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도 실크로드를 이끈 주역들이 살고 있다
[새로운 나라 네팔,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 4]- 돌카와 차리코트에서 만난 네와리 사람들 1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일찌감치 차리코트를 찾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6~7년전 차리코트를 찾은 바 있고 그때 차리코트에서 대단한 인파의 축제를 접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돌카(Dolkha)사람들이 있다. 돌카는 주요 네와리족 거주지역이다.
네팔의 중심은 카트만두다. 네와리족의 중심은 카트만두와 벅터푸르, 파턴이며 지방에서는 가장 집중된 지역이 바로 돌카다. 그 인근에 차리코트도 많은 네와리족이 거주한다. 과거부터 상업에 종사해온 그들은 지금도 네팔의 주요상권을 쥐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매우 구두쇠같이 민감한 성격을 지녔다.
혹시라도 벅터푸르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그곳의 불상과 각종 조형물을 유심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여행이 경우에 따라 주요한 학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벅터푸르의 불상이나 조형물은 여지없이 아랍인 형상을 하고 있다. 네팔 불교인들이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서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전통을 가진 것도 살펴볼만한 일이다. 본래 이슬람이나 기독교를 신봉하던 아랍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형상을 만들었다는 설을 반증하는 사례로 목격되기에 충분한 장면들이다.
싩크로드의 주역들이 네팔에도 있다. 바로 그 주역들은 네와리족들이다. 그들은 말과 당나귀를 이용해 무역을 해왔고 과거에는 코끼리도 등장한다.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등지까지도 아랍상인들이 무역을 한 증거들이 벽화에 등장한다. 그런 유사한 형상을 난 벅터푸르에서도 목격했다. 가난한 나라 네팔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별히 상인계층으로 생존기반을 다져온 네와리족들은 과거에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왔다. 그런 연유로 그들이 살아온 터전은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어있고 그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 살고 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은 네팔의 주요거점에 옛 주인인 네와리족들의 삶이다. 그들은 몽골리안 중 유일하게 힌두교적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그들은 힌두교 믿고 그들이 믿는 방식의 축제를 벌이던 중 아리안계의 사흐 왕에 의해 벅터푸르, 파턴, 카트만두를 모두 잃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도 여전히 힌두교의 중심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인 일이다. 물론 에외적으로 파턴 네와리 사람들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다. 이는 네팔인들이 불교와 힌두교를 변별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선 네팔력에 따른 더사인(추석과 같은 명절)과 티하르 등의 축제 등이 모두 네와리족의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 네팔의 주요 지배세력은 사흐 왕조였다. 그들은 인도 아리안계로 바운, 체트리와 함께 네팔의 주요 지배세력이다. 결국 구조상에서 네와리족은 변방이다. 이런 현상을 그들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정치구조에서 드러난다.
이미 몇 차례 기사에서 밝혔듯 네팔 제헌의회의 헌법 제정을 앞두고 주요 몽골리안들이 정치적 결사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자치를 주장했던 것이다. 그때 네와리족들도 카트만두를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자치지역으로 반영하라는 시위를 주도해왔다. 그때 네팔에서 보기드문 민족갈등 양상의 패싸움도 벌어졌다. 네와리족과 체트리, 구릉족과 체트리가 서로 폭력을 행사한 일이다. 그것도 헌법이 제정되고 공포되리라 기대한 전날과 당일인 지난달 26~27일 양일간에 벌어진 일이다.
돌카와 차리코트는 자동차로 30~40분 거리다. 그리고 인근에 칼린초크는 시바의 성지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바의 부인인 칼리신과 시바가 공존하는 성지다. 네팔어에 칼리거르니?라는 말이 있다. 화내는 거냐?라는 뜻이다. 시바가 생성과 소멸의 신이라면 칼리 신은 암흑의 상징이다.
네팔의 중심은 카트만두다. 네와리족의 중심은 카트만두와 벅터푸르, 파턴이며 지방에서는 가장 집중된 지역이 바로 돌카다. 그 인근에 차리코트도 많은 네와리족이 거주한다. 과거부터 상업에 종사해온 그들은 지금도 네팔의 주요상권을 쥐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매우 구두쇠같이 민감한 성격을 지녔다.
▲ 웃는 돼지네팔의 주요 사원 앞에는 여지없이 돼지가 웃고 있다. 돼지 신이다. ⓒ 김형효
▲ 산중 도시, 차리코트(1980미터)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차리코트(1980미터)다. 6~7년전과는 또 다른 산중 도시의 모습으로 은행만도 5개가 넘었다. 대단한 변화다. ⓒ 김형효
싩크로드의 주역들이 네팔에도 있다. 바로 그 주역들은 네와리족들이다. 그들은 말과 당나귀를 이용해 무역을 해왔고 과거에는 코끼리도 등장한다.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등지까지도 아랍상인들이 무역을 한 증거들이 벽화에 등장한다. 그런 유사한 형상을 난 벅터푸르에서도 목격했다. 가난한 나라 네팔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별히 상인계층으로 생존기반을 다져온 네와리족들은 과거에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왔다. 그런 연유로 그들이 살아온 터전은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어있고 그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 살고 있다.
▲ 네와리족의 소박한 기원신앙심이 깊은 네와리족 지인의 소박한 기원, 심지가 타고 있다. ⓒ 김형효
우선 네팔력에 따른 더사인(추석과 같은 명절)과 티하르 등의 축제 등이 모두 네와리족의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 네팔의 주요 지배세력은 사흐 왕조였다. 그들은 인도 아리안계로 바운, 체트리와 함께 네팔의 주요 지배세력이다. 결국 구조상에서 네와리족은 변방이다. 이런 현상을 그들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정치구조에서 드러난다.
▲ 네와리족의 주말차리코트에 살고 있는 버럿 쉬레스타의 할머니네 집이다. 카트만두에 살고 있는 세 명의 고모네 가족들이 주말에 할머니댁을 찾았다. 주말에 함께 모여 기도를 하고 음식을 나눈다고 한다. ⓒ 김형효
▲ 산중에도 심각한 교통난산중도시 차리코트에서 돌카 구간에서도 손님이 넘쳐 차 위에까지 올라탔다. 이 차는 돌카에서 카트만두를 오가는 버스다. ⓒ 김형효
돌카와 차리코트는 자동차로 30~40분 거리다. 그리고 인근에 칼린초크는 시바의 성지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바의 부인인 칼리신과 시바가 공존하는 성지다. 네팔어에 칼리거르니?라는 말이 있다. 화내는 거냐?라는 뜻이다. 시바가 생성과 소멸의 신이라면 칼리 신은 암흑의 상징이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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