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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제 확대, 만능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재반론] 이성우 시민기자에 답한다

등록|2012.06.11 17:56 수정|2012.06.11 19:03
지난 주말 비례대표제 확대를 둘러싸고 조성주 시민기자(이하 조성주)의 기사(<국회의원 줄이자? 이재오 의원은 틀렸다>)와 이성우 시민기자(이하 이성우)의 기사(<비례대표 의석 수 확대가 만능인가?>)를 보고 이 논의가 앞으로도 좀 더 발전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 글은 이성우 시민기자의 글에 대한 재반론이다.

우선 본격적인 반론에 앞서 이성우에게 확인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성우가 비례대표제 확대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다. 그의 글에 나타난 이에 대한 입장이 명확치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글의 도입부에서 "필자(이성우)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도 비례대표의 수가 좀 더 늘어야 한다고 본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글의 후미에선 "과연 비례대표 수의 확대가 조성주 시민기자의 목적만큼의 효과가 생길지 의문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비례대표를 확대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지만 비례대표가 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 논쟁에 본격적으로 임한다면, 이성우는 이 부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입장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그가 단 제목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그는 "비례대표 의석 수 확대가 만능인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간과 제도들이 맞물려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겠는가?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이 만능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더 이상의 논의를 진척시키기 힘들게 할 뿐이다. 게다가 조성주의 글 어디에도 그것이 '만능'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질문에 대답하자면, "(당연한 얘기지만) 비례대표제 확대가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통해 지금까지 소외되어 왔던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정책결정과정에 보다 잘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에 비례대표제 확대 자체와 관련해 논쟁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나름 의미 있는 논쟁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논쟁이 촉발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도 하다. 하지만 일단 이번 글에선 이성우가 자신의 글 전반에서 아쉬움을 제시한 "제도 변경 논의는 좀 더 정확하고, 숙고된 아이디어와 신중한 접근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진행해가도록 하겠다.

정치개혁은 교과서가 아닌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성우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비용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국회의원의 활동보조비용을 특권으로 인식하여 효율성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즉 "경제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정치에 드는 비용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효율성과 비용을 따지게 되면 "국회의원 자신이 돈이 없거나 돈이 없는 계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정치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힘들게 되고 이것이 "결국 가진 자들의 정치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가 고비용의 구조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지역구에서 상대적 다수만 확보하더라도 당선이 가능한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선 지역 내 주요 이익집단들의 입김이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이른바 후원-수혜(patron-client)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해결책을 놓고 논쟁하는 것이 순서이다.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의 확대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더 이상 특정한 소수의 이익집단에게 민감하기보다는 대다수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어느 정당이 더 시민들이 원하는, 즉 공익과 가까운 정책을 입안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의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 차원에서 작성한 정당명부에 오른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과 후원-수혜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비용의 선거구조가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선 이성우도 이러한 비례대표제 확대에 동의한다고 가정하고 넘어가보자.

이제 그 다음 순서는, 이런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겠는가라는 전략적 차원의 고민이다. 바로 이 부분이 이성우가 문제를 제기하는 핵심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그간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많은 학자들과 정치가들도 막상 그 실현가능성 앞에서는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왔다. 이미 기존의 선거제도로부터 혜택을 받아왔던 정치가들이 스스로 개혁이 동참하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개혁이 그러하듯이 선거제도의 개혁은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그 개혁의 중요성을 절감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위해 시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효율성'이 좋은 설득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굳이 이 논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찾지 못하겠다. 시민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을 줄이는 대신, 오히려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해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제안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본다.

실제로 작년 말부터 진행되고 있는 'PR(비례대표제)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원희룡, 천정배, 노회찬 등과 같은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과 학자들, 그리고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과 같은 단체들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포함해서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긍정적인 아이디어들을 제시한 바 있다.

요컨대, 한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책결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은 현행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라는 제도의 문제이지, 그 문제를 '경제적 효율성'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례대표제의 확대,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그 상상력은 조성주가 제시한 '특권은 줄이고,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일꾼을 늘리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거제도와 같은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개혁 이슈에 대해 어떻게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이성우가(혹은 다른 누군가가) 생각하고 있는 '숙고된 아이디어'를 듣고 싶다. 그것이 기왕에 마련된 비례대표제 확대 논의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비례대표제 확대는 '과소대표'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

다음으로 이성우는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게 되면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들이 좀 더 늘지 모르지만, 역시 다수자와 이익집단들의 대변자 또한 같이 늘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성주가 강조하는 소수자는 물리적으로 소수의 집단도 포함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사실상 소수로 전락해버리는 그룹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의 임금노동자들 중에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이 전체의 2/3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유력 정당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는 소수의 기득권 집단들의 목소리는 '과대대표'되어 있는 반면, 대다수의 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과소대표'되어 있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지역구에서 1위에 오른 후보만 당선되고, 2위 이하의 후보들에게 던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된다. A, B, C, D 네 정당이 전국적으로 35%, 30%, 23%, 12%의 득표율을 각각 획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국회로 입성하게 되는 목소리는 A 정당을 지지한 35% 뿐이다. A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65% 시민들의 의견이 역설적이게도 소수의 의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선거제도는 정당들의 정책대결에 대한 유인을 낮출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도 배제시키는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기득권자들의 목소리도 같이 증가하리라고 기대하기보다는 그간 과소대표되었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보다 적절하게 반영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이성우가 글에서 제기한 다른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짧게 답하고자 한다. 우선 국회의원의 활동 기준으로 법률안 발의수가 적절한지에 대한 것이다. 이성우의 문제제기에 동의하는 바다. 법률안의 숫자만으로 국회의원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큰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떤 법안을 제시했는지, 그리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좀 더 치밀하게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입법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최소한의 법안 발의조차 하지 않는 의원들을 걸러내는 1차적 판단 기준 중에 하나는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그 조차도 더욱 신중해야겠지만 말이다.

국회의원 정수에 대한 '세제곱근의 법칙'에 대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이 법칙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이더라도, 레이파트(Lijphart, 1999)와 같은 저명한 비교정치학자들이 거칠게나마 여전히 이 법칙을 의원 정수의 기준으로 삼는 핵심적인 이유는 인구에 비해 국회의원의 수가 적을수록 그만큼 '비비례성'(disproportionality)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문제의 본질은 어떤 공식을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시민들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고 비례성을 확보하는 국회의원 수를 정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레이파트가 경험적으로 증명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후진국일수록 세제곱근 법칙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의원 수를 갖고 있고, 선진국일수록 그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권주자들이 개헌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그와 맞물려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87년 체제의 극복이니, 2013년 체제의 등장이니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새로운 체제란, 말 그대로 새로운 인물이나 세력이 아닌 새로운 제도를 통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영역에서 새로운 체제를 맞이하려면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제도에 대한 비전을 그려나가야 한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 연대의 합의문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명기한 바 있다. 지난 주말부터는 비례대표제와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아무쪼록 이 논의가 향후에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는 대선국면에서 활활 타오르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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