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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무를 자리 하나 없네

<서평> 김동수 시인의 <말하는 나무>를 읽고

등록|2012.06.06 15:28 수정|2012.06.06 15:28
시집 한 권이 날아왔다. 이따금 신문지상을 통해 소식을 들었던 시인에게서 온 시집이다. 그는 예전에도 시집 몇 권을 보내왔었다. 주변머리 없는 난 귀한 책만 받고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못했는데 스치는 인연도 인연이라고 잊지 않고 마음을 보내왔다.

이번에 받아든 <말하는 나무> (불교문예시인선)는 예전에 냈던 그의 시집 <겨울 운동장>이나 <그리움만이 그리움이 아니다>와 큰 차이는 없다. 편안하게 읽고 사색하기에 좋은 책이다. 차이라면 불교의 공(空)이라는 화두를 서정적인 시어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제목에도 '빈 마음' '공' '무심'이란 말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인 것들을 아주 간결한 시어로 쉽게 표현하고 있다.

일단 김동수 시인의 시들은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다고 해서 작품성이 결여되었다는 말은 더욱 아니다. 어렵지 않아 편안하게 차 한 잔 마시며 다리 편안하게 쭉 뻗은 채 읽으면 제격이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한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시인은 보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 <말하는 나무> / 김동수 ⓒ 불교문예시인선



달은

스스로

차고
이지러짐이 없는데

보는 이에
따라

초승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는구나
                           -<달은 하나인데>- 전문

시는 관찰과 사유의 결과이다. 사실 달은 변함이 없다. 언제나 둥근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달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심도 없이 달은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보름달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들이 시인의 눈엔 일반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헌데 이런 것들은 짧은 시어에 간결하게 표현하여 놓았다. 시인은 말을 만들기보단 생각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인생의 모습도 그렇게 표현했다.

땅 넓고
하늘 높아

이곳 저곳
평생을 헤매고 다녀도

내 머무를 자리 하나
얻지 못하네
                  _ <바람>- 전문

누구나 꿈을 꾼다. 몸과 마음을 둘 안식처의 꿈을. 그러나 내 하나 머무를 자리 얻지 못하고 가는 게 우리 삶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런 우리네 삶을 바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선승의 선시처럼 말이다.

젊은 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 시인의 말처럼 땅은 넓고 하늘은 높지만 내가 머무를 곳은 없었다. 그저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뭘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혼잣말만 되뇌며 헤맸던 답답함.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그런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뭘 해야 하나? 묻고 있고,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야 하나? 묻고 있다. 머무를 집이 있으면서도 또 어디에 머물지? 하고 묻고 있다. 머물다 금방 떠나고, 떠나면서도 어디엔가 머무는 바람처럼 우리네 삶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그의 시집에 빠지지 않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어머니다. 세상에 없지만 그리움으로 남은 어머니. 어머니는 시인에게 그리움이고 연정이고 삶의 끈이기도 하다. 보이지도 않고 만나볼 수도 없지만 늘 그와 숨 쉬고 있는 존재다. 이번 시집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시편이 두 편이지만 그리움의 크기는 다르지 않다.

홀로 계신
구순의 장모님 뵈러 와서

장모님은 안방에
나는 거실에 누워서 달을 본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가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떠올랐다가

밤새, 그것들이 들랑날랑
밤은 깊어 가는데

장모님은 안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달을 보며
엎치락뒤치락 밤을 설친다
                           - <둥근달> 전문

정겨우면서도 설피 웃음기 있는 장면이 연상되는 시이다. 늙은 장모님과 나는 같은 공간,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달을 보고 있다. 난 창밖에 비치는 둥근달을 바라보며 돌아가신 어머니와 떠난 자식들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헌데 구순의 장모님은 무슨 생각으로 밤을 이루지 못할까. 대상은 다르지만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 시인의 시들은 채색되지 않은 동양화 같은 느낌이다. 여백의 미도 있으면서 조용히 음미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한 시만을 쓰지 않는다. 현실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리기도 한다.

(……) 짧은 판사들이 밤새 TV논쟁을 벌이고, 시청 앞에선 성조기와 인공기가 서로 찢고 할퀴는데, 비는 내리고 내려 길을 잃은 도심은 섬이 되어 떠나갔다. (……)
                                                  -<날이 새지 않는 아침> 중에서-

시인에게 시란 무얼까? 김동수 시인은 자신의 시를 '영혼의 칭얼거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혼의 푸른 눈망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나무 하나 서 있는 것처럼 존재로서의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오늘 길거리에서 만난 누구도 반갑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시집이 반갑게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말하는 나무> /김동수 시집/ 값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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