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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도 지리산 일출을 기다렸다

[서평]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등록|2012.06.07 11:14 수정|2012.06.07 11:14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 돌베개

"지리산은 내가 평생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조선 정조 때에 활동한 이동항(1736-1804)은 그의 지리산 기행문인 <방장유록>에서 조선시대 선조들의 지리산에 대한 소망을 한마디로 드러내고 있다. 이동항은 52세(1787년)에 속리산을, 55세(1790년)에 지리산을, 56세(1791년)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유람기를 남겼다. 그는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가지고 지리산 천왕봉(1915m)을 올랐다. 이동항은 조선시대 등산가였다.

조선시대 지리산 유람기는 100여 편이 넘는다. 지리산유람록은 4권까지 출판되었고, 계속 진행 중이지만 1권인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이 대표적이고 내용이 충실하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최석기 외 옮김, 돌베개)은 이륙, 김종직, 남효온, 김일손, 조식, 양대박, 박여랑, 유몽인, 성여신의 유람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륙(1438-1498)은 최초로 지리산 유람기를 남겼다. 조선시대 지리산 유람기의 획을 그은 사람은 김종직이다. 김종직의 지리산 유람기인 <유두류록(遊頭流錄)>은 유람동기 및 동행인, 날짜별로 기록, 유람후의 총평으로 되어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지리산 유람록은 이 형식을 갖추고 있다.

지금의 지리산은 지리산으로만 부르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지리산은 두류산(頭流山)으로 많이 쓰였고, 지리산(智異山),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했다. 선비들은 지리산 산행시에 천왕봉을 오르던가,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았다. 조선시대 지리산 천왕봉 산행은 주로 중산리나 백무동에서 출발하였다. 김일손(1464-1498)은 중산리-법계사-천왕봉-세석-의신마을-신흥사-쌍계사-불일암(불일폭포) 코스로 천왕봉과 청학동을 모두 둘러보았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지리산 주능선(노고단-천왕봉)을 종주했다는 기록은 없다. 칠선계곡 코스는 광복 후에 개척한 등산로이기에 유람기에 나오지 않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지리산을 찾았을까? 무엇을 보려고 지리산으로 갔을까?

천왕봉에서의 감회를 유몽인(1559-1623)은 "이제 천왕봉 꼭대기에 올라보니 그 웅장하고 걸출한 것이 우리나라 모든 산의 으뜸이었다"라고 했고,  김종직은 "아 두류산은 숭고하고도 빼어나다"고 감탄한다. 나는 지리산 산행을 하면서 천왕봉 일출을 기다렸는데, 유람록을 읽으면서 의문이 풀렸다. 선비들도 일출을 기다렸던 것이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지리산 산행의 극치는 천왕봉에서의 일출이다. 장엄하고도 아름답다.

조선시대에는 지리산에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영남에서 태어나 자랐다. 두류산은 내 고향의 산이다. 그런데도 남쪽과 북쪽으로 나아가 벼슬살이를 하며 세상사에 골몰하다보니, 벌써 마흔 살이 되었건만 아직 한 번도 이 산을 유람하지 못하였다"고 김종직은 고백한다. 그는 40세 함안 군수로 나아갔다. 1472년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선비가 태어나서 한 곳에 조롱박처럼 매여 있는 것은 운명이다. 천하를 두루 보고서 자신의 소질을 기를 수 없다면, 자기 나라의 산천쯤은 마땅히 탐방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한 김일손은 26세(1489년)에 지리산을 올랐다.

조선시대 지리산 산행은 이륙에서부터 조선말, 일제시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나는 지리산 천왕봉을 8번 올랐다.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세석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산행로이다. 세석평전위의 촛대봉에서부터 우람한 천왕봉을 보면서 걷게 된다. 겨울 지리산은 너무 춥고, 5월이 지리산 산행하기에 제일 좋다. 여름 지리산은 시원해서 좋다.

선비들은 지리산 산행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아 두류산 유람은 이번이 두 번째이고 상봉에 오른 것도 두 번째였다. 단풍잎을 감상하고 일출을 본 것은 부차적인 일이었을 뿐이다. 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춘간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청허웅과 함께 하고, 웃음을 선사한 양광조와 함께한 것이 행운이었다"고 양대박(1543-1592)은 말한다. 그는 천왕봉을 두 번 오르는 기쁨도 좋지만 산행우정이 두터워짐을 느낀 것이다. "유람한 것은 겨우 닷새지만 가슴이 탁 트이고 시야가 넓어짐을 느낀다"고 김종직은 말한다.

지리산유람록을 읽으며, 김종직, 김일손, 양대박, 유몽인을 만난다. 나만이 걷는 지리산이 아니라  오백년 전의 선조들이 걸었던 그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선인들과 인생에 대해 담론한다. 김일손은 23세에 장원 급제하고 승승장구하였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다가 포악한 연산군에게 35세에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무오사화이다. 유몽인은 31세에 장원급제하고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1623년 인조 반정뒤, 광해군의 복위계획에 가담했다는 무고로 죽임을 당하였다. 먼저 간다고 선착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안 풀릴 때 낙심하지 않고, 잘 나갈 때 자만하지 않는다. 선인들이 가르쳐 준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이 륙 등저 | 돌베개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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