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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이어온 미용봉사... 내 인생의 낙"

[인터뷰] 미용봉사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김경아 원장

등록|2012.06.02 16:34 수정|2012.06.02 16:34

'사랑의 가위손' 김경아 원장30년째 지역 양로원을 돌며 미용봉사를 하는 김경아 원장이 동네 노인의 머리를 다듬어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신재윤


"저보고 '예쁘게 해주는 선생님'이래요."

이웃끼리 얼굴도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양로원을 돌며 미용봉사를 해온 이가 있다.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ㄱ헤어모드' 원장 김경아(金景娥·55)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일 오후, 사랑을 나눠주느라 바쁜 그녀를 미용실에서 만나 사랑의 미용봉사 이야기를 나눠봤다.

"처음엔 먼저 인사를 건네도 외면하는 양로원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속해서 지저분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드렸더니 지금은 저를 '예쁘게 해주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김 원장은 현재 강원도 춘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무료로 요양원 등의 노인들을 상대로 미용봉사를 다닌다. 6년째 '원광효도의 집'과 '예다온' 요양원 등을 다니며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미용봉사를 하는 김 원장은 "미용봉사를 시작한 지 햇수로 30년이 넘었어요. 반평생 동안 어르신들에게 사랑을 실천한 거죠"라고 말했다.

"봉사가 없을 때는 미용실을 찾은 독거노인의 머리를 무료로 다듬어 준다"는 그녀는 인터뷰 중간에 노인이 들어오자 먼저 달려나가 반갑게 인사했다. "제가 바빠서 그러는데 미용하면서 인터뷰해도 되나요?"라고 말한 그녀는 이내 미용 가위를 들고 분주히 움직인다.

손님을 보낸 뒤 김 원장은 "봉사를 가면 주로 커트와 파마를 해 드려요. '원광효도의 집'은 혼자 30명의 머리를 다듬다보니 식사할 틈도 없이 움직여야 겨우 다 할 수 있어요"라며 굳은살이 박인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가는 양로원은 대부분 외지에 자리 잡고 있어 다른 봉사자들의 방문이 많지 않다. 양로원에서 저를 부르면 아무리 멀어도 가게 문을 닫고 출발한다는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양로원을 찾는다.

그녀는 "제가 가면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복도 가득 줄지어 있어요. 오랜만에 찾은 요양원에선 한 할머니가 맨발로 나와 반겨주셔서 놀란 적도 있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보니 노인들은 외로움을 많이 타 김 원장은 노인들의 말동무가 돼 드리기도 한다. "머리 다듬으랴 어르신 말씀 들어 드리랴 입도 바쁘고, 손도 바빠 정신없어요. 그렇게 미용하다 보면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있죠"라고 말한 그녀는 머리 모양뿐만 아니라 외로운 마음도 만져주는 '사랑의 가위손'이다.

김 원장은 같이해온 봉사자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점점 체력이 약해지면서 미용봉사를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단다. 그녀는 "미용실 운영과 봉사를 혼자 하다 보니 힘든 점이 많아요. 한 번 갔다 오면 사흘 동안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덥수룩한 머리를 다듬지 못해 고생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져 다시 양로원으로 향한다"고 덧붙였다.

"미용실에 자주 오시던 분이 몇 년 전부터 오시지 않아 걱정했는데 양로원에서 만났어요. 그분이 제 목소리를 듣자마자 끌어안고 우시는 거에요. 알고 보니 당뇨병에 걸려 시력을 잃었지만, 목소리를 기억하시고 무척 반가운 나머지 우셨던 거예요. 그후부터, 봉사를 가면 항상 제 손을 꼭 잡으시고 동네소식을 물어보세요. 이런 분들이 저에게 힘을 주시는 거죠. 게다가 양로원 원장님도 친가족처럼 대해주셔서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어요."

문득 동기가 궁금해진 기자의 질문에 김 원장은 "20살 무렵에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용실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실장님이 제게 무료로 미용기술도 가르쳐 주시고, 춘천시 보건소를 통해 미용봉사도 데리고 가셨어요"라며 지난 날을 떠올렸다. 이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것 하나 없다고 생각했지만, 미용기술로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며 봉사 덕분에 바뀐 자신의 삶을 설명했다. 

이런 사연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가족들은 큰 후원자라고 한다. 큰아들 신영규(30)씨는 대학에서 재활의학과 전공을 마치고 그녀를 따라 양로원을 방문해 노인들의 재활훈련을 돕고 있다. 작은아들도 같이 방문해 김 원장의 미용보조를 자처한다. "두 아들은 물론 남편도 많이 도와줘요. 제가 봉사를 안 가는 날이면 '오늘은 봉사 안가?' '갈 때 된 거 아니냐?'고 부추기고, 먼 거리에 있는 양로원도 직접 태워다주지요"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소망을 묻자 김 원장은 "시간을 할애해서 더 많은 양로원을 다니고 싶다"며 "힘에 부치는 나이가 돼도 체력이 도와주는 한 끝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말한 뒤 다시 미용가위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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