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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리얼해야?...새 '정글의 법칙' 필요하다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in 바누아투>, 생명과 사람 우선하는 프로되길

등록|2012.06.05 18:00 수정|2012.06.05 21:37

▲ 수단의 굶주린 소녀 (1994, 케빈카터) ⓒ 케빈카터

혹시 이 사진을 아는지 모르겠다. 세계적 보도 사진가인 케빈 카터가 1993년 촬영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목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에는 극심한 기아로 지쳐 죽어가는 한 소녀와, 그 소녀가 죽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가 담겨있다. 셔터를 누른 후 케빈 카터는 바로 독수리를 내쫓고 소녀를 구했다고 전해진다.

며칠 뒤 뉴욕타임지에 실린 이 사진은 전 세계로 퍼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일부 사람들은 카터가 촬영하기보다 소녀를 먼저 도왔어야 했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그래서였을까. 케빈 카터는 사진가에겐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고도 3개월 뒤에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졌다. 그의 죽음에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이 사람들에게 '뉴스사진의 윤리'에 커다란 교훈을 남긴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느 사진기자의 말처럼 '사람의 목숨에 우선하는 뉴스가치는 없다'는 결론이 그것이다.

위험천만한 <정글>, 출연진 부상으로 이어져

시즌2로 돌아온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하 '정글') 시청하면서 이상하게도 저 한 장의 사진이 계속 떠올랐다. 프로그램 전반에 나타나는 위험천만한 상황과 겁 없는 출연진을 보며, 내내 긴장감으로 가슴 졸인 게 아마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정글>의 멤버였던 제국의 아이들 광희가 촬영 중 다리부상을 입고 중도 하차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희는 현재 한국에 들어와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글>은 홈페이지에서부터 스스로를 '명품 자연다큐+휴먼드라마+리얼 버라이어티'라고 규정하며 '한국형 리얼리티 쇼'라고 성격을 정의했다.

주인공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설정이 아닌 자연스런 상황에 집어넣는 리얼리티 프로는 <우리 결혼했어요> 등에서 보듯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포맷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 리얼리티 쇼의 과도한 사생활 노출로 출연자가 자살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 또한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정글>을 보면서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과연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디까지 '리얼'이어야 할까. 출연자가 위험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카메라는 시청자의 만족을 위해 계속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 다리부상을 입고 <정글의 법칙>에서 중도 하차한 것으로 알려진 광희. ⓒ SBS


<정글> 시즌2의 또 다른 진화...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프로그램 자체로만 보면 '진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시즌1을 성공적으로 마친 출연진과 제작진이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시즌2에 더했기 때문이다.

일단 장소부터 더욱 극적인 곳을 택했다. 오지 중의 오지인 섬 '바누아투'와 아직도 용암이 튀어나오는 활화산 '야수르'를 선택해 내용상 긴장감을 고조시킨 것이다. 추성훈과 박시은이 합류한 '김병만 족(族)'은 이곳에서 바누아투 원주민처럼 신성한 의식을 치르며 본격적인 야생 생활을 시작했다.

김병만이 직접 6mm 카메라로 셀프 촬영을 하는 것은 물론 육성 파일도 그대로 녹음해, 시청자가 한 편의 '생존기'를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프로그램의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카메라 노출이 잡히지 않고 전화까지 불통이 돼 제작진 또한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무엇보다도 시청자는 <정글>에서 보여주는 모든 일들이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즌2는 이처럼 리얼리즘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었다.

더불어 시즌1이 시청자에게 정글과 리얼리티를 더한 새로운 장르를 '소개'하는데 중점을 뒀다면, 시즌2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능'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정글>의 제작진은 특히 능수능란한 자막과 화면 편집을 통해 웃음을 선사했다. 예를 들면 출연 연예인들을 '정글 땅거지'라 말하고, 아이돌 광희와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노래방 화면'을 내보낸 것도 신선한 재미었다.

출연진들이 생존 양식으로 택한 '게'를 소개하면서 자막으로 '게 팔자가 상팔자', '나는 게그맨이다' 등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점도 돋보였지만, 한편으론 너무 과도하게 사용한 효과음과 배경음악, 현란한 자막이 내용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선 유쾌하되 오버하지 않고 필요하지만 산만하지는 않도록, 제작진은 기술적인 면에서 자제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 <정글의 법칙2> 2회 방송에서는 출연진의 배가 뒤집히는 등 위험한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 SBS


시청자를 '두렵게' 하는 것도 버라이어티일까

그럼에도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정글>이 과연 어느 선까지 리얼리즘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다.

2회 방송에서는 초반부부터 출연진이 선발대와 연락이 끊겨 캄캄한 산 속에서 길을 헤맸고, 평균 5분마다 검은 화산재와 시뻘건 마그마를 내뿜는 활화산 앞에 출연진들을 세워놓고 촬영을 계속했다. 제작진이 탄 보트가 파도에 휩쓸려 전복되면서 책임자인 이지원 PD가 부상당하고 메인카메라를 분실했으며, 결국 촬영을 중단하는 등 혼란스럽고 위험한 상황이 그대로 방송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제작진이 빠지자 그들을 구하겠다며 다른 배에 있던 리키김과 김병만, 추성훈이 준비운동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그 상황에서 누군가 없어지거나 심하게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리 모든 걸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라 해도 제작진은 가능한 모든 돌발 변수에 대해 최대한의 준비를 했어야 옳다. 더군다나 <정글> 제작진은 이미 시즌1을 통해 오지가 어떤 곳인지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김병만의 말처럼 '한 순간에 표정이 변하는' 장소가 바로 오지다.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걸 거르지 않고 보여주는 게 묘미이자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지한 고민 없는 리얼리티는 출연진의 예기치 못한 희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제작진은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위험 부담을 안고 그대로 방영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 <정글의 법칙 시즌2>는 '야생 버라이어티'로 좋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매우 위험하다는 우려도 있다. ⓒ SBS


신新 정글의 법칙이 나와야 할 때

현재 <정글의 법칙>이 방송되는 일요일 저녁 5시는 KBS <남자의 자격>과 <나는 가수다 시즌2>가 포함된 MBC <일밤>이 맞붙는 시간대다. 그래서인지 자막과 화면 편집에서부터 시청률에 대한 제작진의 초조함과 부담이 읽히는 것 같다.

바투아누 편의 촬영을 사전에 끝내놓은 이상 남은 시청률의 대부분이 '편집'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도를 넘어서서 출연진을 위험에 빠뜨리고 보는 시청자마저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편집은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빗대 말해보자면, '사람의 목숨에 우선하는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패는 그 수위를 얼마나, 어떻게 조절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 3일 방송된 <정글의 법칙>은 16.6% (AGB닐슨, 전국기준)라는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진이 합류한 캐릭터들의 성격을 어떻게 잘 만들어 나갈지, 또 한국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잘 진화시켜 나갈 것인지.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무도 다치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그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즐거운 <정글의 법칙>을 앞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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