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치 않은 기회에 시작한 대학교 구내식당 아르바이트 생활은 만만치 않은 경험의 연속이었다. 사진은 학교급식 시설 안전점검 모습. ⓒ 연합뉴스
"저, 알바 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3월 27일.
첫 출근이었다. 나는 학교식당에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2시간씩 일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은 최근에 자취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왕복 4시간에 이르는 통학에서 벗어나 월 45만 원짜리 자취방에서 산다. 월세가 비싼 만큼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여러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학교 구내식당까지 오게 됐다. 무엇보다 학교식당에서 일하면 삼시세끼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자취생에게 가장 큰 이점이었다. 배식은 시간당 4500원이고, 설거지는 시간당 6000원이다. 월급은 15만 원 정도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이모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졸지에 열 명이 넘는 이모가 생긴 나는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런 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이 너무 고되었기 때문이다.
반찬을 나눠주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두 손으로 동시에 다른 반찬을 식판에 놓아야 했다. 그것도 깔끔하게, 딱 적정량의 반찬만을! 내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식당 이모가 다른 일을 시켰다. 잔뜩 움츠러든 채 정신없이 심부름만 했다. 무거운 반찬통을 나르고, 계속 서 있느라 다리는 퉁퉁 부었다. 2시간이 이렇게 길던가.
4월 3일.
일 주일 만에 배식 실력이 꽤 늘어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던 차에 식당 이모들이 서로 임금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
"그래서 시간 계산이 어떻게 된다는 거야?"
학교는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매월 10일 월급을 준다. 시간 얘길 하는 걸 보니 일 주일 뒤면 받게 될 임금을 계산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데, 많이 받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식당 이모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5500원이지. 한 달에 200시간이니까...."
5500원. 내가 받는 시급과 1000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월 노동시간 200시간. 주 5일씩 4주로 계산할 때, 하루에 10시간 일한다. 한 달 임금은 110만 원. 맙소사, 10시간 내내 쉬지 않고 매 끼 몇 백 명분의 밥과 반찬을 짓고 설거지를 해야 월 11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110만 원. 그것은 내가 다니는 서울시립대의 한 학기 등록금이고, 주요 사립대의 등록금을 받으려면 한 푼도 안 쓰고 서너 달을 꼬박 일해야 한다. 100만 원 벌기가 이렇게 힘든데, 등록금을 생각하니 100만 원이 참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밥도, 반찬도, 식당 이모들도 다 돈으로 보였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사람 아닌 기계가 되길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김순자 울산과학대 지부장 ⓒ 김혜란
4월 8일.
우연히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 김순자씨 소개 영상을 봤다.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항상 시선 밖에 놓인 청소노동자, 식당노동자, 경비노동자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여운이 깊은 영상이었다.
나는 어느 빌딩에서 계단 청소를 하던 노동자가 멀리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멈춰서더니 고개도 못 든 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되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청소하는 기계, 밥하는 기계, 경비서는 기계. 인사까지 잘 하면 더 좋은, 그런 기계를 말이다.
4월 26일.
중간고사가 끝났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책을 빌리기 위해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도서관에서 본 청소노동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서관 귀퉁이에 서서 주무시고 있더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도서관에 쉴 만한 휴게실도 없어?" 친구 얘기를 듣고 나서 도서관 층별 안내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청소노동자를 위한 휴게실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를 마주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청소노동자들은 변변한 휴게실도 없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눈에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도 청소노동자는 어딘가에 서서 쪽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4월 30일.
점심을 먹으러 학교식당에 갔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알바 증명서'만 보여주면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아침을 못 먹은 터라 푸짐하고 반찬수가 많은 2800원짜리 코너로 갔다. 증명서를 보여주었는데 이모는 여기서 밥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2000원짜리 코너로 가든지 1500원어치 라면을 파는 분식 코너로 가라는 것이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애원했지만 이모는 단호했다.
결국 2800원 식권을 끊어서 밥을 먹었다. 식당 이모가 매정하다고 푸념하며 밥을 먹다가 갑자기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생각났다. 월 75만 원에 식비 300원을 받고 일해야 했던 그들. 2000원짜리 급식이라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만 같았다. 우리 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끼니를 어떻게 때우는지도 궁금해졌다. 2800원 코너에선 먹을 수 없다고 말한 그 식당 이모도 결국 남들 밥 먹을 시간에 일해야 하는 노동자다. 제대로 못 먹고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돈이 없으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5월 3일.
된장국을 푸고 돈가스 소스를 뿌리는 손놀림이 확실히 몸에 익었다. 갑자기 날이 더워져서 식당 내부는 찜통이었는데 이모 한 분이 시원한 콜라 한 잔을 건넸다. 이제 어엿한 식당 일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5월 7일.
사회학 수업에서 비정규직에 대해 배웠다. 교수님은 정규직의 요건에서 하나만 빠져도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그렇게 따져 보니 식당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고,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도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은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지난주 하루 빠져서 혹여나 잘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나도 비정규직이고 용돈벌이, 등록금벌이, 월세벌이를 하겠다고 알바에 뛰어든 친구들도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오늘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 학생 식당의 배식 모습.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 연합뉴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이제 대부분의 식당 노동자들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 돈가스 튀김 냄새를 폴폴 풍기며 허겁지겁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됐다. 물론 여전히 식당에 사람이 많이 몰려오면 힘들다. '급식 맛이 없었으면….' 할 때도 있다.
20년 가까이 나는 누군가의 자녀, 학생으로의 역할만 했지 노동자가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그 직장은 필시 정규직이다)을 얻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실업률은 3~4% 사이를 오갔고, 청년 실업률은 8% 내외에서 줄어들 기미가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의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인 34.1%, 3명 중 1명은 반드시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비정규직을 일상의 중심으로 다루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겠지. 나만 아니면 돼'라고 주문을 외우며 우리는 스펙을 쌓아 간다. 우리들의 외면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들을 더 불안한 사회로 내모는 부정의에 대해 눈감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노동자이고, 학생들 또한 예비 노동자다. (예비)노동자로서 당연히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지하고 연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이다. 오늘도 식당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며 국을 푸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 속에 있다. 나도 비정규직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정지혜 씨는 현재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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