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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내라고 떠드는 언론, 어찌해야 하나

[주장] 폭발적인 가계 빚, 기자들 탓도 크다

등록|2012.06.07 14:50 수정|2012.06.07 14:50
불타는 증시… "빚내서라도 올라탈래"  조선일보, 2011-05-02
"부자들도 빚 내서 주식하기 시작했어요" 매일경제, 2010-12-26
저축 등 금융자산이 빚의 2배… 대출 연체율 0.6% 동아일보 2008-10-10
"빚 잘굴리는 당신 富者되겠네요"                        한국경제 2006-11-05 18:55
[새내기 부자되기] 富는 '속도의 함수'‥ 레버리지를 활용하라  한국경제 2005-11-09

2000년대 초부터 언론은 빚을 달리 생각해야 한다며 부자가 되기 위해 빚이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연일 보도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좀더 자극적인 소재로 행동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빚이 있지만 그보다 금융자산이 두 배 더 많다는 이야기와 빚 잘 굴려 부자가 되었다는 등, 부자가 되기 위해서 빚을 이용해 빨리 머니 게임에 올라타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2007년까지 베스트 목록을 채웠던 재테크 서적과 궁합이 맞았다. 빚을 투자의 중요한 비법으로 소개하면서 일명 '레버리지 투자'로 빚을 내지 않을 때보다 더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까지 강조했다.

50% 수익?... 50% 손실 볼 경우는 생각 안 하나

"가령 100원을 주식에 투자해 50% 수익을 내면 50원을 얻지만, 40원을 더 차입해 140원을 투자하면 70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적으로는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투자의 전제가 오를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상승만을 고려해 수익을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예측하는 것은 수익증권을 판매하는 판매처에서도 불완전 판매로 규정해야 한다. 투자자에게 합리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함을 상실한 채 흥분하면서 즉흥적인 투자 행동을 유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기사 본문을 좀 더 현실적으로 재구성해 보자.

"가령 100원을 주식에 투자해 50% 수익을 내면 50원을 얻지만"이란 전제에 빠진 냉험한 현실을 그려본다면 이렇게 된다.

"100원을 투자해 50%의 손실이 발생하면 50원을 까먹는다."

그 다음은 바로 레버리지의 현실이다.

"40원을 더 차입해 140원을 투자하면 70원을 얻을 수 있다"와 더불어 "40원을 더 차입해 140원을 투자하면 70원을 까먹을 것이고 투자 원금에서 무려 30원 손실을 빼고도 40원에 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혹은 40원의 이자비용을 없애려면 투자 원금에서 30원만 남기고 빚을 청산해야 한다"가 된다.

과도한 투자를 유혹하는 쪽에서 말하지 않은 진실, 레버리지가 달콤한 만큼 역레버리지는 더 쓰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100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비유함으로써 70원쯤이야 할 수도 있겠다. 좀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1억 원의 투자였다면 7000만 원을 까먹었을 것이란 말이다.

거기에 더 나아가 레버리지 투자의 냉험한 결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채권자들은 투자 실적이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완벽하게 다른, 거의 다중 인격의 범죄자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상승할 때는 계속 돈을 빌려주겠다고 과도하게 친절을 베푼다. 그러나 투자 실적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하게 태도를 바꾼다.

40원을 차입해 140원을 투자했는데 손실률이 70%까지 확대되면 돈을 빌려준 금융사는 투자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팔아치운다. 이것을 반대 매매라고 한다. 자신이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해 하락장에서는 금융사들이 최대한 채권 전액을 돌려 받으려 서둘러 투자 자산을 팔아치우는데, 서두른다는 의미는 때로 매도가 어려워 질 것을 우려해 헐값에 급매 처분해 버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당장 서둘러 처분하지 않으면 부동산 하락 추세에 발목이 잡혀 경매 처분도 불가능해 채권 회수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위험에 금융사는 민감해진다. 투자자에게 빚을 내서라도 투자해야 더 쉽게 투자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잠시 접어 두었던 위험에 대한 판단을 채권 회수에 직면해서 냉정하게 꺼내든다.

채권자이기도 하지만 고객이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주거 안정을 취할 방법을 모색하거나 잠시 어려움에 대해 이자 납입을 일정 기간 정도 유예해 주거나 하는 등의 최소한의 친절은 기대할 수 없다. 금융사는 그저 계약서에 나와 있는 공식대로 채권 회수에 나설 권리만 잘 챙기면 된다고 여긴다.

이런 식의 반대매매는 채권회수를 위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채권자가 채무자의 자산을 서둘러 매각하는 바람에 시장가격을 급격하게 하락 반전시킨다. 따라서 반대 매매는 주식시장에서도 하락장에서 더 큰 하락세를 몰고 오고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동산 가격의 붕괴를 만들어 낸다. 레버리지 투자란 결국 상승장에서는 남의 돈으로 돈을 버는 환상적인 이야기지만 하락장에서는 내 자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채권자에게 빼앗기는 비극을 경험케 하고 극단적으로는 시장 전체를 무너뜨린다.

