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어떤 모임 자리서 몇 년 전 교육계에서 정년퇴임하신 분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교수님, 박사님으로 불리기도 하는 분인데 지금도 여기저기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나가신다고 했다. 평생을 순탄하게 살아오셨고, 노년에도 왕성하게 생활하시니 복이 많으신 분이었다.
당연히 그분을 중심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에 그분이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개탄하는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 교육이 너무 잘못되어서 우리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 말씀이었다. 하도 심각한 어조여서 좌중은 모두 긴장한 채로 그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분의 다음 말은 너무도 의외였다.
청소년들이 통신 기기들을 이용하여 대통령 욕을 너무 많이 한다고 했다. 어린 청소년들이 국가 원수인 대통령에 대해 예사로 '쥐OO'라고 부르면서 원색적인 욕들을 하니,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냐며 그분은 개탄을 거듭했다.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그게 나라가 망할 징조라니... 나는 우습다 못해 그분이 가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 실소를 참는 빛이 역력했다. 여러 가지 말들이 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일흔이 넘으신 분과 직접 면대를 한 자리에서 논쟁을 하기도 어려운 일이었고, 그 분은 그 자리의 주빈이었다. 끝까지 인내하며 그 분의 말을 다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분은 전교조가 주범이라고 했다. 전교조가 우리나라 교육을 망쳤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이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쥐OO'라고 부르며 일상적으로 욕을 하는 것도 다 전교조 탓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전교조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왜 그것이 전교조 탓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며 그분은 과거 사립학교 교장 시절에 자신이 어떻게 전교조를 제약하고 봉쇄했는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그분은 마치 무용담을 들려주듯 말했지만, 사립학교 교장이 교사들을 한 사람씩 불러 겁을 주는 식으로 전교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립학교 교장으로서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식은 죽 먹기였을 터였다.
그분은 처음부터 전교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사립학교 교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터였다.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에 대해 갖게 되는 거부감이 '색깔론'으로 이어지는, 유치하고 진부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나는 끝까지 인내와 아량을 고수했지만 그분의 말을 통해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는 <조선일보> 냄새가 풀풀 났다. 오랜 세월 수구 족벌언론의 주술에 세뇌되어 '마법의 성' 안에 갇혀 살고 있음이 너무도 역력했다. 그에게는 전교조에 대한 '적의'만 있을 뿐 전교조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교육 목표'들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인식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따라서 교육현실에 대한 전교조의 문제제기에 상응할만한 '비판정신'이 그에게는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내가 파악하건대 전교조의 핵심적 동인(動因)은 '비판 정신'이다. 비판 정신은 올바른 시민정신의 토대다. 비판정신과 시민정신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현실 안에 갖가지 형태로 도사리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문제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의 눈을 가져야 한다. 통찰의 눈은 당연히 모순과 부조리, 부당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뜨거운 의지와 노력을 견인한다.
부당하고 엄혹한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시민정신의 뜨거운 자각에 의해 태동하게 된 전교조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확립과 교육 민주화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교직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 민주적 권리 획득, 교육여건 개선'도 주요 목표다.
또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 앞장설 것'도 다짐한다.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내 여러 단체 및 세계 교원단체와 연대'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4대 강령을 표방하고 있는 전교조는 그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열네 가지의 '참교육실천강령'을 수립하여 실천해오고 있다.
그런데 전교조의 4대 강령과 14개 '참교육실천강령' 안에는 순응적 가치질서에 젖어 있거나 기득권에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있다. 더불어 사는 삶, 민족의 자주성 확보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교육, 민주주의의 완성과 생활화를 지향하는 교육, 양성평등교육, 인권교육,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교육,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지향하는 교육, 학생자치 존중 등등으로 제시되는 것들이다.
전교조의 마지막 실천강령은 '참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투쟁한다'인데, 이 마지막 강령이 교육 관료들이나 기득권 세력에게는 경계 대상이 되면서 강령 전체를 불온시하는 편견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보는 대다수 사람들은, 적어도 내 오감으로는 전교조의 창립배경과 그들이 추구하고 표방하는 '참교육'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수구족벌언론에 세뇌되어 습관적으로 굴절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전교조의 창립배경이나 존재이유의 근원은 일제 친일파에게로 가 닿는다. 친일파로부터 유래된 이승만의 독재와 민족분단의 고착화, 오랜 군사독재 등 역사에 대한 성찰이 전교조를 태동케 했다.
친일세력과 이승만 독재와 오랜 군사독재를 미화하면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고루 분배하기보다는 독점하다시피 하며 기득권의 방벽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전교조를 불순세력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 민주주의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세상은 발전하고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그 어떤 것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저절로 순탄하게 발전하고 변하는 것은 없으므로!
