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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아들이 죽었는데 명예훼손이라니"

[인터뷰] 삼성SDI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박진혁씨 부친

등록|2012.06.14 18:57 수정|2012.06.14 21:35

▲ 지난 2004년 울산 삼성SDI 사내하청업체인 KP&G에 입사해 10개월 가량 일하다 2005년 11월 29일 급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박진혁씨 아버지 박형집씨가 울산사업장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삼성일반노조


"그냥 아들이 잘못해서, 내가 잘못해서 죽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장례식장에 찾아온 회사 대표에게 고개도 들지 못했죠."

28세로 세상을 떠난 고 박진혁씨. 하나 뿐인 아들을 가슴에 묻고 하늘로 보낸 아버지 박형집씨(61)는 울분을 삼켰다.

고 박진혁씨는 지난 2004년 울산 삼성SDI 사내하청업체인 KP&G에 입사해 10개월 가량 일하다 2005년 11월 29일 급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는 아버지는 14일에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현장에서 고인의 아버지를 만났다.

세척작업 한 지 10개월, 식은땀이 나는 아들

부산이 고향인 고 박진혁씨는 27세에 사회로 진출했으나 부산에서는 일자리 찾기가 힘들었다. 발품을 판 끝에 그나마 사정이 좋다는 울산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2004년 어느날, 울산의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아들이 "이곳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다른 곳에 취업하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그때 말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진혁씨가 찾은 곳은 울산 울주군 삼남면에 있는 삼성SDI 울산사업장. 부산 집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진혁씨는 입사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며 휴일에만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들은 회사에 들어간 지 10개월 가량 지나자 자꾸 힘이 없고 식은땀이 난다고 호소했다. 목에 볼록하게 뭔가 생긴 뒤 이비후과를 찾았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부산 서구의 동아대학교병원. 조직검사를 한 병원 측은 청천벽력같은 말을 했다. 생전 처음들어보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라는 것이다. 2005년 2월의 일이다. 아버지 박형집씨는 "백혈병을 발견한 의사가 유전적인 것도 아니고 이상하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박형준씨는 당시 아들의 백혈병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입사할 때 신체검사 받고 아무 이상 없이 들어간 회사에서 병을 얻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이후 진혁씨는 동아대병원에서 7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았다. 회사에 낸 병가기간도 끝나 치료비 정산을 위한 건강보험도 지역보험으로 변경했다. 이즈음 박씨는 아들에게 "삼성 같은 큰 회사에서 치료비 지원도 안해주나"고 물었다. 그러자 진혁씨는 "아직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안되는가 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무렵 회사에서 사직서를 받으러 왔다고 한다. 박씨와 아들은 "병가를 길게 냈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단다. 백혈병으로 투병중인데 치료비를 지원하기는커녕 되레 사직서를 받으러 온 회사 측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

진혁씨가 삼성SDI 사내하청업체 KP&G에서 맡은 일은 브라운관에 들어가는 마스크 트리클린자동화 세척작업. 박씨는 "집에 오는 아들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니 '세척제로 부품을 세척한다'고 했다"며 "도대체 무슨 독한 화학약품 이길래 아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울분을 토했다.

"죄 지은 것 없는데 아들은 왜 죽었나"

2005년 11월 29일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박씨는 날이 가면 갈수록 너무 억울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체 건강하고 사람 사귀기 좋아하는 밝은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게 믿기지 않아서다.

박씨는 삼성을 상대로 진상조사라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무슨 힘으로 삼성같은 거대 기업하고 싸우려 하나"하고 극구 말렸다.

그후 아버지는 손에 익숙하지도 않은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반복했다. 인터넷을 둘러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박씨는 2008년 어느날 인터넷에서 아들과 유사한 죽음을 당한 사례들을 발견했고 '반올림'이라는 단체도 알았다. 그는 억울한 사정을 반올림에 올렸다.

하지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글이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을 곤궁에 빠트렸다. 삼성측이 아들의 사례를 공개한 김 위원장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박씨는 "이 말을 듣고 너무 화가나고 분노했다"며 "내 아들이 백혈병으로 죽었는데 그 사실을 알린 것이 어떻게 명예훼손이 되느냐"고 따졌다.

박씨는 "늘 아들에게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사람을 사귀어라. 그것이 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이다'고 말해왔다"며 "그래서인지 아들은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도 참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뒤늦게 알게 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아들의 한을 달래주고 싶다"며 "죄지은 것 없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사필귀정이 되지 않겠나. 하늘이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한편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삼성SDI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박진혁씨의 소식을 접하고 2008년 게시판에 게재한 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으나 무죄를 받았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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