찾아오지 않는다. 자연히 '쇼 논란'은 저절로 소멸된다. 하지만 앞으로도 교과부와 교수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쇼는 여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스타 '개인' 뉴스화보다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이 본질
대학은 교생실습을 가는 대학생 1인당 10만 원의 돈을 초중고에 지불한다. 10만 원의 헐값에 학생을 4주간 초중고에 떠넘기고, 출석도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어 졸업시키고, 고시 합격자나 취업자 수를 자랑하는 일에 골몰한 지 오래된 '대학 아닌 대학'들과 교수들을 질타해야 한다.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는 교생실습 제도 등 교육계의 부조리를 개선하는 일에 소홀하여 '교과부가 없어야 교육이 산다' 소리를 듣는, 말썽 많은 대학교육의 감독기관인 우리나라 교과부는 특히 엄정하게 감시받아야 한다. 교과부와 대학 종사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한 '쇼'를 막아야 한다.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데에는 무관심하고, 대중적 관심을 받는 '스타'라는 이유로 김연아와 같은 '개인'에게만 눈길을 주는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 이번의 김연아 '쇼' 논란을 계기로 교생실습을 비롯한 우리나라 교육의 많은 문제점들이 진지한 토론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이득 챙기기 또는 대중적 호기심 끌기가 목적인 잘못된 정치인들과 비교육적인 대학들, 그리고 3류언론인들에 의해 여론이 부당하게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교육을 걱정하는 이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사심 없는 토론의 장이 열려, 개선책이 마련되고 실행되어야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쇼'를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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