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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인들의 저력... 네와리족 부부에게서 느끼다

[새로운 나라 네팔,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4] 돌카와 차리코트에서 만난 네와리 사람들(2)

등록|2012.06.11 11:22 수정|2012.06.11 11:23
칼린초크는 자동차로 5시간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길이 좋지 않아 자동차가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차리코트를 찾은 다음날 오토바이를 이용하면 2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해서 시도해 봤다. 그러나 미끄러운 도로 사정 때문에 매우 위험해 칼린초크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칼린초크도 세계문화유산 중에 하나다. 카트만두에 파수파티가 사람의 무덤이라면 칼린초크는 수많은 가축의 무덤이다.

칼린초크는 해발 3850미터로 일반인들이 원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하기 좋은 높이다. 그러나 차리코트에서 시작돼 해발 2000미터 높이를 하루에 소화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칼린초크에 가는 길도 하루를 걷고 칼린초크에서 쉬었다가 다음 날 하산하는 것이 좋다. 차리코트에서는 매년 바가와티 축제가 열린다. 이 기간 동안 돌카 주민과 차리코트 사람들은 염소, 닭 등을 끌고 칼린초크 정상에 올라 칼리여신 앞에 삼지창으로 목을 친 후 신전에 피를 뿌리는 기원 의식을 가진다.

셔완, 럭스미 부부동갑내기 같은 네와리족인 부부, 셔완꾸마르 쉬레스타(55세)와 럭스미 쉬레스타(55세) 부부가 자신들의 구멍가게에 앉아있다. ⓒ 김형효


얼마 전 몽골리안 루트와 아리안 루트를 알아봤다. 그때도 언급한 이야기이지만, 네와리족이 몽골계에 속하는 종족임에도 힌두교 전통이 강한 이유는 몇 번을 곱씹어봐도 참으로 기이하다.

난 이번 여행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네와리족인 셔완 꾸마르 쉬레스타(Shrawan Kumar Shrestha·55), 럭스미 쉬레스타(Laxmi Shrestha·55) 부부의 집에 머물렀다. 여행을 하며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된다. 여과없이 체험하는 현지인들의 삶과 관습,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부부는 차리코트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다. 이 일은 매우 오래전부터 했다고 한다.

네팔 어디를 가도 수많은 구멍가게들을 볼 수 있다. 작은 동네에도 수많은 구멍가게들이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대체 누가 저 수많은 가게들의 물건을 사고, 저들은 어떻게 생활을 꾸릴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가게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셔완 형님네도 그 작은 구멍가게를 하며 장성한 아들 둘과 딸을 교육시켰고, 지금도 생활을 유지해가고 있다. 충분치 않아도 할 일을 해낸 대단한 저력이 느껴졌다.

깡통신전의 소박한 기원신앙심이 깊은 네와리족들은 그 어느 곳에도 신성한 기원을 멈추지 않는다. 셔완 부부의 소박한 기원! ⓒ 김형효


셔완 손에 네팔 주민증가족이 모두 모여 땅을 산다. 나중에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에서 어울려 살자는 다짐으로....., 공동명의 땅을 사기 위해 모은 주민증을 펼쳐보이는 셔완 쉬레스타 ⓒ 김형효


그도 그럴 것이 큰 아들은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작은 아들 버럿은 지리에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차리코트 인근에 농가에서 기술 영농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영농후계자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막내딸은 카트만두의 셔완 꾸마르 쉬레스타의 형인 헤므라저 쉬레스타의 집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돌카 태생의 네와리족들이다.

내가 차리코트와 돌카를 찾았을 때 그들 가족은 주말을 이용해 함께 기원을 빌어주기 위해 모였다. 돌카의 본가에 모인 그들은 함께 음식을 해서 먹으며 힌두교식의 뿌자를 했다. 이마에 디까를 붙이고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의식이다. 이번 주말 기원은 그들 가족에게 매우 뜻 깊은 시간이 됐던 모양이다. 경제적으로 자립 기반을 다진 헤므라저와 셔완 형제 그리고 세 명의 여동생 가족이 함께 어울려 땅을 산 것이다. 여기에는 결혼을 해서 자식을 둔 두 명의 여자 조카들도 함께했다.

조카딸과 셔완부부 그리고 아들땅을 산 후 다시 모였다. 영끝에 여동생의 딸, 뒤에 둘째 아들 버럿 쉬레스타, 셔완부부가 즐거운 표정으로 웃고 있다. ⓒ 김형효


여동생과 인사를 나누는 셔완돌카에서 출발한 버스가 차리코트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멈춰섰다. 그틈을 이용해 여동생과 인사를 나누는 셔완 쉬레스타다. ⓒ 김형효


땅을 구입하기 위해 예닐곱 명의 네팔식 주민등록증을 수집한 뒤 함께 땅 주인과 만나 인근 관청에 가서 신고를 하고 등기부 등본을 받는 절차를 거쳤다. 나는 다음날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그들과 함께 닭백숙과 수제비를 만들어 나의 인사를 대신했다.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남김없이 먹는 그들이 고마울 정도였다.

생김새도, 입맛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그들 속에서 나는 우리 한국인들의 정서를 느끼기도 한다. 깊은 가족애를 본 것이다. 우리가 잃어가는 전통문화를 난 자주 네팔 사람들 속에서 목격한다.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내 눈에 부러움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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