당연히 그분을 중심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에 그분이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개탄하는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 교육이 너무 잘못되어서 우리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 말씀이었다. 하도 심각한 어조여서 좌중은 모두 긴장한 채로 그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분의 다음 말은 너무도 의외였다.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그게 나라가 망할 징조라니... 나는 우습다 못해 그분이 가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 실소를 참는 빛이 역력했다. 여러 가지 말들이 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일흔이 넘으신 분과 직접 면대를 한 자리에서 논쟁을 하기도 어려운 일이었고, 그 분은 그 자리의 주빈이었다. 끝까지 인내하며 그 분의 말을 다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 충남교사.가족 대동한마당2005년 10월 9일 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 교정에서 열렸던 '전교조 충남지부 창립16주년 대동한마당' 행사에는 초등학교 교사인 내 아내도 참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지요하
그분은 전교조가 주범이라고 했다. 전교조가 우리나라 교육을 망쳤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이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쥐OO'라고 부르며 일상적으로 욕을 하는 것도 다 전교조 탓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전교조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왜 그것이 전교조 탓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며 그분은 과거 사립학교 교장 시절에 자신이 어떻게 전교조를 제약하고 봉쇄했는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그분은 마치 무용담을 들려주듯 말했지만, 사립학교 교장이 교사들을 한 사람씩 불러 겁을 주는 식으로 전교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립학교 교장으로서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식은 죽 먹기였을 터였다.
그분은 처음부터 전교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사립학교 교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터였다.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에 대해 갖게 되는 거부감이 '색깔론'으로 이어지는, 유치하고 진부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나는 끝까지 인내와 아량을 고수했지만 그분의 말을 통해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는 <조선일보> 냄새가 풀풀 났다. 오랜 세월 수구 족벌언론의 주술에 세뇌되어 '마법의 성' 안에 갇혀 살고 있음이 너무도 역력했다. 그에게는 전교조에 대한 '적의'만 있을 뿐 전교조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교육 목표'들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인식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따라서 교육현실에 대한 전교조의 문제제기에 상응할만한 '비판정신'이 그에게는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내가 파악하건대 전교조의 핵심적 동인(動因)은 '비판 정신'이다. 비판 정신은 올바른 시민정신의 토대다. 비판정신과 시민정신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현실 안에 갖가지 형태로 도사리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문제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의 눈을 가져야 한다. 통찰의 눈은 당연히 모순과 부조리, 부당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뜨거운 의지와 노력을 견인한다.
부당하고 엄혹한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시민정신의 뜨거운 자각에 의해 태동하게 된 전교조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확립과 교육 민주화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교직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 민주적 권리 획득, 교육여건 개선'도 주요 목표다.
또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 앞장설 것'도 다짐한다.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내 여러 단체 및 세계 교원단체와 연대'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4대 강령을 표방하고 있는 전교조는 그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열네 가지의 '참교육실천강령'을 수립하여 실천해오고 있다.
▲ 축시 낭송2005년 11월 24일 저녁 충남 태안군/읍 태안중학교 다목적실에서 열렸던 전교조 태안지회의 '제1회 태안 참교육실천사례발표회'에 초청을 받은 나는 축시 낭송을 했다. ⓒ 지요하
그런데 전교조의 4대 강령과 14개 '참교육실천강령' 안에는 순응적 가치질서에 젖어 있거나 기득권에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있다. 더불어 사는 삶, 민족의 자주성 확보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교육, 민주주의의 완성과 생활화를 지향하는 교육, 양성평등교육, 인권교육,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교육,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지향하는 교육, 학생자치 존중 등등으로 제시되는 것들이다.
전교조의 마지막 실천강령은 '참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투쟁한다'인데, 이 마지막 강령이 교육 관료들이나 기득권 세력에게는 경계 대상이 되면서 강령 전체를 불온시하는 편견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보는 대다수 사람들은, 적어도 내 오감으로는 전교조의 창립배경과 그들이 추구하고 표방하는 '참교육'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수구족벌언론에 세뇌되어 습관적으로 굴절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전교조의 창립배경이나 존재이유의 근원은 일제 친일파에게로 가 닿는다. 친일파로부터 유래된 이승만의 독재와 민족분단의 고착화, 오랜 군사독재 등 역사에 대한 성찰이 전교조를 태동케 했다.
친일세력과 이승만 독재와 오랜 군사독재를 미화하면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고루 분배하기보다는 독점하다시피 하며 기득권의 방벽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전교조를 불순세력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 민주주의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세상은 발전하고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그 어떤 것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저절로 순탄하게 발전하고 변하는 것은 없으므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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