빚을 예찬하는 기사들에서 이런 검은 힘의 보이지 않는 파괴력에 대한 신중한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조차 흥분해 투자가 지닌 두 얼굴의 한 쪽 얼굴만 화려하게 화장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사채까지 쓰라는 신문... 누구 좋으라고? 

[사설] 획일적 대출규제 능사 아니다                       국민일보 2007-01-02 18:49
[취재여록] 희망 잃는 월급쟁이                             한국경제 2006-03-31
월급쟁이는 강남 못간다?                                  한국일보 2006-03-30 18:57
봉급쟁이 '강남가는 길' 막나                                문화일보 2006-03-31
[명동풍향계]"3·30소나기, 명동서 피하자"                  머니투데이 2006-06-12
"3.30대책 반기는 명동 사채시장"                         머니투데이 2006-04-01
[신용사회 근간 흔드는 빚 안갚는 사회]채무불감증 빚 갚는 사람만 바보?  헤럴드 경제2006-12-04

흥분으로 선동에 가까운 기사를 쓰는 것도 모자라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우려한 정부 규제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기도 한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나라 언론은 중립을 전제로 한 정보 유통, 즉 저널리즘의 정신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정부 규제에 거침없이 내는 목소리는 사실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 시장의 2차 폭등기였던 2006년부터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설마 더 오르겠어라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집을 매입하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정부에 배신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8.31 대책, 종합부동산세금 등 여러 금융규제와 세제를 통한 규제를 내놓았다.

언론은 정부의 이러한 제동에 시장 원리에 반한다는 비난을 쏟아냈다(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시장원리에 반한다고 비난한 그 총부채상환비율, 즉 DTI 덕분에 위기를 비껴가고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마치 정부가 계층 이동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구를 뭉개버린 듯이 화를 낸다. 총부채 상환비율이란 빚을 일으킬 때 매월 갚아나가는 원리금이 소득의 40%를 넘지 않는 선에서 대출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소득 대비 과도한 빚에 대해 규제하는 제도로서 사실상의 보호제도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언론들은 정부가 이 제도를 발표했을 당시 거의 분노에 차서 비난을 쏟아냈다. 그들의 비난 기사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월급쟁이가 빚을 과도하게 내서 투자를 하면 강남의 부자대열에 낄 수 있을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혹은 개인이 돈을 빌려 투자를 하겠다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마치 사회주의와 같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반시장적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당시는 부동산 시장 폭등기로, 특히 강남에 대해서는 '강남 불패'라는 믿음이 확산될 정도로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거의 비이성으로 치달을 때였다. 따라서 언론들의 이러한 기사는 꽤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DTI를 반대하는 기사들은 규제를 반대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부동산 업계와 금융권의 잔칫상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샛길까지 안내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현재 사채업자들이 받은 아파트담보대출 이자는 월 2.5~3%. 여기에 선수수료로 5~10%를 더 받는다. 대출금액이 클수록 수수료율은 높아진다.

예컨대 아파트 구입자금 1억원을 3개월 만기로 빌릴 경우 월이자와 수수료를 떼면 800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그런데도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은 고금리 부담을 상쇄할 정도로 아파트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가등기에 필요한 서류만 갖추면 이틀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인책이다.

- 명동 사채시장은 "3.30대책 반가워", <머니투데이> 2006.4.1

위 내용은 DTI를 피하기 위해 3개월만 사채 쓰라는 안내문이나 다름없다. 3개월이 지나면 DTI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잠시 사채로 빚을 숨겨 투자했다가 3개월 후에 은행 빚으로 갈아타라는 이야기다. 2000만 원의 이자와 수수료를 부담해도 될 정도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절차도 간단하다는 기사를 무엇 때문에 작성했겠는가? 이 정도면 우리 언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실감이 난다.

아마도 기사는 사채 시장에서 제공된 정보일 것이다. 2006년의 3.30 대책 즉, DTI 규제로 사채시장의 자금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명동 사채 시장에서 오히려 정부 대책을 환영한다는 표현까지 제목에 등장했다. 이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사채시장에 샛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3개월만 사채시장으로 돌아갔다가 은행으로 되돌아 오면 규제를 피해 과도한 돈을 빌려 주어 장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금융권 이해관계까지 고려했다. 사채시장과 금융권의 고객이 정상적인 판단을 해 무리한 빚을 내지 않을까봐, 또한 건설업계의 수익 잔치가 중단될까봐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냉정해지지 않도록 발빠르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언론들은 독자들을 위해 정보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광고주와 언론사 물주들에게 유리하도록 정보를 가공하고 끊임 없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빚은 없어야 할 것에서 없으면 손해보는 것이라는 인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빚 없이 사는 것이 건전하고 건강한 경제생활이라는 상식 대신 빚도 없는 것은 미련하고 답답한,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는 상식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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