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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완전 국민경선제 침묵 행보 언제까지?

[진단] 비박주자 '독설'에도 50일 넘게 묵묵부답... "견해 변화 없다"

등록|2012.06.13 21:18 수정|2012.06.13 21:18

▲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후 충남 천안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19대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뒤 취재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8일 오후 충남 천안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정문 앞. 녹색 옷을 입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에서 내렸다. 출입구 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연방 터지고 펜과 수첩을 든 기자들이 박 전 위원장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박 전 위원장은 기자들을 피해 단체 사진 촬영을 위해 미리 준비된 의자까지 헤쳐가며 연수원으로 들어섰다. 기자들이 "비박(非朴)계 의원들이 아무도 연찬회에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경선 룰을 변경할 생각은 있나" 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그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박 전 위원장이 비박 대선주자들의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 요구에 입장을 밝힌 건 단 한 번뿐이었다. 그는 지난 4월 23일 강원도 민생탐방 현장에서 "경기 룰을 보고 선수가 거기에 맞춰 경기를 해야지 매번 선수에게 룰을 맞춰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반대 견해을 밝혔다.

딱 거기까지였다. 박 전 위원장은 이후 50일이 넘도록 경선 룰 논란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50일 넘게 침묵하는 박근혜... '독설' 날리는 비박 3인방

당 지도부는 경선 룰 협상을 위한 경선준비위를 '생략'하고 경선관리위원회 출범을 강행했고 여기에 김문수·정몽준·이재오 등 '비박 3인방'은 경선 보이콧을 내걸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분당'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중이다.

박 전 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독설'도 연일 쏟아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3일 오전 당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우리 당은 대선 때마다 승리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후보 선출 규정을 상황에 맞게 변경해왔다"며 "후보 선출 규정 변경과 사당화에 대한 불만으로 탈당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선수가 룰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건 불통과 독선, 오만함의 발로"라고 박 전 위원장을 공격했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출연 "강자가 약자의 편을 들어야지, 약자가 강자의 눈치를 보고 따라가기 시작하면 독재정치고 불통정치"라며 박 전 위원장의 침묵을 꼬집었다. 정몽준 의원 역시 지난 12일 트위터에 "70년대의 향수가 새누리당을 엄습(했다), 한 사람의 권력 욕심이 중도보수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공격했다.

타협의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황영철 대표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선 룰 논의기구 설치를 위한 비박 측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황우여 대표의 의사를 밝혔지만 비박 3인방 측은 이날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정몽준 측 대리인인 안효대 의원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공식적으로 대리인이나 후보자에게 전화를 한 뒤에 언론에 말하는 게 순서에 맞다고 생각한다"며 "느닷없이 언론에 먼저 밝힌 것이나 비박 주자만을 대상으로 얘기한 건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내 최대 주주이자 최선두 대권주자인 박 전 위원장이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 된 셈이다.

▲ 대선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이재오, 정몽준 의원이 10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대선경제정책 공약 설명 및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등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박근혜, 이미 입장 밝혔고 변화 없다... 당대표가 주관해서 풀 문제"

하지만 친박 측에선 박 전 위원장이 침묵을 깰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일단 "선수는 룰에 맞춰서 경기를 뛰어야 하고, 매번 선수에 맞춰 룰을 바꿀 순 없다"는 박 전 위원장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한 친박 인사는 "비박 주자들이 자꾸 박 전 위원장의 입장을 밝히라고 하는데 이미 밝혔다"며 "거기서 변화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위원장이 침묵을 깨고 현 당내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경선 룰 문제는 당대표가 주관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며 "당대표도 계신데 같은 후보가 (경선 룰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비박 주자들이 사당화를 얘기하면서 당헌 당규 개정문제에 대해 박근혜가 답하라고 하는게 맞는 논리인가"라며 "그들이 정말 경선 룰을 개정하고 싶다면 일단 개정 논의를 할 수 있는 테이블에 앉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박 전 위원장의 '원칙론'도 한 몫하고 있다. 당헌·당규에 규정된 경선 룰은 타협하거나 협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경선 당시에도 "고스톱 칠 때도 룰이 있고 한 번 화투치다가 중간에 룰을 바꾸지 않는다"며 "정치권도 원칙을 지키기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룰 협상 대리인을 맡았던 김재원 의원도 이날 "박 전 위원장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경선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룰을 개정하려 하는 게 여·야 공통의 관행처럼 굳어졌는데 사실 그건 변칙이고 잘못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완전 국민경선제 적용시 동원선거 가능성이 높고 야권의 역선택도 우려된다는 친박계의 부정적 시각도 있다.

일례로 친박 성향의 정우택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인터넷 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동원 선거로 가면 저쪽에서 박 전 위원장을 떨어뜨리기 위한 역공작에 나설 수 있다, 자살이나 돈봉투 사건 등이 터지면 어떡하나"라며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우리에게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을 제안하는 건 우리가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돌부리에 한 번 걸려서 넘어져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선관리위도 '원칙' 강조... '부자 몸조심' 비판 꿈틀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이 마냥 침묵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당장 이날 출발한 경선관리위원회도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어 현 갈등 구도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김수한 경선관리위원장은 이날 첫 회의 후 브리핑에서 "(비박주자들의 목소리를) 신경 쓰는 게 분명하고 노력하겠지만 우리가 집행하는 데 있어 원칙은 어디까지나 현행 당헌·당규"라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이 2007년 대선 경선 룰 협상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의 여론조사 경선을 수용했다가 패배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당에서 나오고 있다. '압도적 강자'인 박 전 위원장이 본선을 앞두고 '부자 몸조심' 중이란 비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박 전 위원장의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

18대 국회 새누리당 소장파 모임 '민본21'은 지난 12일 저녁 긴급회동을 열고 향후 운영 방향과 경선 룰 논쟁에 대해 논의했다. 모임을 주도한 김성태 의원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당내에서 완전 국민경선제 논의 자체가 안 이뤄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당을 독단적, 독선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주로 나왔다"며 "현 상황을 하루나 이틀 정도 더 두고 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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