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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철쭉, 아내만큼 예쁘답니다"

철쭉사랑 30년, 철쭉애호가에서 철쭉박사된 이성만씨

등록|2012.06.07 18:04 수정|2012.06.07 18:04
햇볕 좋은 6월. 논두렁마다 모내기가 한창이다. 경운기 엔진 소리가 농촌의 들녘을 메아리친다. 바지런철쭉분재원을 찾아가는 길, 여느 때보다 분주한 농촌의 모습에 덩달아 활기를 느낀다. 군산시 내흥동 해령마을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꽤 긴 비닐하우스 한 동을 발견했다. 한눈에 이곳이 철쭉분재원임을 짐작했다. 때마침 비닐하우스 옆 주택에선 중년의 한 여인이 나왔다. 외지사람을 알아보고 여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철쭉 보러 오셨어요? 지금이 한창 예쁠 때인데…. 잘 오셨어요."

인상 좋은 여인(차구자·60)의 안내로 분재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꽃 천지'에 눈은 휘둥그레. 지구상에서 아름다운 색은 다 모아 놓은 듯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나도 모르게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1년 중 이때만 볼 수 있다는 철쭉꽃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혼자보기 아까워 일단 카메라부터 켰다. 주인장이 자식 자랑하듯 철쭉 자랑에 나섰다.

바지런철쭉분재원1000평 넘는 곳에 620여종이 자라고 있다. ⓒ 박영미


"보유하고 있는 종은 600여 개 돼요. 삽목(꺾꽂이), 모아 심기 등을 하는 묘목까지 합하면 2만 점이 넘을 거예요. 이중엔 새롭게 개발한 품종도 있죠. 같은 철쭉이라도 품종과 산지에 따라 꽃 모양과 색깔이 각기 다르죠."

화보무려 50년생 철쭉분재 ⓒ 박영미


수광뿌리올림된 철쭉분재. 20년생 ⓒ 박영미


600여 종이나 되는 철쭉 하나하나의 이름과 특징을 낱낱이 설명하는 이성만씨. 학위증만 받지 않았지 '철쭉박사'가 따로 없었다. 무려 30년간 이 철쭉과 동고동락했다니 그럴 만하다. 처음 그도 이 정도 규모는 생각지 못했단다. 그저 정성 들여 키운 나무에서 꽃이 필 때마다 주는 감동에 지금의 분재원이 됐단다. 자세한 내막 설명은 아내 차구자가 덧붙였다.

"남편은 1980년 초 대위로 예편한 예비군 중대장이셨어요. 당신이 분재를 배우기 어려워 저에게 권유했죠. '분'자도 모르던 때, 군산에는 분재를 배울 만한 곳이 없어 익산, 전주로 10년간 배우러 다녔어요. 제가 배우고 오면 남편에게 알려드렸죠. 그렇게 부부가 함께 분재를 공동취미로 삼으면서 대화도 늘고, 사시사철 철쭉의 아름다움도 느끼면서 힘들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바지런철쭉분재원은 2004년 남편의 명예퇴직과 함께 본격화된 거예요."

명예퇴직과 함께 철쭉사랑에 푹 빠진 부부는 전국에 분재한다는 곳은 모두 다녀왔을 정도로 철쭉 연구에 매진했다. 하나둘 철쭉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기상 시간도 앞당겨졌다. 새벽 5시,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어나 철쭉 물주기만 1시간, 그제야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철쭉을 재배하면서 우리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는 묘목과 소재도 배양했다. 그리고 기존의 지식과 자신만의 학습법을 만들어 홈페이지(http://bajirun.net/xe/)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6년 철쭉 애호가들의 요청으로 무료 분재교실도 열었다. 이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8년째 여전히 운영 중이다.

"철쭉이 그냥 좋더라고요. 보고만 있어도 좋은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자식 돌보듯 정성 들여 가꿔 꽃이 필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손녀바보 이성만씨손녀와 함께 꽃놀이 중인 이성만씨. 손녀바보가 따로 없다. ⓒ 박영미


한창 철쭉 이야기로 무르익을 무렵, 생후 10개월 된 손녀딸이 울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할아버지(이성만씨)한테 가겠다는 것. 세상에 엄마보다,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는 손녀딸은 할아버지 손길에 울음을 그쳤다. 요즘 '딸바보(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가 유행이라던데, 새로운 신조어 '손녀바보'가 등장해야 겠다. 아기띠를 차고 손녀딸을 재우겠다며 철쭉 사이로 들어가는 성만씨. 그 모습이 흐뭇해 연신 미소가 지어진다.

구자씨와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실 그녀는 철쭉에 대해선 남편만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의 외조(?) 덕분에 봉사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 1986년도부터 지금까지 적십자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그녀는 적십자 군산지구 협의회회장직을 맡으며 평일 대부분을 봉사활동에 쏟는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주로 노인복지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죠. 저도 아프신 친정어머니(90세)를 모시고 있는 중이라 이쪽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다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 같고…. 봉사는 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내가 받는 기쁨이 더 커요. 그 기쁨이 몸은 고돼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고운 구자씨. 웃을 때 잡힌 주름 역시 그녀의 착한 마음을 닮은 듯 했다. 1000평 넘는 철쭉분재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성만씨가 돌아왔다. 물론 손녀딸은 곤히 자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두 분이 함께 사진 찍기를 권유했다. 쑥스러운 듯 멋쩍게 선 성만씨에게 한마디 했다.

이성만, 차구자 부부철쭉과 함께한 30년, 꽃보다 이들 부부가 아름다워 보이는 건 나뿐일까 ⓒ 박영미


"꽃이 예쁘세요? 아내가 예쁘세요?"

머쓱하게 웃기만 하는 성만씨. 대답을 못하는 남편을 보며 구자씨,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한다.

"이 양반, 꽃이 더 예쁘다고 할 거예요(호호)."

그렇게 찍힌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꽃보다 아내가 예쁘다는 걸. 함께 산 세월만큼 닮은 두 분의 얼굴이 그걸 증명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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