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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 없다 하자 닭 잡으러 간 어머니... 미안해요

[서평] 온세상 어머니들의 이야기 <김용택의 어머니>

등록|2012.06.01 17:05 수정|2012.06.01 17:05
"어매는 어치고 헐라고?"
"나는 걸어갈란다."
가슴이 꽉 매어왔다.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서 있었다.
"차 간다. 어서 가거라."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먼지 낀 유리창이 더 흐려 보였다. 앞의자 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이며 나는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리만 베던 아버지 모습이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아! 어머니. 나는 돈을 꼭 쥐었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를 또 걸어야 한다. (<김용택의 어머니> 중에서)

아마도 이 대목은 <김용택의 어머니>를 읽은 독자들 대부분이 가슴 먹먹하게 읽었을, 그리하여 오래도록 기억할 부분 아닐까 싶다.

▲ <김용택의 어머니> ⓒ 문학동네

기성회비를 내지 않은 아이들 명단이 교문 게시판에 나붙은 지 3일째, 오늘은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집으로 돌려 보내진다. 지난 일요일에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가져 오지 못한 김용택은 자갈길 14km를 걸어가야만 닿을 수 있는 아득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1km도 걷지 않았는데 땀이 흘러 교복이 맨살에 달라붙을 정도로 뜨거운 자갈길. 그 땡볕 속을 걸어가며 김용택은 주저앉고 싶고 그냥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렇게 작은 좌절들이 되풀이된다. 집에 가도 돈이 없을 것이 뻔한지라 더욱 힘든 길일 수밖에 없다.

때는 아마도 이쯤. 여기저기 보리 베는 모습이 보이고, 모내기를 준비한 논도 있다. 논두렁 여기저기 덤불을 이루며 핀 찔레꽃들이 6월의 햇살을 받아 유독 하얗다. 이런 풍경들을 스치며 집 가까이 갈수록 발길이 무거워지고 겁이 난다. '공휴일도 아닌데 왜 집에 오느냐'고 물을 동네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기성회비를 가지고 갈 수 없는 형편이라.

김용택은 집에 들르지 않고 부모님이 일하고 있을 보리밭으로 간다.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아들이 돌아온 이유를 들은 어머니는, 보리를 베던 낫을 놓고 곧장 집으로 가 닭장으로 간다. 그리하여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닭들을 잡아 망태에 넣고 읍내로 향한다.

그런데, 닭을 팔아 마련한 돈은 기성회비와 김용택이 학교까지 갈 수 있는 차비가 전부.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차비는 없었다. 점심마저 홀딱 굶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성회비와 차비를 쥐어주고 시오리 길을 떠난다. 첫 번째 장 7번째 '차비'에 있는 사연이다.

"내 가슴은 그냥 찢어졌단다"

"복숙아/니 학교 그만둔 것/징검다리를 건너다가도 밭을 매다가도/그냥 우두커니 서지고/호미 끝이 돌자갈에 걸려/손길이 떨리고/눈물이 퉁퉁 떨어져/콩잎을 다 적신다/이 에미가/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디/너사 을매나 가슴이 아프겠냐...

복숙아/논에 들고 밭에 들어 일헐 때/그냥 너그들 못 입히고 못 멕이고/언제 너그들 가윗돈 한번 준적이 있었냐/그렇게 가르친 걸 생각하면/꼭 죽겄다...

너그들 시무룩허게/쌀자루 메고 김치단지 들고 가는 꼴을/밭머리 들다 바라보면/너그 가슴이야 오죽들 혔겄냐만/내 가슴은 그냥 찢어졌단다/복숙아/이 몸뚱아리가 닳아지고 찢어질 것 같은 것이었으면/진즉 다 닳아지고 찢어져버렸을 것이다/그러면서도/너그들 방학 때 명절 때/끄릿끄릿 줄줄이/집에 오는 것이/곡석들 잎 사이로 보이면/내 자식들, 내 자식들 하며/손길이 빨라지고/내 삭신이래도/떼어주고 싶었니라...

산중에서 못난 니 에미가" (<김용택의 어머니> 중에서)

이 부분을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가난한 농촌에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객지로 나가 돈을 벌고 있는 작은 딸이 농사일이 바쁜 계절이 되자 부모님과 보고 자란 고향의 농사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다.

"엄마 보고 싶어요. 바쁜 철이 돼가니 겨울에 그렇게나마 고와진 손발 또 거칠어지겠군요"로 시작되는 편지를. "엄마 딸, 곧 직장 갖게 될 것 같아요"라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이에 시골 어머니는 공부는커녕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객지로 보내야만 했던 그 죄스러움과 한스러움을 편지에 풀어 놓고 있다. 아마도 김용택 시인처럼 농촌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이 편지 역시 결코 무덤덤하게 넘기지 못하리라.

