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대법 "'가명'으로 작성된 진술조서도 증거능력 있다"

"조서 증거능력에 관한 다른 요건 모두 갖춰지면 증거능력 부정할 것 아냐"

등록|2012.06.08 16:41 수정|2012.06.08 16:41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의 진술조서가 '가명'으로 작성됐다고 하더라도 원진술자가 자신의 진술임을 확인했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대구 달성군의 모 상가 조성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인 A씨는 2009년 5월 원주민대책조합 조합원이 회의 중 발언을 하려고 하자 입에 담기 힘든 거친 욕설을 하며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A씨는 조직폭력배 두목인 동생을 시켜 상가 조성공사에 투입된 덤프트럭 운전사들을 상대로 "트럭 투입 일을 위원회에서 맡겠다"며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운전사들에게 "트럭 배차 일을 하는데 인건비 등이 필요하니 위원회에 돈을 좀 내라"며 배차료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인 덤프트럭 운전사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가명으로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A씨의 공갈 혐의에 대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운전사들이 A씨의 동생이 조직폭력배 두목이고, A씨도 폭력전과가 9범이나 돼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명으로 작성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가명으로 작성된 진술조서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운전사들의 가명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며 협박죄만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공갈, 협박,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A(4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협박죄만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려면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여기서 적법한 절차와 방식이라 함은 피의자 또는 제3자에 대한 조서 작성 과정에서 지켜야 할 진술거부권의 고지 등 형사소송법이 정한 제반절차를 준수하고 조서의 작성방식에도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조서에 진술자의 실명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해 그대로 밝혀 기재할 것을 요구하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며 "따라서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서처럼 명시적으로 진술자의 인적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의 기재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진술자와 피고인의 관계, 범죄의 종류, 진술자 보호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으로 볼 때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진술자의 성명을 가명으로 기재해 작성했다고 해서 그 조서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되지 않았다고 할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런 가명 조서라도 공판기일 등에 원진술자가 출석해 자신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임을 확인함과 아울러 그 조서의 실질적 진정성립을 인정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반대신문이 이루어지는 등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에 관한 다른 요건이 모두 갖추어진 이상 그 증거능력을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심은 가명 진술조서에 대해 그 진술인들이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내용의 진정을 인정했다거나,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기재 내용에 관해 반대신문을 할 수 있었다는 사정과 관계없이 형사소송법이 정한 적법한 절차와 방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