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남편의 일기를 엿보곤,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오늘은 지친 남편을 꼭 안아주렵니다...우리나라 가장들, 위로받고 있나요?

등록|2012.05.31 14:23 수정|2012.05.31 14:23
청소를 하던중 우연치 않게 책장에 있는 남편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애 때나 볼 수 있었던 남편의 글씨체. "이런 것도 써?"하면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워낙 말수가 없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펼쳐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살짝만 보자' 하는 생각으로 가장 최근에 적은 일기를 보았습니다. 저는 남편의 일기를 보고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그들처럼
술에 같이 취해 속내
털어놓으며 함께하고 싶다.

술잔을 옆으로 치우면서
받는 따가운 눈초리와
비웃음 가운데 있는 것이
지긋지긋 할 때도 있다.

황금같은 주말 휴일
일주일동안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나와 다른 이들과 같이,
다른 연인들과 같이,
공원에서 놀며 여행다니며 쉬고 싶다.

화내면 성내고 싶고
서운한 거 있으면 삐지고 싶고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안가려서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싶고
상사에게 굽신거리면서 진급도
하고도 싶다.

그러나  내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몸소 감수하도록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고쳐잡게 하신
내 아버지.
그런 아버지로 인해 나는 내 마음을 바로잡으려 한다.

저는 이 일기내용을 보고 주말이지만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울먹거리는 제 목소리에 놀랬는지, 왜 그러냐며 무슨 일 있냐고 묻습니다. 전 그냥 "보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하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시아버님 이야기를 종종 했더랍니다. 아버님은 나주에서 한참 들어가야 있는 깊은 산골에 사셨습니다. 다섯형제를 홀어머니께서 키우셨기에 해가 지날수록 생활은 어려워졌고 나중엔 제대로 끼니를 챙기기도 힘드셨다고 합니다.

굶주름에 지친 아버님은 8살 어린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잠만 잘 수 있다면 아무 일이나 했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일거리를 찾아 다니기도 하셨답니다.

그때 나이 11살이셨던 아버님. 우유배달이니 짜장면배달이니. 안 해보신 게 없으셨고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으로 동생들 학비 대느라 제대로 공부도 못하시고 좋은 옷 못 입으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을 생각하며 지금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남편. 아버님도 지금의 내 옆에 있는 남편도 많은 걸 포기하셨을 테죠. 오늘은 지친 남편을 꼭 안아주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장은 어떤 모습으로 위로받고 있나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