피할 수 없는 가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료가 떨어지면 나는 군청으로 농협으로 달려갔다. 융자를 받아 외상으로 사료를 사왔다. 화물차가 시골 차부에 사료를 퍼 놓으면 나는 40분 거리의 우리 동네까지 사료를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서른 가마니가 넘는 사료를 지게로 져 나르자면 하루가 더 걸렸다. 추운 겨울바람 부는 들길, 지게에 짊어진 사료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사료의 무게에 눌려 땅으로 꺼질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집은 멀어지고 사료는 무거워지면서 나는 정말 사료무게만큼이나 외로웠다. 그때 그 외로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그 어떤 힘든 일도 견딜 것 같다. 외로움의 무게는 사료의 무게보다 더 무겁고 컸으니까. 등에서는 땀이 나고 고무신 속 발에도 땀이 났다. 들 가운데 논두렁에 지게를 받쳐놓고 지게 밑에 앉아 쉴 때 귀싸대기를 때리던 추위를 견디던 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게 밑에 앉아 어깨를 들먹이던 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김용택의 어머니> 중에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대목은 '내 나이 스무 살 무렵의 어느 봄날'이다.

가난한 농촌에 태어나 어떤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은커녕, 대학 자체를 꿈꾸지 못하는 삶. 그러나 소중한 인생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번듯하게 꾸려나가야만 하기에 막연하게 불안했던 삶. 그렇게 막연한 대상을 향해 원망스럽고, 그래서 더 외로운 그런 외로운 방황과 고뇌를 묵묵하게 풀어놓은 글이다. 젊은 날 한 때의 방황이 겹쳐 떠오른 글이다.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젊은 날 한 때 누구나 겪었을 외로움만 같다.

시인이 기성회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다니던 읍내(순창)의 학교는 농림고등학교. 농사도 공부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가난한 형편 때문에 일한(농사) 대가를 장학금 형태로 지급하는 영농학생부에 가입한지라 김용택 시인은 공부보다 농사일을 더 많이 하다가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은 했지만 험하고 거대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어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아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어렵게 영농자금을 대출받아 친구들이 모두 떠난 고향마을 섬진강가에서 오리를 키웠다.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까지 총동원됐다. 흩어진 오리를 찾고자 얼어버린 강가를 해가 진후까지 가족들이 헤매면서 말이다. 그렇건만 오리에 품은 희망은 절망이 되고, 시인은 돈 한 푼 없이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떠났다.

책장 넘기다 보니 어머니가 떠올라

▲ 김용택의 어머니 양글이댁 ⓒ 황헌만


시인은 그간 시와 산문으로 들려줬던 자신의 어머니 양글이댁의 삶, 그 이야기들을 사계절로 나눠 들려준다. 이야기들은 뭉클하다. 김용택의 어머니는 지난 날 가난한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억척스럽게 땅을 일궈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 삶을 바친다. 그렇게 그는 팔순의 노모가 됐다. 그녀에게 이제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자식들 덜 고생시키며 죽는 것이란다.

어찌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이야기에 불과하랴. 읽노라니 어떤 글은 내 스무 살의 방황이고 어떤 글은 내 부모님의 이야기였다. 형편과 모습만 다를 뿐이다. 한 꼭지 한 꼭지 읽는 동안 일단 학교로 보낸 후 기성회비를 마련해 온 아버지의 모습이, 하루 종일 품앗이를 한 고단한 몸으로 늦은 밤까지 산밭을 일구느라 흙투성이가 돼 돌아오시곤 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학용품값 50원을 마련해 이 집 저 집으로 바삐 뛰던 어느 날 아침 내 어머니 모습이, 농사일 중에 틈틈이 한복 바느질 하던 어머니 모습이, 꽃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보이시곤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살짝 앞을 가리곤 했다. 이렇게 만난 <김용택의 어머니>다.

그립지 않은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독 5월에는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올 어버이날에는 꼭 내려가 부모님을 뵈어야지'라며 날짜까지 잡았다가 어긋난 터라, <김용택의 어머니>를 읽으며 까맣게 잊고 있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그런 5월이 다 지났다. 결국 찾아뵙지도 못하고 말이다.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들에 나가시기 전에.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살면서 속이 썩고, 하늘을 찌르는 분노가 어머니에겐들 왜 없었을까.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일이 왜 없었을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어디다가 화풀이하고 무엇을 잡고 사정하며 어떻게 그 순간을 이겨냈을까.

어느 날 어머니는 들에 가신 뒤 해 저물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달빛 아래 어디선가 호미 소리가 들렸다. 밭 끝 저쪽에 어머니가 부지런히 밭을 매고 있었다. 몸짓이 격렬해 보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화를 땅에다가 풀었을 것이다. 땅한테 사정하고 땅을 파 뒤집으며 생각을 뒤집어엎었을 것이다. 아! 어머니.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김용택의 어머니>에서)
덧붙이는 글 <김용택의 어머니>(김용택 씀 | 황헌만 사진 | 문학동네 | 2012.05 |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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