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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

등록|2012.06.04 13:04 수정|2012.12.18 22:22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국가적 자원으로 관리하기 위해 2011년 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국립공원 경관 자원 100선'을 발표했다. 그때 전국 20개 국립공원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국립공원 제1경'으로 선정된 곳이 설악산의 공룡능선이다.

설악산의 대표 능선인 공룡능선은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길게 이어진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다. 산행하는 내내 능선의 좌우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장거리인 공룡능선 산행을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

815투어에서 공룡능선을 다녀왔다. 출발지인 몽벨서청주점으로 가기 위해 5월 26일 밤 9시경 집을 나섰다. 어떤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버스에 오르니 1150원에 시내의 야경을 두루 구경시켜주며 눈을 즐겁게 한다.

밤 10시에 청주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설악산을 행해 밤길을 달린다. 늦은 시간이지만 3일 연휴기간이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느리다. 그래도 문막, 설악휴게소를 거쳐 2시 30분경 설악동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 새벽에 설악동탐방지원센터와 신흥사의 일주문을 지나고 ⓒ 변종만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고 일행들이 내는 발소리만 들려온다. 랜턴의 불빛에 의지하며 앞사람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간다. 신흥사의 일주문, 신흥교, 와선대계곡을 지나는데 밤새도록 그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냈을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반긴다.

공룡능선 1

ⓒ 변종만


공룡능선 2

ⓒ 변종만


공룡능선 3

ⓒ 변종만


비선대계곡의 다리를 건너 금강굴 방향으로 직진하면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금강굴입구 못미처에서 엉덩이를 걸친 채 물을 마시며 흐르는 땀을 식혔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능률이 오르듯 어둠 때문에 막힌 시야가 오히려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누군가 감탄사로 일출을 알린다. 5시 20분경 붉은 태양이 설악산의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산위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그 자체가 감동이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설악산 줄기들이 갑자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햇살이 보이는 모습들을 더 황홀하게 만든다. 금강문 주변의 봉우리들이 실루엣처럼 보인다. 이곳저곳 멋진 풍경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높이 솟아오른 바위 사이를 통과한 후 다리를 건너면 해발 1320m의 마등령정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의 좁은 공간에서 일행들과 아침을 먹었다.  

마등령정상과 가까운 거리에 우리가 지나온 비선대 3.5㎞, 오세암 1.4㎞, 희운각대피소 5.1㎞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국립공원 제1경' 공룡능선은 마등령부터 시작된다. 이곳에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을 끼고 들쭉날쭉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절경을 만들어 놓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거칠어진 숨소리가 '하아악~' 소리를 낼만큼 험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땀을 흘린다. 며칠 동안 조심하고 왔지만 수술한 무릎이 아파 다리가 무겁다. 누가 시키면 이렇게 생고생을 하며 산에 오르겠느냐는 농담도 건넨다.

몇 번을 더 오르내려야 하는지를 계산하면 더 힘이 든다. 그냥 마음 편히 걸으면 저절로 힘이 난다. 나한봉(높이 1298m), 1275봉, 신선대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몸이 고달프지만 눈을 호강시키는 풍경들이 피로를 풀어준다.

신선대 못미처의 널찍한 바위에 서니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높이 1708m)을 비롯한 중청봉, 소청봉, 귀때기청봉과 공룡능선을 걸으며 바라봤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남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고가 났는지 헬리콥터도 부지런히 오간다. 공룡능선을 60회 이상 산행한 815투어 신광복 사장 덕분에 점심을 먹고 신선대 뒤편의 암벽을 오르내렸다. 바위 아래편에 펼쳐진 설악의 멋진 풍경이 마음을 빼앗는다.

천불동계곡

ⓒ 변종만


▲ 설악산횡단도로개통기념비 ⓒ 변종만


몸은 천근만근인데 아직 갈 길이 멀다. 희운각대피소와 가까운 신선대 아래 삼거리에서 천불동계곡 방향으로 8.3㎞를 가야 출발지인 소공원이다. 하지만 천불동계곡은 천당폭포, 양폭폭포, 오련폭포, 귀면암, 이호담, 문수담 등 볼거리들이 지천이다. "쏴아~ 아" 가만히 들어보니 함께 살다보면 닮는 부부처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폭포의 물소리가 닮았다.

물가에서 잠시 여유를 누리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을 뿌린다. 우비를 입느라 부산을 떨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방긋 웃는다. 자연을 어떻게 거역하겠는가? 날씨와 주변 환경에 스트레스 받으면 여행이 재미없다. 공룡능선을 감쌌던 구름을 여우비가 걷어내니 천불동계곡의 풍경이 더 멋지다.

다리를 건너면 미륵봉, 형제봉, 선녀봉이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룬 비선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둠속에 그냥 지나쳤던 비선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바로 옆 휴게소에서 시원한 맥주로 더위를 식혔다. 이곳에 1968년에 세운 설악산횡단도로개통기념비가 서있다.

▲ 군량장 표석 ⓒ 변종만


▲ 소공원휴게소 주변 풍경 ⓒ 변종만


비선대에서 소공원까지에도 와선대계곡, 신흥사 등 볼거리가 많고 길거리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군량미를 저장해 두었던 터를 알리는 군량장 표석을 만난다. 소공원에서 설악산의 멋진 풍경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소공원을 출발해 비선대, 마등령과 신선대를 지나는 공룡능선, 천불동계곡을 거쳐 출발지에 도착하는 산행이 어디 그리 만만하겠는가. 몇 명은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발걸음이 무거우면 모든 게 다 귀찮은데 이날 산위에 갑자기 내린 우박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 1㎞를 헤매기도 했다니….

휴대폰이 필수품인 세상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립공원지역에서 휴대폰이 무용지물이었다. 책임자들은 뒤에 쳐진 사람들의 사정을 알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국립공원지역에서 휴대폰 불통으로 급박한 상황을 알릴 수 없다면 누구 책임인가. 객지에서 몸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사무적으로 대하는 설악산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의 무사안일도 국립공원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데 한몫했다.

몇 시간에 산행을 마쳤느냐가 뭐 그리 중요할까. 산행을 하다보면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거나 기록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 얘기지만 무릎을 다치기 전에는 늘 앞에서 걷거나 뛰었다. 그때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녔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좌우는 물론 뒤를 돌아보며 자연이 만든 풍경을 만끽하고,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늘 일행들보다 뒤늦다. 몸은 피곤해도 산행이나 목적지를 오가며 발견한 행복이 더 크면 된다. 주문진에 들려 좋아하는 회도 먹고 소주도 주고받으며 공룡능선을 넘으며 쌓인 피로를 풀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집에 들어가며 무박 3일의 공룡능선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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